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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마사토시. NHK노동조합 서기장입니다. 그에게서 초청 메일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일본에 와서 한국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NHK조합원들에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이미 생활노조가 되어버린 NHK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관심도 없고 지지도 없다면서, 이웃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매우 신기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공영방송 노동조합을 열렬히 지지하는 한국의 사실이 너무나 부럽다고도 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의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의외로 질문들이 날카로웠습니다. 김인규, 김재철, 배석규 씨가 나간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겠는가, 또 다른 낙하산이 오는 거 아닌가? 5개월 동안 싸우고 계속 싸울 것인가, 출구도 찾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핵심을 찌르기도 하고, 곤혹스럽기도 한 질문들을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숙명론이나, ‘적당하게 타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을 내게 말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는데 속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감시.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 노동조합의 무기력. 수신료를 징수하러 다니며 받는 냉대. 솔직히 자기들도 싸우고 싶다고, 각자 가슴속에 쌓여있던 울분들을 떠듬떠듬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얘기합니다. 그리고 제게 힘내라고 합니다. 불완전한 문장 속에서 전해오는 진심은 완전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 당신들도 무척 외롭고 힘들구나.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자조하는 당신들에게도 여전히 언론에 대한 고민은 살아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자정 무렵 모임이 끝났습니다. 고이소, 니쥬부, 다나카, 마츠바라…. 참석했던 이 친구들이 갑자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몇 천 엔씩, 싸우고 있는 한국의 공영방송 노동조합을 성원하는 뜻으로, 즉석에서 모은 거라 했습니다. 액수보다, 그 진심이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국가 민족 역사 그런 것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찌, 니, 산, 이겨라! 이겨라!” 그들 중 누군가의 제안이었습니다.
 
야음성당. 울산에 있습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요청으로 이곳에서 열린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아세미)’에 참석했습니다.  저녁 7시 반. 성도들이  한 분 두 분 성당 안 긴 나무의자에 앉았습니다. 환갑 넘으신 분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저는, 아무리 천주교시국미사라지만 바로 옆 포항이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지라, MB정부의 언론장악과 우리들의 투쟁을 설명하는 일이 은근히 신경 쓰였습니다. 그래도 별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우리가 겪고 있는 객관적 상황, 그리고 왜 시청자들은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접할 수 없는가 등을 어르신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잘 듣고 계시는 것인지, 기분은 나쁘지만 미사라서 꾹 참고 계시는 것인지, 통 짐작할 수는 없었습니다. 말하는 내내 땀도 났습니다.

미사가 끝날 무렵, 옆에 계신 아주머니가 갑자기 손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본능적인 느낌이 옵니다. 뭔가 당혹스런 일이 일어날 게 분명합니다. 아주머니는 제가 말릴 틈도 없이 벌써 돈을 꺼냅니다.  ‘아 이런 ….’  5만 원짜리 두 장입니다. 얼마나 힘드냐며 “내가 이거라도 건네야 마음이 편하겠다” 하십니다.
 5만 원짜리 두 장을 들이미는 손과 뿌리치는 손이 성당 안에서 잠시 부산했습니다. 감사의 말로 가까스로 자리를 모면하고 성당을 빠져 나오는데, 확 얼굴이 후끈해 왔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으로 모두를 얻느니라…”
야음성당 한 카페에 올려져 있는 테레사 성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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