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원전 제로’와 미래소년 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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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취재하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오면 늘 ‘촌것’이 된다.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면 바뀌어 버린 노선이 나를 헤매게 만들고, 너도 나도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는 모습을 나는 지갑만 찍고 간다고 착각해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니 가끔 한국에 들어오는 나로서는 항상 촌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변하는 건 전자 제품이다. 내가 아이 키울 때 손으로 눌러서 젖을 짠 수동식 유축기는 어느새 전동식이 되어있었고 화장실에는 비데가 많아졌다.

편리함을 지향하는 대중의 심정을 간파해 이를 사업 아이템으로 승화시킨 기업들의 아이템들이 사방에 차고 넘친다. 한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이 도저히 도시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고, 집집마다 냉장고 대수도 늘어났다. 자연히 전기 사용량도 늘었다. 이렇다보니 여름이 다가오면 블랙아웃(정전)을 걱정하는 기사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늘어가는 전기량을 감당하려면 발전소도 같이 늘려야 한다. 그래서 원자력 발전소는 하나둘 늘어났고 원자력 에너지는 현대사회의 편리함을 충족시켜주는 깨끗하고 고마운 에너지가 됐다. 적어도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 문제가 생기기전까지는 말이다. 작년 원전 사고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리고 올해 5월 일본 정부는 원전 재검진을 이유로 일본 땅에서 가동되던 원전 50기를 모두 멈추는 ‘원전 제로’를 시도했다. 원전 없이 여름이 다가오자 일본 국민들의 절전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취재차 들린 도쿄 세타가야의 맨션에 사는 도요미씨의 집도 그랬다. 도요미씨는 필요 없는 전기 제품들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원전 제로가 되고 나서 집안을 둘러보니 집안에 필요 없는 전기 제품이 너무 많았어요. 세어보니 40개나 넘더라고요.”

토스터기를 버리고 빵을 프라이팬에 굽고 전기면도기, 전동 칫솔, 전기오븐, 식기 세척기, 빨래 건조기 등 전자 제품의 반 이상을 버렸다고 했다. “식기 세척기를 버리고 손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 건조기를 버리고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일들은 참 불편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이 제일 많아 과감히 버렸습니다.”

도요미씨는 최근 절전을 위해 약간 어두운 전구로 집안의 등도 바꿨다. “처음에는 어둡다고 느꼈지만 살다보니 바꾸기 이전과 밝기가 다르지 않다고 느낄 만큼 익숙해지더군요.” 그녀는 “아이들에게 원전을 넘겨주지 않으려면 우리 세대가 불편하더라도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에 전기 제품을 없앴다”고 말했다. 

▲ 김영미 국제분쟁전문 PD

 도요미씨는 내게 전기세를 3분의 1 이상 줄었다며 영수증을 보여줬다. 비록 원전사고라는 큰일을 겪고 나서야 사람들이 깨달은 사실이지만 일본 엄마들은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절전에 나서고 있었다. 그 결과 원전 재가동이 되기 직전까지 올해 최고 무더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제로’ 상태에서 정전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7월초 일본 정부가 원전을 재가동하면서 어린 시절 본 만화 〈미래소년 코난〉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다시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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