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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갔지?” 몇 번을 훑어봐도 없다. 어떻게 건진 장면인데. 밤새 추위에 떨며 갖은 고생을 해가며 찍어온 내용이 작가의 편집구성안에 송두리째 빠져있는 걸 발견할 때의 허탈감. 프리뷰 때 작가에게 취재 무용담을 떠들어댔던 모습이 떠오르며 무안하다. ‘고생한 게 아까워 절대 뺄 수 없다는 힌트를 그렇게나 줬는데…’  ‘찌~익’ 자존심에 금이 간다.

‘이래 봬도 PD인데. 오기가 있지.’ 구성안 따위 무시하고 편집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밤을 새워 완성한 1차 편집본.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돌려본다. 웬 흐름이 이렇게도 산만한가. 부자연스럽다. 아까워 버리지 못한 부분들 때문이다. 다시 붙일 수밖에 없다. 파인커팅(fine cutting)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NLE 같은 건 꿈도 못 꾸던 시절이다.

“편집 잘하셨네. PD가 죽을 고생을 했건 안 했건 시청자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산만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그게 제일 중요하지.” 작가는 내가 편집하는 걸 죽 지켜보기라도 한 걸까. 깡통처럼 자존심이 다시 찌그러든다. 얄밉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아직 경력이 달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작가는 제 손바닥처럼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데. 초년생 PD 시절의 추억이다.

이렇게 나는 선배 PD들 못지않게 작가들에게도 배우면서 PD가 되었다. 모든 PD가 비슷할 것이다. 물론 그 작가 역시 유능하든 아니든 더불어 일하는 모든 PD로부터 배우고 깨달으며 일류가 되었을 테지만.

“일류 PD가 일류 작가랑 일하는 거야.” <인간시대> 명 PD로 날렸던 한 선배의 말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대개 유능하고 훌륭한 선배들일수록 작가를 아꼈다. 필요하면 다른 방송사에서 모셔오고 전속계약도 했다. 그게 곧 프로그램도 살고 저도 사는 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 방송계의 화두는 급변하는 환경이다. 디지털 혁명의 와중에서 자칫하면 삼류 방송사로 전락하고 도태될 수 있다는 경고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변치 않는 게 있다. 우수한 콘텐츠 제작 능력의 중요성. 핵심은 기자, PD 그리고 작가다. 드라마와 오락은 말할 것도 없고 TV 저널리즘조차 작가를 빼놓고는 성립하기 어렵다. 신문과는 달리 텔레비전 저널리즘에서는 기자, PD, 작가를 일러 세 기둥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 기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방송사라면? “미래는 없다”는 것을 바보도 알 것이다.

리서처, 서브작가 그다음 메인작가. 오랜 세월의 단련을 거쳐 그 힘든 <PD수첩>을 맡아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간 일해 온 유능한 구성작가들. 소중한 자산인 그들이 일거에 잘렸다. 많지 않은 대가에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보람과 자존심으로 사는 이들이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교활하게 소리 없이 ‘교체’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토록 무모하게 ‘해고’해야 하는 건지. 불가사의다.

▲ 송일준 MBC PD
마키아벨리는 제아무리 군주라도 백성의 밥줄만은 끊어서 안 된다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어떤 절대 권력도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음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평소 즐겨 암송하는 헤이케 모노가타리의 한 구절로 상처 입은 작가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교만한 자 오래가지 못하나니 그저 봄밤의 꿈과 같고 사나운 자 결국엔 망하나니 바람 앞의 한 줌 먼지와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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