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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하 PD의 음악다방]

비가 추적추적 오는 계절이다. 비가오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부침개가 아닐까? 그저 습관화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비가 올 때 빗소리를 들으면 부침개를 연상하게 된다. 그렇듯 나에게는 여름 장마철이 되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바로 ‘휘모리 잡가 육칠월 흐린날’이라는 곡이다.

곡의 제목에서부터 이 노래가 어느 때 어느 날씨를 말하고 있을지 예상할 수 있다. 이렇듯 ‘육칠월 흐린날’이야 짐작을 할 수 있지만, ‘휘모리’나 ‘잡가’는 생소한 영어 단어처럼 모르는 말일 수도 있을터다.

먼저 ‘휘모리’는 서양음악의 ‘안단테’, ‘알레그로’ 등과 같이 악곡의 빠르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음악에서는 ‘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빠르기로 이해를 하면 된다. 그럼 이제 남는 것은 ‘잡가’다. ‘잡가’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성행한 노래였는데 우리들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부르는 노래라기보다는 전문 소리꾼이 부르는 노래 범주로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육칠월 흐린날’은 육당 최남선의 <시조유취>의 ‘어듸야 낄낄’이라는 제목의 옛 시조에 대답이 되는 이야기를 더해서 만들어진 곡이다.

▲ 휘모리 잡가 ‘육칠월 흐린날’ 악보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런 이야기야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여름날 선풍기 앞에 눈을 지긋이 감고 머리카락 날리며 흥얼대듯 지나가는 이야기로 잠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전체적인 노래의 느낌은 하나의 이야기를 래퍼가 장단을 맞춰 노래하듯 진행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래의 내용이다. 가사를 한 번 들여다보자.

1. 육칠월(六七月) 흐린 날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곰뱅이 물고 잠뱅이 입고 낫 갈아 차고 큰 가래 메고
호미 들고 채쭉 들고 수수땅잎 툭 제쳐 머리를 질끈 동이고 검은 암소 고삐를 북 제쳐 이랴 어디야 낄낄 소 몰아가는 노랑 대가리 더벅머리 아희놈 게 좀 섰거라 말 물어보자 -

저접대 오뉴월 장마에 저기 저 웅뎅이 너개지고 수풀 져서 고기가 숩북 많이 모였으니 네 종기 종다래끼 자나 굵으나 굵으나 자나 함부로 주엄주섬 얼른 냉큼 수이 빨리 잡아 내어 네 다래끼에 가듯이 수북이 많이 눌러 담아 짚을 추려 마개하고 양끝 잘끈 동여 네 쇠등에 얹어줄게 지날 영로에 우리 임 집 갖다주고 전갈하되 마참 때를 맞춰 청파 애호박에 후추 생 곁들여서 매움삼삼 달콤하게 지져 달라고 전하여 주렴 /

2. 우리도 사주팔자 기박하여 남의 집 멈(머슴) 사는 고로 새벽이면 쇠물하고 아침이면 먼 삼나무 두 세 번하고 낮이면 농사하고 초저녁이면 새끼를 꼬고 정밤중이면 국문자나 뜯어보고 한 달에 술 담배 곁들여 수 백 번 먹는 몸뚱이라 전할지 말지.

위의 노래에서 ‘1’과 ‘2’로 구분을 지었는데 이는 ‘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의 주체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1’에서 “~아희놈”까지 ‘1’의 주체가 그 ‘아희놈’을 표현하는 수식어를 그렇게 길게 열거한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행동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인지가 노래 가사 안에 길게 표현이 되어있는데 풍자적인 모습이 마치 김홍도의 그림을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든다.

‘1’의 주체는 길게 표현한 총각에게 장마철에 웅덩이가 지고 그 안에 고기가 수북하게 많이 있으니 주어다가 임의 집에 갖다달라고 한다. 예전에는 장마철이 비가오면 웅덩이가 생겨 그곳에 갇혀버린 고기들이 꽤 있었구나 하는 풍경을 그려보게 된다. 이렇게 ‘1’의 주체는 고기를 그렇게 담아다 자신의 임에게 갖다가 달라고 한 것도 부탁이었으나 대형마트의 원 플러스 원(1+1)도 아닐진데 부탁을 가볍게 하나 더 한다. 임에게 부침개를 해 놓으라 전해달라고... 능청스런 모습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이후 ‘2’의 주체인 그 총각의 대답이 이어지는데 “나는 못해요”라고 바로 대답을 하기보다는 자신은 머슴살이를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어 그것을 전할 수 있을지 말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팔자를 구구절절 이야기 하고 있다.

▲ 김은하 국악방송 PD
이 노래는 두 사람의 대화체 노래인데 장마철의 옛 풍경이 그려져 정감이 간다. 이제 이 노래에 나오는 ‘도롱이’, ‘곰뱅이’, ‘잠뱅이’ 등의 단어들을 삶의 단어로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노래도 하나씩 잊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단어들처럼….

주머니 속에 딸랑이는 동전이 귀찮기도 하지만 자동판매기 앞에서 그 하나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고 간절해지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우리는 우리 것을 찾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좋다고 해도 내가 좋은 줄 모르면 좋은 것이 아닐 것이다. 요즘 대중가요처럼 선율이 흥미롭지는 않지만 여름철 계곡물에 발 담그고 유유자적하듯 이런 노래들을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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