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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이 본 격동기 서울'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시회가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 AP통신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해방 이후부터 4?19혁명까지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중 일부가 이번 전시에 올랐다. 해방 이후 파란만장했던 서울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군정청 앞 신탁통치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1946. 01. 05)’, ‘미군 댄스홀 문 앞에 진한 화장을 하고 서있는 여자(1947. 06. 23)’, ‘시가전으로 폐허가 된 서울(1950. 09. 28)’, ‘북한군 포로를 발로 차고 있는 시민(1950. 09. 25)’ 등 흥미로운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찬찬히 전시된 사진을 보다보니 사진을 찍은 사람의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기록물이지만 동시에 카메라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관성을 감출 수 없다. 주관적인 객관성…. 동시에 한 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실 중 어디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느냐는 찍는 사람의 판단과 의지에 달려있다.
전시된 사진에서 드러난 AP통신 기자들의 시선은 미군의 시선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의 고통을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미군을 홍보하는 듯 굉장히 권위적이고 정치적인 앵글도 눈에 띠었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AP통신이 본 격동기 서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AP사진기자들이 찍은 사진들은 놀라울 정도로 일제 강점기 총독부의 홍보용 사진들과 유사하다고 했다. 군정청으로 사용된 옛 총독부, 서울역 앞 광장, 조선호텔에서 내려다 본 황궁우 등은 촬영 연대와 주체만 다를 뿐 사진의 구도는 일제 강점기에 생산된 사진들과 똑같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그들이 카메라에 담은 당시 서울의 모습은 껍데기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진들 안에 무수히 많은 진실들을 감춰 버렸을지도 모른다. AP통신의 사진은 당시 국내의 상황을 국외에 알리고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AP통신의 체에 걸러진 격동기 한반도의 모습을 그들의 시선을 따라 보게 됐을 것이다.

사람들은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는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 힘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가 어떻게 초토화 돼 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을까? 전쟁을 정당화하는 나라, 그 나라 언론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김승희 독립PD
만약 내가 그 시대 그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면 나의 카메라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나는 과연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진솔한 모습들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한반도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깊이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점에서 나는 어디를 보고 있는가? 진실이 감춰지고 언론이 오히려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현실에서 나의 카메라는 과연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가? 깊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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