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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바고(보도유예)란 취재원과 언론사 사이에 지켜야 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법적 효력을 갖는 것도 아니고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국가 안보나 국익 등의 차원에서 일정기간 보도를 유예해야 한다는 엠바고 요청이 올 경우, 그 판단은 언론인과 언론사가 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법적· 윤리적 책임도 언론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 10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한 것과 관련해 엠바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실은 일본 언론이 10일 새벽 또는 이날 조간신문에서 일제히 보도한 데 반해 한국 언론은 엠바고 때문에 정부의 발표가 있고 난 뒤에야 뒤늦게 보도한 것이다.

일본 언론보다 거의 하루 늦게 보도하는 바람에 정작 ‘자기나라 대통령의 최초 독도방문조차 일본 언론을 통해 알아야 하느냐’는 반문과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이대통령의 엠바고 요청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것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의 엠바고를 존중한 한국언론은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모두 국민에게 최신, 최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했다. 오히려 일본 언론을 통해 자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소식을 전해야 하는 ‘국내 언론 부재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으로 국내 일간지들은 지난 11일 일제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소식을 전했다. 사진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비판한 <경향신문> 8월 11일자 보도.

우선, 대통령의 최초 독도방문과 관련하여 엠바고를 요청해 이를 받아들인 국내 언론사에는 잘못이 없다고 믿는다. 보도금지도 아니고 일정기간 보도를 유보해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은 나름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한 언론사에 돌을 던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결과론적으로는 언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꼴이 됐지만 이 부분은 좀 더 따져봐야 한다.

문제의 원인 제공은 청와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언론사에 엠바고를 걸어놓았다면 설혹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면 똑같이 엠바고를 요청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 언론에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부분에서 청와대의 해명과 언론의 보도가 서로 엇갈린다. 청와대는 ‘일본 정부에 통보한 바 없다’는 주장이 보도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독도방문 관련한 내용을 일본에 통보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국내 언론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취재원의 잘못이지 언론의 잘못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온라인 <교도통신>은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10일 오전 독도에 들어간다고 한국정부가 9일 일본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믿는다면, 한국 정부가 국내 언론에 엠바고를 건 후 일본 정부에 통보했고 일본 언론이 이를 보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대통령이 많은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왜 독도에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이를 국내언론보다 일본 언론이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임기 중 약 반년동안 완전한 레임덕 상태에 빠져있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광복절을 앞두고 대통령 자신이 독도를 방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올해 초부터 주변에서 강해지고 있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에서조차 비밀리에 추진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실이 어떻게 일본 정부로 전달돼 일본 언론이 1보를 보도하게 됐는지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비밀을 유지해 온 당사자만이 그 비밀의 열쇠를 갖고 있다. 그동안 이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을 보면, 청와대의 해명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 김창룡 인제대 교수
엠바고를 이런 식으로 악용할 위험성이 있는 취재원과는 신사협정 자체를 파기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는 결과가 된다. 취재는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엠바고의 진실은 청와대의 유체이탈화법에 의존해서는 영구미제가 될 것이다.

엠바고는 상호 존중과 신뢰를 전제로 한다. 어느 한쪽이 사기를 치게 되면 신사협정을 존중한 당사자조차 사기꾼과의 동업자로 전락하게 되는 법이다. 가해자에게는 벌을, 피해자에게는 위로를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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