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잠식한 사회, 낭떠러지에 선 낙오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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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CBS 특집 다큐멘터리 ‘불안’

CBS 특집 다큐멘터리 <불안>은 9월10일부터 사흘간 방송됐다. 이 프로그램은 놀이터에서 소년의 눈물을 보는 데서 기획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한 아이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놀리고 있었다.

그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너 그러다 노숙자 된다. 폐지 줍는 노인 된다. 밥도 못 벌어먹고 산다.” 바로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분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해질녘 놀이터에서 소년의 눈물을 보는 동안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 한 편을 떠올렸다.

소설 속에서 비참한 처지의 소년은 “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란 질문이 ‘나,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을까?’로 변해버린 듯했다. 나는 이 눈물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불안 사회이자 조로 사회라고 생각했다.

▲ ⓒCBS
불안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것은 우리가 유한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 유한에서 숭고함도 용기도 위대함도 나오고 영원에 대한 갈망도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먹고 사는 것, 일자리에 대한 불안이 우리를 휩쓸고 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삶에 대한 불안이다. 생존에 대한 불안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낙오와 탈락의 어렴풋한 예감과 싸워야 한다면, 여기서 멈추고 들여다보고 싶었다. 미래를 위한 ‘멈춤’그 생각 하나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불안은 자신이 사라진다는 느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느낌, 그 알 수 없는 미래를 자기 힘으로는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 등과 관련된다. 그런데 이 불안은 이제 개인적 질병이 아니다. 우리의 불안은 이 사회가 조장하고 확산하는 미래의 불확실함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회적 질병이다.

불안은 사회 경제적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르바이트생이나 비정규직들은 2년마다 일자리가 바뀌어야 한다면 대체 누가 제 정신으로 살 수 있겠어요? 라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기에 우리는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탈락되고 낙오된 사람들은 왜 더 열심히 살지 않았느냐, 더 훌륭해지지 않았냐는 비난을 받는다. 바로 ‘자기 책임론’이다.

취재 중 만난 스물다섯 번 취업에 실패한 한 구직자는 ‘학벌 때문에 미래가 발목잡힐까봐’ 지방에서 서울로 편입을 했고 대출한 학자금을 갚고 신용 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루에 두 개씩 ‘알바’를 하면서도 매달 토익 시험을 치렀고, 학원에 갈 형편이 안되니 혼자서 이어폰을 꽂고 토익 문제를 하루 종일 듣고 또 듣느라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고, 해외 연수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밥을 굶어가면서 일했다. 자격증 없이는 원서도 내보지 못할 테니 끝없이 꿈의 스펙을 위한 공부를 계속했지만 결국 그녀가 정규직에 탈락한 후 들은 말은 너는 왜 더 열심히 살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라고 억울하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낙오자라고 생각한다.

취재 중에 수많은 강력 사건들이 일어났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 피의자는 비정규직만 네 차례 전전했고 신용 불량자가 되었고 불안에 고립까지 겹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분노에 가득차 홀로 사는 고시원 작은 방에서 숯돌에 칼을 갈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자신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의 방에는 ‘돈 걱정 없는 노후’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돈 걱정 없는 노후를 보내지 못하는 노인들은 이제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봐 몸이 아프면 자살을 고민한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세계 1위 수준이다.

이 와중에 사회 안전망이 될 수도 있었던 복지도 우리의 불안을 달래주진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이미 불안할 대로 불안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당신은 낙오자이자 패배자라고 낙인찍는, 딱지 붙이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넘어졌을 때 바로 이 사회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 누구도 예라고 대답할 수 없음 이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불신하게 한다.

링컨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연설을 했지만 우리는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불안은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험에 가입하고 사교육을 하고 스펙을 쌓았지만 그 노력도 한계에 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절망이 퍼지고 있는데다가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폐기 처분 될 지도, 잉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우리 가슴 속에 뿌리 깊이 내려앉고 있는 동안 성과 없는 강박증과 개인주의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들이 겪는 불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닮았다. 탈락될까 두렵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을까 두렵다. 각자가 겪는 불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 이 문제 앞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 정혜윤
불안을 빼놓고는 우리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한 어떤 정치기획, 경제적 해결책도 불가능하다. 누구도 이제 불안을 혼자서는 극복할 수 없다. 수 십 년간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 했던 것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확고부동한 상식으로 믿어왔던 것들을 이제는 멈춰 서서 의심해야만 한다. 의심 없이, 성찰 없이 질주하는 기계가 우리의 삶과 인간 영혼을 궁지로 몰아넣어 완전히 파괴시키기 전에.

CBS 특집다큐멘터리 '불안' 다시듣기   www.cbs.co.kr/radio/pgm/aod_view.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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