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방송 파업, 일본 언론에 화두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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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일본 도쿄대학 혼고캠퍼스에서 한일국제심포지엄 ‘방송의 공정성이란 무엇인가-한국 방송 파업을 통해 보는 한일 미디어 산업의 미래’가 개최되었다. 심포지엄은 홋카이대학 동아시아미디어연구센터와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하야시 카오리 연구실이 공동주최한 것으로, 한국의 방송파업 사태를 통해서 ‘방송의 공공성’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한국에서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과 황대준 한국PD연합회장을 비롯해 NHK프로듀서 출신인 나가타 코조 무사시대학 교수 등 일본 언론연구자들이 참석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도 여러 기회를 통해 ‘방송의 공공성’이란 주제의 논의가 계속돼 왔지만, 한국의 현 사태를 계기로 다시금 ‘공정방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물음이 크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이번 심포지엄은 일본 언론학계와 미디어업계에서 주목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동안 일본에서는 이명박 정권에서 이루어진 언론탄압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강택 위원장이 기조강연에서 ‘2012 한국언론항쟁’이라고 명명한 이번 한국 방송의 파업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해임’은 일본에서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단신으로 짤막하게 처리됐을 뿐이다. 이번 파업에 대해서도 <아시히신문> 6월 27일자에서 ‘한국미디어 속속 파업’이라는 제목으로 비교적 상세히 전한 것이 일본의 언론 보도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 ‘방송의 공정성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지난 16일 일본 도쿄대학 혼고캠퍼스에서 열린 한일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한국의 언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사가 파업사태의 본질을 꿰뚫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번 파업이 단순히 낙하산 사장이 임명됨으로써 훼손된 ‘공정보도’(아사히신문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의 회복을 위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항쟁에 의해 방송에도 노조가 설립된 후, 수 많은 파업과 그것에 대한 탄압이 따르는 방송민주화의 성과 속에서 획득해 지켜낸 것이 단체협약의 ‘공정방송’ 조항이다. 이명박 정권도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이나 <PD수첩>에 대한 ‘제재’만으로 방송을 재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 측은 조선․중앙․동아의 방송진출을 허용했고, 방송사 낙하산 경영진은 단협의 ‘공정방송’ 조항 삭제 등을 통해 공영방송을 무력화하려 했다.

따라서 공영방송 사장의 퇴진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도, 그러한 방송장악 의도를 분쇄하고 공영방송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과 함께 공유하며 지켜낸 이번 파업은 한국 방송민주화의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투쟁의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방송 노동자의 ‘공정방송’에 대한 요구와 투쟁을 ‘정치파업’으로 인식하는 일본에서는, 파업을 언론자유의 수호라는 측면에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2012 한국언론항쟁’의 의미를 논의한 것은 일본의 저널리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심포지엄에서는 일본 공영방송에 있어서의 ‘시민의 부재’를 진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도 ‘방송의 공공성’이 크게 위축받은 사건이 있었다. 2001년 1월, NHK 간부가 <문제화 되는 전시 성폭력>(ETV 제작)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도 전에 보수정치인에게 시사를 해 내용을 수정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ETV 사건’의 재판을 맡은 최고재판소가 편집권은 경영자측에 있다고 판결했듯이 프로그램 제작 현장이나 시민・시청자에게 ‘편집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재 일본의 저널리즘이다. 사건 당시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나가타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공영방송이 시민과 연대하지 않는 것이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게 했다며 NHK를 비판했다.

한국의 방송파업 파업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공영방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시민과 시청자들이 인식을 하고, 파업에 대해 이해와 지지, 격려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즉 파업을 통해 방송인들은 공정방송에 있어서의 시민・시청자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다.

▲ 현무암 홋카이도대 교수
‘공정방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단순히 정치적・당파적 공평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된다면, 한국의 방송 파업은 대단히 당파적인 행위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하지만 도지샤대학의 와타나베 타케사토 교수가 이야기 하듯이 ‘공정’의 의미를 ‘공중을 위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공정방송이란 ‘공적이익과 사회개혁을 위한 정보제공 활동을 행하고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공정중립주의’를 표방하기 위해서도 방송의 주인은 시청자와 시민이라는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번 한국 방송 파업에 있어서의 참된 성과는 공정방송의 가치 그 자체보다도, 방송인들이 이러한 원칙을 ‘자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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