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종주의가 유로 2012를 망치고 있다. 하지만 인종주의 훌리건 문제는 유로 매치가 시작되면서 생긴 것은 아니다. 폴란드 자체에서 축구를 둘러싼 인종주의가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두 선수, 다미앙 페르끼스과 루도빅 오브라니악 두 선수가 각각 2008년과 2009년 폴란드 국적으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면서부터 폴란드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용병 선수들 대부분이 서포터들의 비난과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에 유로 매치가 개최되자 유럽 다른 나라를 향해 인종주의가 분출된 것이다.

그러나 인종주의가 폴란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15일에는 가나 출신의 부모를 둔 이탈리아의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를 향해 크로아티아 응원단이 바나나를 던지며 원숭이 소리를 흉내 낸 사건이 일어났다. 유럽축구연맹은 해당 행위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며 “인종 차별에 대한 어떤 관용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14일(현지시간) 폴란드 포츠난 시립 경기장에서 열린 유로2012 본선 토너먼트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축구 경기를 보며 즐거워하면 될 것을, 저들은 왜 인종까지 들먹이며 난동을 피우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이 축구 경기를 스포츠가 아닌 일종의 국가 간 전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의 법학자인 칸토로비츠는 그의 저서 ‘왕의 두 개의 몸’에서 “왕은 두 개의 몸을 가진다”는 영국 튜더 왕조의 법적 관념을 조명한다. 왕은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육체를 지니지만, 동시에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적 육체 역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절대왕정이 사라진 지금에는 국가 또는 주권이 왕을 대신해 정치적 육체를 담당하고 있다. 정치적 육체는 구체적으로 대통령, 국회, 헌법 등의 모습으로 현실에 나타나게 된다.

이름 없는 개인 역시 정치적 육체를 획득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순간은 전쟁이다. 개인은 군인이 된 순간, 개인의 육체를 버리고 국가가 부여한 정치적 육체를 얻게 된다. 전쟁 상황에서 군인들이 평소라면 할 수 없을 만한 행동을 하거나, 전우 또는 민간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개인이 아닌 정치적 육체로 존재하는 군인은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훌리건들의 난동처럼 정치적 육체가 비장한 전장이 아닌 축구장에서 나타날 때이다. 적을 상대하는 전투 중인만큼 이들은 인종비하 역시 서슴없이, 집단적으로 저지르게 된다.  

▲ 프랑스= 표광민 통신원/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석사
또한 인종비하에는 현실에서 박탈당한 자기 존엄성을 찾으려는 욕구가 숨어 있다. 유럽의 인종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백인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추락한다 해도, 실업자,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해도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훌리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각자의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이더라도, 그들이 폴란드인, 러시아인, 크로아티아인, 또는 백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자신이 아무리 못 났어도 자신을 버릴 수 없는 집단인 국가나 인종으로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인종주의 훌리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장에 나타난 인종주의는 일단 어이없고, 그리고 불쌍하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