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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지하철 안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그리고 안부도 묻기 전에 들려오는 푸념 섞인 목소리. “승희야, 요즘 PD 구하기 왜 이렇게 힘드니? 하늘에 별 따기다. 정말~ 휴먼 다큐 잘 하는 PD 있으면 소개 좀 해주라. 가능한 빨리~ 급해! 부탁한다.” 아는 작가 언니다. 휴먼 다큐라면 어느 정도 경력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PD가 지금 쉬고 있는 사람이 있나? 언니 사정은 딱하지만 “글쎄~ 여기저기 알아보겠지만 장담은 못해 언니, 일단 찾아보고 연락 줄게. 나 너무 믿지는 말고…….”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전에도 아는 제작사 대표에게 그리고 같이 일했던 PD에게서도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한차례 주위 PD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어떤 PD는 전업을 했고, 아직 일을 하고 있는 PD들은 여기저기서 일을 하느라 바쁘단다. 그야말로 ‘PD 품귀현상’이다.

채널은 많아졌는데 PD들은 점점 방송판을 떠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더 큰 문제는 조연출도 없다는 것이다. 조연출이 없다는 건 곧 앞으로 이 방송을 이어갈 PD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연출 급여는 한 달에 70~100만원, 일주일 내내 잠까지 참아가며 견뎌낸 노동력의 대가로는 믿을 수 없는 금액이다. 이 돈을 받으며 1년 정도를 버티면 짧은 꼭지 하나 만들 수 있는 PD가 된다. 그렇다 해도 월수입은 고작 120만원 안팎, 집이 서울이라 생활비가 들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자취를 할 경우에는 아끼고 또 아껴도 남는 돈이 거의 없다. 자칫 아프기라도 한다면 적자다.

돈이 없으면 아프지도 말아야 하는데 일이 하도 고돼 쓰러지는 친구도 여럿 봤다. 대부분의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 그렇다고 일을 쉴 수 있나? 내가 아픈 것은 함께 제작하는 팀에 민폐라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업무에 복귀한다. 다크서클은 점점 짙어지고, 피부 고민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1~2년 고생을 하다 보면 열정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제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주위의 권유와 함께 결심을 굳히고 대부분의 조연출들이 방송판을 떠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게 된 생존자들. 아직 가슴에 남아있는 열정을 되새기며 앞으로 닥쳐올 고난에 대비 정신 무장을 한다. 갓 입봉해서 혼자 가야하는 지방 촬영. 이른 새벽 무거운 카메라 가방과 트라이포트를 들고 가장 싼 이동수단인 고속버스에 오른다.

정신없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가며 졸다 도착한 촬영 장소, 현장 확인 결과 구성안은 소설이었고, 섭외는 거의 안 돼 있다. 당장 작가한테 전화해서 따지고 싶지만 나보다 연차가 많은 작가라 그럴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 먼저 마을 이장님을 뵙고 간곡히 부탁을 드려 섭외를 무사히 마치고 원맨쇼를 시작한다.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도 떨고, 멘트 지도도 하고, 촬영도 하고, 일도 돕고…. 이 모든 일을 해가 지기 전에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돌아오면 밤샘 편집, 시사, 그리고 녹화까지 숨이 탁탁 막히는 일정들. 그렇게 몇 개월을 버티다 하나 둘 나가떨어진다.

 

▲ 김승희 독립PD
그래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단 하나의 바람 때문에 견뎌왔던 건데 그걸 포기할 만큼 독립PD들이 처한 환경은 혹독하다. 계속 줄어드는 제작비로 인해 PD 혼자 감당해야할 몫이 많아지고 상황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PD들이 이 방송판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독립PD에 대한 대우와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PD 품귀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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