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 마지막 1시간, 우리의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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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MBC ‘골든타임’ 최희라 작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간명한 진실은 하루가 켜켜이 쌓인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힘을 잃는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곳에서야 깨닫는다. MBC <골든타임>의 중증외상의학과는 삶과 죽음의 접점을 다룬다. 의사와 환자들은 촌각을 다투는 시공간에서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고, 다시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건져내기도 한다.

삶의 등고선을 오르내리는 <골든타임>은 7회 연속 시청률 1위(15%, TNmS 기준)를 차지하며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골든타임>의 무대인 부산에서 막바지 집필에 열중하고 있는 최희라 작가와 지난 3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MBC <골든타임> ⓒMBC

생사를 오가는 환자의 목숨을 다투는 한 시간을 일컫는 <골든타임>은 중증외상의학과를 배경으로 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좌충우돌하며 한 뼘씩 성장하는 인턴 이민우(이선균 씨)를 보며 마음을 졸이다가도 고비를 넘기는 환자를 보며 안도한다. <골든타임>은 SBS <산부인과>에 이어 두 번째로 의학 드라마를 집필하는 최희라 작가와 <파스타>의 권석장 PD가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뒷받침하고 있다.

최 작가가 의학 드라마에서 다소 생소한 분야인 중증외상의학과를 중심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현재, 바로 여기를 다룰 수 있으니까요. 2012년 대한민국 의료 체계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거든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아 다루지도 않았던 소재라 시청자들도 알게 된다면 흥미를 느끼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흥미가 생겼고요.”

한발 더 나아가 <골든타임>의 주 무대는 최 작가의 전작인 <산부인과>처럼 지역 병원(부산 해운대 세중병원)이다. 그 이유로 최 작가는 “리얼리티”를 꼽는다. 그는 “많은 분이 ‘서울 대학병원에서는 중증외상 환자들을 다 받아서 수술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오해”라고 선을 긋고서 “오히려 메이저 병원들은 중증외상 환자들을 외면하는 편이고,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서 중증외상 환자를 받아 수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 작가는 실화를 드라마에 버무려 현실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컨대 중국집 배달원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5명의 아동을 후원해오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한 고 김우수 씨 사연을 드라마에 녹였다.

최 작가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국회에서 의료기록을 찾아보니 당시 소생하기 어려운 상태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사고 현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손쓰지 못하고, 한 시간 떨어진 2차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베일에 싸여있는 중증외상의학과를 드라마로 재현하기 위해 최 작가는 사전 취재에 심혈을 기울였다. 좋게 표현하자면 “저인망식 조사”,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삽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최 작가는 “응급실과 중증외상을 다루는 병원 4곳과 응급실 1곳을 돌았다”며 “여러 사정상 취재에 비협조적인 병원도 다수 있었고, 막상 협조해주는 병원을 가더라도 취재거리가 많지 않아서 여러모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시간이 촉박해 병원 옆 오피스텔에서 살면서 자문 선생님을 급하게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골든타임>은 병원 내 권력 암투, 인턴이나 레지던트의 성장 이야기에 치우친 의학 드라마와 달리 환자의 상황에 따른 의사들의 내적 갈등을 다뤄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그동안 갈등구조가 한 번에 이해되는 드라마나 치정극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다양한 장르 드라마가 태동하고 있어요. 막상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외부적인 갈등은 줄어들고 내적갈등이 더 커지잖아요. 그러한 시기에 태어난 드라마가 <골든타임>입니다.”

▲ MBC <골든타임> ⓒMBC

<골든타임>의 중심에는 늦깎이 인턴 이민우(이선균 씨)와 외상외과의 아이콘 최인혁(이성민 씨) 교수가 있다. “드라마에서 본 듯한 캐릭터가 아니되 행여 봤더라도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최 작가의 말마따나 이민우와 최인혁 교수는 신선한 조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방병원에서 느긋하게 일하고, 의학을 다룬 ‘미드’(미국 드라마)의 긴장감에 열광하던 이민우가 밤낮 가리지 않고 외상 환자들의 수술을 도맡는 최인혁 교수를 만나면서 극의 전개는 더욱 탄력 받았다.

“아무래도 민우와 최인혁에 대한 애정이 크죠. 민우는 찌질하게 성장해요. 귀엽죠. 최인혁은 소신과 행동 면에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고요. 이미 시놉시스 단계부터 주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최인혁은 뜰 거라고 예상했죠. 그렇지만 드라마에 민우가 없었다면 최인혁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돋보였을까 싶기도 해요.”

의학드라마인지라 대본 집필하면서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야기 속 일화를 만들어 의학적 검증 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한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의사에게서 OK가 떨어지고, 시청자도 재밌어하는 케이스를 뽑는 게 어렵죠. 시청자들은 디테일의 차이까진 모르지만 전문 드라마인 만큼 적확한 케이스를 뽑아내는 게 중요해요. 지금의 생방송 드라마 체제에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최 작가는 두 편의 의학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숱한 취재와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느낀 바가 많다고 한다.

“환자들이 저렴한 비용에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이만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훌륭하죠. 그러나 확실히 눈앞의 작은 이득을 중심으로 병원이 운영되는 듯해요. 당장 나에게 닥칠지 안 닥칠지 모르는 중증외상 같은 큰 문제는 뒤로 미뤄지는 거죠. 그러나 국민의 의식 수준에 맞게 차차 진행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골든타임>은 막바지에 들어섰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늦깎이 인턴부터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고 책임을 감내해온 중증외상 전문의까지 이들이 향하는 곳은 최 작가의 기획의도에서 이정표를 찾아볼 수 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 환자를 잃을까 두려움에 오싹해지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믿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그 무엇을 위해서는 그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는 것. 가슴에 품은 사표쯤은 미련 없이 던지고서라도 결국 그 환자를 살려내고야 마는 것. 그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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