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에 등장하는 ‘그 남자’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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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 PD의 음악다방]

1972년 스위스 태생의 여성 신인가수 ‘로리 리베르만’은 첫 앨범을 준비한다. 데뷔 싱글로 어떤 노래를 만들까 프로듀서와 상의를 하다가, 자신이 LA의 트루바두르 클럽에서 들었던 ‘돈 맥클린’의 라이브를 생각해 내며 한 마디 한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니까요.”

이 얘기를 담은 곡이 바로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이다. 하지만 로리의 노래는 히트하지 못 했고, 그저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기내 서비스에 레퍼토리가 된 것에 위안 삼아야 했다. 그런데 마침 LA, 뉴욕 간의 항공기에서 이 곡을 들은 가수가 있으니 로버타 플랙이다. 한 순간에 반해 지체 없이 레코딩에 들어갔고, 이듬해에 팝 차트 정상은 물론 그래미상까지 휩쓸어 버린다.

▲ 로베타 플랙
로버타 플랙, 혹은 최근에 힙합그룹 퓨지스(Fugees)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들으며, 돈 맥클린을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팝에 나오는 그 남자, 그 여자는 실존 인물인 경우가 많다. 그 인물에 대한 배경을 알거나, 최소한 “아! 그 사람 얘기였어?” 정도는 알고 들으면 즐거움이나 감동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비틀즈의 ‘헤이 쥬드’(Hey Jude)는 폴 맥카트니가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앙을 위로하기 위해서 만든 곡이니, 주인공은 줄리앙이다. 존과 별거 중이던 신시아 모자를 위로하기 위해 직접 차를 몰고 가는 길에 썼다고 전한다.

원래는 Hey Jules였지만 아무래도 발음상 바꿨다는 거다. 비틀즈의 또 다른 노래 ‘일리노어 릭비’(Eleanor Rigby)는 교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한 여성의 이미지를 담은 곡으로 제목이 ‘미스 데이지 호킨스’(Miss Daisy Hawkins)였으나 나중에 수정이 된 경우이다. Eleanor는 비틀즈의 영화 Help에서 함께 공연한 엘레너 브론(Eleanor Bron)에서 이름을 따왔다. 여기에 Rigby는 이들의 자주 다니던 상점의 이름이란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선배 뮤지션에 대한 존경의 뜻을 여럿 노래에 담았다. 1920년대 재즈 오케스트라의 시대를 연 듀크 엘링턴을 위해서 ‘서 듀크’(Sir Duke)란 곡을 바쳤으며, 흑인 인권운동의 기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를 불렀는데, 그가 애오라지 힘쓴 덕택인지 1985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된 바 있다.

▲ 비틀즈
토토(Toto)의 히트곡 ‘로잔나’(Rosanna)는 그룹의 기타리스트인 스티브 루카서(Steve Lukather)의 여자 친구이자 배우인 로잔나 아퀘드(Rosanna Arquette)가 주인공이다.

엘튼 존(Elton John)의 1981년 히트곡 ‘엠프티 가든’(Empty Garden-Hey Hey Johnny)는 그보다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존 레논(John Lennon)에게 바친 노래로, “Can’t You Come Out To Play In Your Empty Garden”이 애절함을 더한다.

포크밴드 킹스턴 트리오(Kingston Trio)의 ‘톰 둘리’(Tom Dooley)는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이지만, 살벌한 치정관계가 숨어있다. 남북전쟁 당시에 실존했던 Tom Dooley란 인물이 사랑하는 여인 애나(Anna)를 위해 자신의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천수를 누렸던 그 여인이 죽기 직전에 지난 일을 고백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Anna가 질투 때문에 Tom을 좋아하던 다른 여성을 살해했던 것. 캐나다 출신의 가수 폴 앵카는 16살에 데뷔곡 ‘다이아나’(Diana)로 팝계를 뒤흔들었는데, 흔히 알고 있듯이 Diana는 그의 집 가정부가 아니라, 고등학교 동창의 이름이라고 나중에 밝힌 바 있다.

눈이 아름다운 연예인 하면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를 꼽는다. 킴 칸즈(Kim Carnes)의 ‘베티 데이비스 아이즈’(Betty Davis Eyes)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쉬’의 ‘쥬디 블루 아이즈’(Judy Blue Eyes)를 접하면 여가수 ‘쥬디 콜린스’의 눈도 그에 못지않게 예뻤던 모양이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는 1973년에 ‘앤지’(Angie)란 노래로 팝 차트 정상에 올랐다. 바로 동료 뮤지션인 데이비드 보위의 부인 Angie Barnette에게 바쳐진 것인데, 별다른 사심 없이 이렇게 직설적인 애정표현을 할 수 있을까.

▲ 조정선 MBC PD·MBC <조PD의 새벽다방> DJ/연출
이밖에도 ‘닐 세다카’는 같은 뉴요커인 짝사랑 상대 캐롤 킹(Carol King)에게 ‘오 캐롤’(Oh Carol)로 애정공세를 펼쳤으나, ‘오 닐’(Oh Neil)이란 노래로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폴란드 출신의 여가수 바샤(Basia)는 ‘아스투르드’(Astrud)란 곡을 보사노바의 거장 아스투르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에게 바치기도 했다. 팝송 제목에 고유명사가 나오면 대부분 뭔가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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