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한에도 매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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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한에도 매를 들자
  • 오기현 SBS PD
  • 승인 2012.06.1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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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현 PD가 1999년 북한을 방문한 고 조경철 박사와 함께 김일성주석 생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기현 SBS PD

색깔논쟁이 불고 있는 시점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 1999년 9월 필자는 북한 측에 백기완 선생의 방북을 제안했다. 황해도 출신인 백 선생이 고향을 방문해 누님과 만날 경우,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촉진하는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북한측은 흔쾌히 수락했다. 백기완 선생은 통일운동의 상징적 인물로서 김일성 주석 생전에도 초청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측의 통보를 받은 뒤 곧바로 혜화동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를 찾아갔다. 재야통일운동의 거물인 그에게 큰절을 올린 후 가슴 떨리는 소리로 고향방문을 제안했다. 그런데 백기완 선생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재야통일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내가 비행기타고 갈 수는 없어. 내발로 걸어서 휴전선을 넘을 테니 북쪽에다가 통행을 보장하라고 하시오!”

백 선생은 송아지를 한 마리를 몰고 방북하겠다고 했다.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한국전쟁 중 피난 왔던 뱃길을 따라 그 때 탔던 똑딱 배를 타고 황해도 장산곶으로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북한측의 동의만 있으면 성사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다. 필자는 곧바로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표부의 책임자를 만났다. 그도 난감해했다. 다음번에는 육로방북을 추진하겠으니 이번에는 베이징을 통해 비행기로 평양을 방문할 것을 간곡히 권했다.

▲ 1999년 고 조경철 박사(가운데)와 함께 북한을 방문한 오기현 PD(오른쪽)가 김일성주석 생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백 선생을 찾아갔다. 은평구 기자촌 언덕바지에 있는 백 선생 댁에 도착했을 때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백 선생은 여전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게다가 방북에 가족을 동행하게 해 달라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북이 악덕재벌 정주영은 소 몰고 휴전선을 넘게 해주면서, 나 백기완이가 송아지 몰고 가겠다는 데 왜 길을 열어주지 못하는가? 평생을 통일운동에 몸 바친 사람에 대한 대접이 이정도인가?”

이후에도 한 차례 더 베이징에 가서 북한당국자를 만났지만 결국 백선생의 방북은 무산되었다. 고향에 살고 있는 누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자 백선생은 무척 원통해했다.

북한측의 평소 시각으로 보면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세력으로서 타도의 대상이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에 대한 북한측의 예우는 무척 깍듯했다. 또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반공운동의 선두에 서서 북한과 각을 세웠던 통일교에 대해서도 북한당국은 90년대 이후 경제협력분야에서 각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재야 통일운동가들은 평양방문시 북한당국자들의 태도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열정보다는 돈을 우선하고 민족의 장래보다는 조직이나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게 된다.

북한측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결국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즉 고매한 사상과 이념을 내세우지만, 그들 역시 ‘배고픈 이상’ 보다는 ‘풍족한 현실’을 중시하는 평범한 이웃이라는 것이 필자의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뿔 달린 도깨비는 아니지만 그들 모두가 인민대중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회주의적 휴머니스트들은 아닌 것이다.

북한당국이 정주영 회장과 백기완 선생 중 누구를 더 극진히 예우하였는지에 대해서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반통일 혹은 반민족적이라고 비난했던 사람도 이익을 위해서는 기꺼이 예우를 해준다. 그들에게도 물질은 중요한 판단기준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이념과 사상보다 앞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색깔논쟁이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을 하는 사람이 많다. 모든 집단을 붉은색과 아닌 것으로 양분하는 정치세력의 퇴행적인 시도에 분노가 치민다. 그러나 북한을 현실의 잣대가 아니라 기대와 이상의 시선으로만 보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현실이 팍팍해서든 그릇된 판단을 해서든 그들도 잘못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북한의 잘못에 대해 뼈아픈 질책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북한을 진정으로 껴안을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 오기현 SBS PD
오기현 SBS PD는 1998년 방송사 최초로 평양취재를 다녀 온 뒤로 10년간 30여 차례 방북하여 남북방송교류사업 진행했습니다. 1999년 <조경철박사의 52년만의 귀향>, 2000년 <SBS 평양뉴스2000>, 2005년 <조용필평양공연> 등을 기획 혹은 제작해 2005년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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