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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따라 나와!” 안 그래도 어두운 얼굴이 더 어두워진다. 고개를 숙인 채 으슥한 복도로 따라 나오는 덩치 큰 남자. 입사한지 얼마 안 된 파릇한 신입 후배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신입이라지만, 어쩐지 나는 ‘천사 같은 선배’는 못되지 싶다. 어설프게 일하는 걸 두고 보다 급기야 펑크를 낸 후배에게 폭발해버렸다.

고개를 푹 숙인 후배의 정수리 위로, 언성을 높인 채 말 폭탄을 쏟아냈다. 혼내는 와중에 정말이지 이 말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야, 조연출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못 참을 것 같음 니가 나가!” 상황은 잘 마무리 짓고도, 이상하게 ‘네가 나가!’ 라는 한마디는 공명처럼 귓속에서 울렸다. 나중에 생각해봐도 꽤나 민망한 문장이다. 훗날 후배가 들어오면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신입시절 일기장에 써놨던 말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 용산 참사를 다룬 〈두개의 문〉이란 다큐멘터리를 봤다. 한 장면이 여운이 길었다. 용산 참사 당시 시위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망루로 투입된 특수부대원이 찍은 ‘채증영상’이었다. 영상은 건물의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동료들의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먼지와 연기로 희뿌연 건물 안. 순간, 어디선가 붉은 화염이 치솟는다. 퍽퍽 소리를 내며 치솟는 화염. 불기둥이 커지면서 급기야 채증영상을 따던 카메라는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그 순간 누군가가 윽박지른다. “야 이 새끼야 뭐가 무서워!” 카메라가 순간 멈칫한다. “뭐가 무섭다는 거야 새끼야!” 분명 특수부대의 상관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 한마디에 도망 나왔던 채증병의 카메라는 다시 힘겹게 화염이 치솟는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덜덜거리는 화면의 떨림만이 카메라를 든 자의 두려움을 전달할 뿐이다.

카메라 렌즈에선 ‘찍는 자’의 감정도 흔적으로 남는다. 흔들거리는 손, 거칠게 들리는 숨소리, 눈앞에서 치솟고 있는 불길…. 그 아비규환 같았던 시간은 굳이 증언하지 않아도 충분히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그 상황에서 ‘팀장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얘기하지 못한 채 남일당 건물에 남았다. 특수부대원들은 ‘개길 경우의 응징’을 알았기에 그랬던 걸까? 아니, 오히려 그들을 남아있게 한건 ‘내면화된 복종’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로 가나’도 모르는 채 ‘상부의 명령이 모든 걸 해결하겠지'라고 믿으면서.

카메라를 든 채증병의 두려움에는 ‘신입시절’의 내가 있었다. 화를 내는 선배 앞에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이 꽉 깨물고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하던 모습이. 동시에 ‘뭐가 무서워!’라며 윽박지르던 목소리에서는 ‘후배를 혼내는 나’의 모습도 비쳤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싫으면 니가 나가!’라는 말이 갖는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속 장면은 ‘폭력’이 결국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계속 연결되어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 백시원 SBS 교양PD

 

우리는 어떤 상황에 개길 수 있을까? 어떤 선배는 이른바 ‘개기는 것도 연습’이라 말했다. 맞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더구나 그걸 용인해주는 조직은 더더욱 없다. 머리로는 ‘다양한 의견의 중요성’을 얘기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게 사회다. 후배의 기를 잔뜩 죽여 놓은 뒤 후배는 과연 ‘선배 이건 아니지’라고 쉽게 입을 뗄 수 있었을까. 결국 개기는 것도, ‘개길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조금은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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