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 해고, PD수첩 ‘제로 세팅’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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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MBC로부터 해고된 ‘PD수첩’ 정재홍 작가

MBC경영진이 <PD수첩>의 메인작가 6명 전원을 해고했다. 구성작가들은 무더기 해고 사태를 ‘<PD수첩> 죽이기’ 일환으로 보고 집단 반발하고 있다. 해고된 작가들은 12년차부터 2년차까지 다양하다. <PD수첩>에서 PD들과 함께 탐사저널리즘을 꽃피운 숨은 공신 노릇을 해온 그들은 <PD수첩> 탄압의 목격자이자 피해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이제 작가들은 MBC 바깥에서 마이크를 들고 ‘해고 철회’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12년 째 <PD수첩>에서 일한 정재홍 작가(현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도 그 중 한 명이다. 선배 작가로 더 이상 이번 일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선·후배들과 손을 잡았다. 그는 작가 해고 사태를 “언론의 독립과 비판 기능을 저버린 행위”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번 일이 너무 황당해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 내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섰다”는 정 작가를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다.

▲ 12년 째 에서 구성작가로 일한 정재홍 작가 ⓒPD저널

- 작가 집단 해고는 <PD수첩>의 2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 심경은.

사실 혼자만 해고될 줄 알았다. MBC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기고를 썼고, 작가협회 등의 성명서를 주도하는 등 밉 보일 짓을 한 셈이다. 당시 성명서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모두들 우리들의 일터였기 때문에 파업에 지지하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개인의 문제라면 이번 사태를 받아들이겠지만 후배들까지 내쳐졌다. 너무 황당하게 당해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 내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아 대응하게 됐다.

- 지난주 기자회견과 대체 작가 거부 선언 결의대회 후 MBC측의 태도는.

전해들은 바로는 오늘(30일) 결의대회가 끝나고 MBC측이 해고 작가들의 출입을 완전히 금지했다고 한다. 방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보와 사유에 대해서 제대로 듣지 못한 상황에서 출입금지라니 말이 되는가. 다른 작가의 증언으로는 청경들이 이날 해고 작가 6명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출입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대조했다고 했다.

- MBC에서 17년 간 일했다고 들었다.

17년 동안 MBC를 일터 삼아 공백 없이 일했다. 사실 10년 전부터 선배로부터 끊임없이 들은 말은 “언제든 내쳐질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라”였다. 프리랜서의 숙명이기에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심 구성작가가 ‘직업화’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방송가에서 후배 구성작가들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번 사태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 구성작가의 ‘직업화’란 무엇을 말하나.

예전에 구성작가의 업무는 대중없었다. 2000년대 초 구성작가 업무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구두로 계약을 해오던 관행 대신 프리랜서 업무위임계약서를 통해 일을 하는 등 방송가에서 구성작가로서 최소한의 입지를 다져왔다.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PD수첩>의 경우 아이템과 관련해 누구를, 어떻게, 무엇을 다룰 건지 취재라인을 잡는 등 전문성을 기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구성작가의 직업화’였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작가 해고 사태가 갖는 함의는.

<PD수첩>에서 10여 년 넘게 일하면서 구성, 섭외, 취재 노하우, 인터뷰 기법 등 취재 전반에 대한 인프라를 쌓아왔다. <PD수첩>의 힘은 최승호, 한학수, 이우환 등 전문적인 PD들의 역할과 함께 구성작가들의 축적된 역량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번 사태는 그간의 인프라를 무시하고 ‘제로 세팅’을 노린 것이라고 본다. (MBC 경영진은) 이름만 <PD수첩>이지 입맛에 맞는 작가들을 데려다 놓고 그간의 연속성을 단절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 결국 ‘ <PD수첩> 죽이기의 완결판’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내부에서 감지된 점은.

예전에는 아이템에 대한 위험요소를 걱정했다. 예컨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 등을 고려해 객관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윤길용 전 시사교양국장 부임 이후부터는 정부나 권력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은 아이템은 무조건 거부됐다. 아이템 당 4주 정도의 기획 기간이 주어지는데 방송 일주일 앞둔 시점까지 아이템 확정을 안 해주는 게 일쑤였다. 결국 아이템 통제를 넘어 담당 PD들을 내보내는 등 <PD수첩>을 죽이는 수순을 밟았다고 본다.

▲ 방송4사구성작가협의회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의 작가에 대한 해고 철회 및 대체 작가 거부 선언을 밝히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PD저널

- 회사 측에서는 작가들의 해고를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고 말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나.

(사측이) 낮은 시청률로 해고한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실상 아이템 검열을 하지 않을 때의 시청률은 10%를 웃돌았다. 아이템 검열이 강화되면서 시청률이 하락했다. 시청자들이 무말랭이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겠는가. 그 책임을 형식적으로 작가들에게 지운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7번 넘게 아이템을 냈다. 아이템 때문에 서로 기분 상하는 걸 왜 모르겠는가. (작가들은) 탐사보도의 본령이 비판이라 여기며 역사에 남기자는 마음이 컸으나 결과적으로 해고 사태가 벌어졌다.

- MBC경영진이 대체작가를 강행했을 때 우려되는 점은.

이번 사태로 시사교양작가의 자리가 철저히 무너졌다. 이 무너진 자리에 대체작가들이 온다면 얼마를 일하든 간에 작가로서 대접받지 못하지 않겠느냐. 전원 해고는 언론의 독립과 비판 기능을 저버린 행위이다. 탐사보도는 거악(巨嶽)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들이 쫓겨나면서 생긴 직업군으로서의 구멍과 탐사보도의 비판정신이 짓밟힌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줄 것을 작가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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