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세태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을 2012년 버전으로 패러디 했음을 먼저 알립니다. 문단과 문장 특성 등을 흉내내 보았습니다. 소설은 3인칭 관찰자시점이나 ‘유림은’이라고 쓰자니 차마 오글오글해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사용했습니다.
휴가를 낸 월요일,
아침이었다. 시간이 있어도,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어, 마음에 괴로움이 일었다. 짐을 챙겨 무작정 시내 카페로 나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자니, 내가 꼭 저렇지 싶어 측은하다가도, 당장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리고 있으니 괜한 우월감에 비실비실 웃음이 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때, 아침부터 욱신대던
오른 눈이, 갑자기 불타는 듯하였다. 거울을 보니 핏대가 가득 선 것이 필경, 눈병에 걸린 모양. 서둘러 짐을 챙겨, 주변을 보니, 안과와 성형외과 일색이라. 새초롬한 간판의 안과에 들어서니 요즘 유행한다는 병원 코디네이터인 듯한 여성이 종종걸음 치며 다가와, 충혈 된 내 눈을 보고는 대번에, “저희는 안성형(라식,라섹)만 하고 있어 안질환은 진료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매정한 깍듯함에 “아.. 네”만 하고 돌아서길 몇 차례. 가는 안과마다 같은 대우에, 그나마도 몇 차례 거절 끝에 찾아간 병원 대기실에서도 군식구가 된 느낌에 좌불안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호명되어 진료실에,
입성하였다. 의사 선생은 손전등으로 내 눈을 비춰보더니 감기바이러스가 눈으로 발현된 것이라며, 예상 경과 등을 말해주는 데, 마치 경마 아나운서인 양, 그 말의 빠르기가 보통을 넘어, 나는 그 말을 해독하는 데만도 정신이 아득하였다. 말인 즉, 이 병은 별달리 낫게 할 방도가 없으니 안약을 넣고 며칠 뒤 다시 병원을 찾아오라는 것.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나는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 밖 무슨 찜질기 같은 것에 앉혀진 것이었다.
겨우 마주한 의사에게,
병명도 묻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라는 알량한 답만을 얻고 진료실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던 나를 스스로 몇 번이고 자책하였다. 나는 왜 바보같이 내 병명도 모르고, 고작 기다리는 일 밖에 없다면 왜 또 며칠 뒤 왜 다시 병원에 오라는 것인지, 등을 묻지를 못하였나, 못난 나를 자책하고 그게 왜 나를 자책할 일이냐 또 자책하기를 몇 번. 마치 배터리 다된 휴대폰 마냥 당이 떨어져, ‘그래, 나는 돈을 내러 겨우겨우 여기까지 찾아온 거였군’ 하는 생각을 끝으로 자책을 그만두었다.
그 알량한 진료의 대가로,
만원을 지불하고, 처방전을 들고 다시 대도시 가운데 서니, 길 가운데 입간판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보인다. 5만 명이 자기 옆을 지나가는데 마치 사람이 아닌 양, 간판인 양 서있자니 본인도 마음이 엉망인지 애먼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저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이 대도시는 쌀쌀맞기만 한 것 같아, 대도시에 살기 위해서 내 인간성은 몇 푼을 더 벌어 도시에 지불해야 하는가, 씁쓸한 뒷맛을 느끼고, 인간 입간판을 등지고 나는, 다시 5만 명 군중 속에 묻히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