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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인륜적 범죄를 제외하고, 사람이 범하는 범죄 중 최고의 악질은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때리고 훔치고 하는 놈들보다 몇 배는 더 지능적이고 의도적인 까닭에 용서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것을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간 쓸개 다 내놓고, 울고, 웃고, 알랑대고, 무시로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해대면서도 일체의 자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언어는 그저 타인을 등쳐 빼앗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피땀으로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챙겨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납니다. 말을 믿고, 사람을 믿고, 그래서 결국 당해 버린 자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기꾼은 말 못하는 짐승만도 못한 부류이며,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의 족속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기꾼 하니, 어린 날 교과서에 나왔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납니다.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옷을 만든다는 사기꾼들의 거짓말에 미혹된 왕이 결국 벌거숭이로 잔치에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옷’이라는 욕망에 눈이 멀어 현실을 분간할 힘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왕은, 어린 아이의 눈에도 참 한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습니다.

▲ 김재철 사장이 2월 방송문화진흥회에 출석한 뒤 자신의 퇴진을 촉구하는 MBC노조원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MBC노조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이 사기극의 성패를 좌우할 결정적 부분은 이 대목 같습니다. 왕의 신하들 역할과 관련된 겁니다. 옷을 잘 짜고 있는지 보고 오라는 임금의 명령을 받고 사기꾼들에게 간 신하는 분명 옷을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황당한 사기극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모멘텀입니다. 신하는 공범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임금님의 옷은 ‘보이지 않는 옷’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임금 자신도 그걸 철석같이 믿게 되고요. 감히, ‘옷은 없다’라고 말할 용기를 누구도 갖지 못하는 순간, 이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은 성공을 예약했습니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의심했더라면, 그리고 왕에게 용기 내어 그가 인식한 사실을 제대로 말했다면, 이 사기극은 수포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신하는 없었습니다. 자리와 목숨이 아까웠을 테니까요. 지금 공영방송 MBC의 김재철 사장이 알몸이나 다름없습니다. 배임에서부터 횡령의혹, 그리고 부동산 투기에 특정 여인과의 특수관계 등, 당사자는 물론이고 회사 조직원들마저도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점입가경의 끝은 어떤 풍경일지 솔직히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모시는 이들은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김재철 사장의 벌거벗은 알몸이 마치 화려한 비단옷이라도 되는 양 추켜세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들은 입이 닳도록 김재철 사장의 추문들을 방어하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자기들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들이 공영방송 MBC를  ‘벌거벗긴’ 사기극의 숨은 공범입니다.

MBC 김재철 사장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공영방송 MBC의 사장으로 온 김재철씨에게서 처음으로 들었던, 그리고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말입니다. 그건 사기꾼이나 할 말이지 공영방송 수장이 해서는 안 될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자신의 말대로 참 흐리게 살았고, 그의 주변을 온통 다 흐려 놓았습니다. 그 김재철 사장이 자신이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은 그리 오래지 않을 겁니다. 동화 속에서 임금이 궁을 나서자마자, 어린 아이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임금님이 발가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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