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석의 분노, 강동윤의 눈물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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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SBS ‘추적자’, 스토리·연기·주제의식 3박자 모두 호평

▲ SBS <추적자>의 두 주인공. 강동윤(김상중, 왼쪽)과 백홍석(손현주, 오른쪽)의 모습. ⓒSBS
마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올 법한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딸아이가 뺑소니를 당했는데 명확한 증거는 번번이 사라지고, 사건을 은폐한 자가 지지율 65%의 여당 대선후보라니.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는 이 믿기 힘든 사건을 현실감 있게 풀어내며 정치극와 스릴러의 장점을 녹였다. 스토리·연기·주제의식 3박자 모두 호평을 받으며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네이버 평점도 9.5(10점 만점)로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중 단연 1위다.  

무엇보다 주연들의 연기가 으뜸이다. 백홍석(손현주)은 딸을 죽인 진범을 찾지만 무수한 증거들이 권력 앞에 힘없이 변조되는 것을 목격한다. 믿었던 친구는 30억원에 매수돼 회복 중이던 딸을 살해했고, 부모보다 가까웠던 황반장은 10억원에 넘어가 자신에게 총을 겨눴다. 딸과 아내의 죽음 이후 백홍석은 땀과 눈물로 범벅된 채 억울함·분노·고집이 섞여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세상을 응시한다. 그는 ‘도망자 코스프레’를 완벽 소화하고 있다.

〈추적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강동윤(김상중)은 반듯하고 합리적이고 개혁적이지만, 동시에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살인과 암투를 마다하지 않는 냉혈한이다. 그는 KBS 2TV 〈프레지던트〉(2010)의 최수종이나 SBS 〈대물〉(2010)의 고현정처럼 이상적인 대통령 후보의 모습을 외피에 두른 채 한국사회를 적확하게 투영하는 탐욕과 경쟁, 외로움을 내피에 간직한 인물이다. 두 주인공의 선 굵은 연기는 소지섭·장동건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추적자〉는 단순화된 선악구조 대신 인물의 다층적인 면을 보여주며 극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강동윤과 백홍석의 욕망을 동시에 공유한다. 아내의 뺑소니를 숨겨서라도 권력을 쟁취하려는 강동윤은 서 회장(박근형)에 의해 큰 위기에 몰리자 홀로 흐느끼고, 백홍석은 그런 강동윤 앞에서 “난 수정이 아버지니까”라며 결연하게 복수를 다짐한다. 이 때 시청자는 강동윤의 대통령 당선과 백홍석의 복수를 동시에 원하게 된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누명을 벗으려는 도망자와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의 물고 물리는 대립은 극에 스릴러적 요소를 불어넣었다. 백홍석이 매번 경찰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 장면, 강동윤의 아내 서지수(김성령)를 납치하는 장면 등은 흔한 컴퓨터그래픽 한 번 쓰지 않았음에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여기에 강동윤과 서 회장의 갈등은 백홍석과 함께 극을 3파전으로 몰고 가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 <추적자>의 서회장과 강동윤. ⓒSBS
서 회장은 “욕 봐라”며 끊는 전화 한 통으로 검찰과 국회, 언론을 주무르는 국내 최대 재벌그룹의 회장으로,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분투’하는 한국 재벌을 투영한다. 서 회장의 존재는 정치와 언론이 자본에 종속되었다는 사실도 허탈하게 보여준다. 그가 한국사회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모습은 현실적으로 느껴져 섬뜩할 정도다. 특히 극 중 언론은 메이저·마이너 가릴 것 없이 권력자들이 던져주는 ‘소설’을 받아쓰기에 바빠 현실과 착각할 정도다.  

허탈함은 또 있다. 검찰개혁을 외치던 강동윤은 개인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검찰총장에 전화를 걸어 대검중수부 폐지 공약을 놓고 거래를 시도한다. 전직 대법관은 국무총리가 되고 싶어 허위사실을 꾸며낸다. 민주주의와 선거, 정치제도는 수십억을 몇 만원처럼 쓰는 이들에게 단지 권력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에 따라 쓰고 버려지는 ‘꼬리’와 같다. 이 드라마가 뒷맛이 씁쓸한 정치극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들은 “너무 화가 나서 두 번은 못 보겠다”며 격한 소감을 여기저기 남기고 있다. 한 누리꾼은 “16부작을 1화에 쏟아 붓는 듯한 드라마”라고 〈추적자〉를 평했다. 호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추적자〉가 이전의 지상파 드라마와 다른 서사로 또 하나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유력 대선 후보와 재계 1위의 재벌 회장, 복수심으로 가득한 도망자의 대결은 이제 중반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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