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올림픽 중계 프레임, 이제는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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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개막식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많이 달랐다. 화려하고 일사불란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달리 다소 산만했다. 그러나 그 산만함 속에서 읽어낼 코드가 많았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보여준 것을 한마디로 ‘중화’라고 한다면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대영제국의 영광’이나 ‘산업혁명의 성과’가 아니라 그 영광과 성취와 함께 그늘과 부작용도 살피고 개인의 삶도 조명했다. 모르면 모를수록 의문이 들지만 알면 알수록 잔재미가 있는 개막식이었다.

개막식 예술총감독을 맡은 대니 보일 감독이 보여주려 한 모습은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며 사는 ‘경이로운 영국’이었다. 보통의 영국 가정의 모습이라고 보여준 장면에서는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부부로 등장했다. 평범한 신세대의 모습도 흑인 남녀가 커플로 등장했고, 자본가 그룹을 보여준 장면에는 흑인과 아시아인이 끼어 있었다.

백미는 영국 드라마 중에서 최초로 동성 간 키스신을 방영한 드라마 <브룩사이드>의 일부분을 방영한 것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캘리번의 대사 “두려워하지 마라, 섬 전체가 즐거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로 집약해 ‘경이로운 영국’을 표현했다.

▲ 런던올림픽 개막식 중 한 장면
이렇게 영국이 대단함과 화려함 대신에 평범함과 소박함을 표현할 때 한국의 한 방송사 아나운서는 매일 밤 모자를 바꿔 써가며 영국 귀족문화를 오마주했다. 신이 그녀에게 17개의 모자를 들고 가라고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의 반발로 그녀는 결국 모자를 벗어야 했다. 그 모자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했다. 방송사 간부진이 그녀를 징계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이다.

과유불급이었다. 번지수를 잘못 짚은 화려함이었다. 올림픽은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 아니었다. 마치 오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약속한 중동에, 이곳은 전쟁이 났던 곳이니 ‘밀리터리룩’을 입고 간 것과 마찬가지의 빗나간 패션이었다.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올림픽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올림픽 기간에는 무리수를 두는 여러 가지 ‘오버질’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올림픽 한국축구팀의 준결승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현지에 가려다 측근의 만류로 포기했다. 결국 그는 올림픽 기간의 민족주의 분위기에 편승해 독도 발언으로 인기를 만회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대기업 총수들도 열심히 올림픽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응원 모습을 노출하기도 하고 메달리스트에게 아파트를 주겠다느니 평생 라면을 제공하겠다느니 하면서 생색을 냈다. 물론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돈으로 말이다.

자, 올림픽 중계를 자신의 입신양명 기회로 삼으려 했던 아나운서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방송을 들여다보자. 올림픽을 이용하려는 자와 올림픽을 즐기는 자의 대척점에서 방송은 가히 전자의 괴수였다. 올림픽을 이용하려는 기업인과 정치인들에게 십분 이용당하면서 그들을 이용해 수익을 올렸다. 올림픽 중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뉴스를 해도 올림픽 소식, 다큐를 해도 메달리스트 다큐, 현지 토크쇼까지 모두 올림픽 소식이었다.

TV는 시청자들에게 세상을 향한 창이다. 그런데 올림픽을 향한 창은 어땠나? 아직까지 개발독재시대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인의 축제에서 우리 선수들의 모습만 찾았다. 그것도 메달을 따는 모습만 찾았다. 물론 시청자들이 그런 올림픽 중계를 원한다고 충분히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심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올림픽이라는 큰 잔치가 열렸다. 전 세계가 이 잔치에 주목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한국은 잔칫상에 올라온 상차림보다 한국선수단이 싸간 도시락에 더 주목했다. 전 세계가 위대한 성취와 아름다운 도전에 주목할 때 우리 선수단에만 카메라를 들이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올림픽의 다양한 모습이 환기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올림픽을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올림픽이 왜곡될 때 올림픽을 즐기는 자들의 조용한 움직임이 돋보였다. 자신의 ‘넘사벽’이 된 중국의 쑨양을 친동생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는 박태환, 단체전 은메달을 받고 왜 울지 않느냐는 질문에 “왜 울어요?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라고 말한 신아람, 4위를 하고도 조용히 기도를 올린 장미란, 그들은 올림픽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 중국의 류샹은 넘지 못한 허들에 키스했고, 장미란은 들지 못한 역기에 키스를 보냈다.

이제 성장에 대한 고민에서 성숙에 대한 고민으로 옮길 때다. 한국 선수라는 나무만 아니라 올림픽이라는 숲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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