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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선후배님들 용서하시라.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MBC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PD지망생이었다. 어린 시절 흥얼거렸던 ‘아빠가 출근할 땐 뽀뽀뽀’에 중독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PD로서 지금 생각해도 KBS의 〈TV유치원 하나 둘 셋〉 보다는, MBC의 〈뽀뽀뽀〉가 훨씬 쉽고, 소구력 있는 프로그램 타이틀이긴 하다.)

여하튼 당시 나는 지금 몸담고 있는 KBS의 프로그램보다 MBC의 드라마와 예능을 더 좋아했다. 〈퀴즈 아카데미〉를 보며 대학생의 멋진 일상을 꿈꿨고, 드라마 〈질투〉에 빠져 순수한 사랑에 대한 아련한 환상을 가졌다. 또한 MBC 뉴스와 〈PD수첩〉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해 고민했다. MBC는 당시 시골뜨기 촌놈인 내가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하게 열린 창이었다.

▲ MBC 정상화를 촉구하기 위해 시작한 ‘쫌 보자 무한도전×2’프로젝트 첫째 날인 지난 21일 언론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그 MBC가 지금 많이 아프다. 한 사람 때문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사장이 되어, 공정방송의 가치를 짓밟고, 방송을 송두리째 사유화 해버린 김재철씨 말이다. 게다가 그는 거액의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하고, 특정인에게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서 막대한 부당이익을 제공한 의혹이 있는 피의자다. 전파가 국민의 공공재이며, 공영방송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교과서 같은 사실은 지금 MBC 내에서는 진부한 경구일 뿐이다.

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가 단순히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믿는다. 시청자는 TV 프로그램 속에 자신의 꿈과 희망을 투영하며, 답답한 현실 속의 삶을 위로하고, 스스로희망을 발견해 낸다.

삭막한 경쟁의 교실에 포위된 고3학생도 〈무한도전〉의 해학 속에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실업의 고통에 인생의 낙오자가 된 듯한 청년실업자도 〈빛과 그림자〉의 강기태를 보며 자신의 새로운 인생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나는 TV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주고, 그 상상력이 우리 사회를 좀 더 풍성하게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재철씨가 지난주 MBC 직원들을 무더기로 대기발령 조치하고, 해고의 칼날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망나니짓을 일삼고 있다. 범법자가 이런 무모한 일을 벌여도 우리의 검찰과 경찰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원숭이와 비유되는 집단이니 딱 수준에 맞다 해야 할까!

▲ 김광수 KBS전주 PD
게다가 김재철씨를 낙하산 사장으로 투하한 책임이 있는 여당 주요 인사의 말을 종합하면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정치파업”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럴 때 전주 어르신들은 이런 말을 쓴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결국 MBC 문제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 김재철씨가 범한 가장 무거운 죄는 국민 각자의 삶에 희망을 가져다 줄, 상상력에 위해를 가한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테러리스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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