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의 편지] 이 업보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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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2주년이라고, 밥을 사주고, 술도 사줍니다. 힘들기는 다 마찬가지인데 미안해합니다. 저는 그러한 자리를 자꾸 뿌리칩니다. 테이블에 앉아도 잘 넘어가지도 않습니다. 이미 4년 가까이 해직자로 살아가고 있는 YTN 6명의 기자들이 곁에 있고, 지금도 속출하고 있는 MBC의 해고자들을 보면서, 설령 위로의 자리라 한들 편할 리가 없습니다.

또한 여전히 미쳐 날뛰는 자들 앞에서 우리의 고통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일 같아서 싫습니다. 차라리 그자들에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 부어주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즐거운 저녁을 먹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런 제 심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자기방어적 심리기제가 작동한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올 들어 해고를 당한 MBC의 정영하 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박성호 기자회장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애써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웃고, 그들도 잠시 웃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스치듯 손을 한 번 쥐었을 뿐입니다. 말로 하지 못한 위로와 애정을 그 짧은 웃음과 손길로 대신했지만, 서로 이심전심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해고가 사회적 타살행위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쌍용차의 경우는 집단학살극이고, 지금 공영방송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연쇄살인사건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겠습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직한 일이지만, 유영철로 상징되는 싸이코패스들의 연쇄살인극은 집단학살극 못지않게 잔혹했고, 인간의 악마성을 살 떨리도록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리 천사와 악마가 형제지간이라 하지만, 똑 같은 인간의 형상을 한 이가 악마라는 사실에, 연쇄살인극의 현실은 집단학살극 이상으로 더욱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영철이 흰 마스크를 쓰고 ‘9시 뉴스’에 나왔을 때, 저는 씹던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집사람은 아예 TV를 꺼버렸습니다.

그런데 MBC에서 두 차례에 걸쳐 69명의 언론노동자가 대기 발령을 받았습니다.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이라는 이는 김재철 사장의 의지를 반영해 “이들은 파업이 끝나면 다 해고다”라고 공언했다고 하니, 파업이 끝나면 기존의 해고자 6명을 포함해 총 75명의 해고자들이 MBC 로비에 즐비한 시체로 널려 있는 참혹한 풍경을 국민들은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언론노동자들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또 집단학살까지를 서슴없이 공언하는데도 그것이 정치적으로 방조되는 현실은 참 비극적입니다.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권의 문제입니다. 싸이코패스. 그 특성을 검색해 보면 대략 이렇게 나옵니다.

“자신의 행동의 결과가 타인에게 어떻게 피해를 미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생활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성격상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인식능력이 부족한 면이 있고, 그럼에도 말을 잘하는 달변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하고, 충동적이라서 행동의 형태가 극과 극으로 향하며,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후회나 죄의식이 없어서 행한 행동의 결과가 어떠한  영향을 일으키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한 행동으로 쾌락을 얻으며, 책임감에서 무책임한 편이다. 거짓말이나 속임수에 능하고…”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오싹합니다. 김재철 사장과 그 하수 임원들은 오늘도 둥근 테이블에 앉아 농담을 하고, 입에 발린 아첨을 하고, 파업조합원들을 어떻게 때려잡을까 궁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처자식과 즐거운 저녁식사를 할 것입니다. 배우자를 향해 웃고, 자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빵 터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얹어 주기도 할 것입니다. 김재철, 안광한, 백종문, 이진숙, 권재홍, 이우철…. 이 업보는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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