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권 독립이 만든 ‘리베라시옹’의 “꺼져, 멍청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 프랑스= 표광민 통신원

9월 10일자 <리베라시옹> 1면에 전 세계 누리꾼들은 환호했다. <리베라시옹>이 유럽 최고의 갑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회장을 향해 “꺼져, 돈 많은 멍청아”라고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원치 않게 화제의 주인공이 된 아르노 회장은 유럽 최고의 부자로 루이뷔통,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등 여러 사치품 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 아르노 회장이 벨기에 국적을 신청할 것이라고 알려지자, 세금을 피해 벨기에로 달아난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리베라시옹>은 이러한 여론을 욕설에 가까운 문구로 1면에 담아낸 것이다.

“꺼져, 돈 많은 멍청아”라는 이 표현은 알려진 것처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빌려 온 것이다. 지난 2008년 파리의 농업박람회장에서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악수를 거부하는 한 시민에게 “꺼져, 멍청아”라고 외쳤다. 이 표현은 두고두고 사르코지를 풍자하는 데에 쓰였는데, 이번에 <리베라시옹>을 통해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문구로 거듭난 셈이다.

▲ <리베라시옹> 9월 10일 1면
아르노 회장측은 공개적으로 한 개인을 모욕했다며 <리베라시옹>을 고소했다. 그러자 <리베라시옹>은 9월 11일자 신문 1면에서 “당신이 돌아오면, 다 취소할거야”라는 문구로 아르노 회장의 고소에 응수했다.

그런데 이 표현 역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어록(?)에서 가져온 것이다. 지난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르코지는 이혼을 하고, 현재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와 결혼식을 치렀다. 그런데 결혼식을 약 1주일 앞두고 사르코지는 전 부인인 세실리아에게 “당신이 돌아온다면, 나 다 취소할거야”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알려졌다. <리베라시옹>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말을 이용해 두 번씩이나 아르노 회장을 향한 유쾌한 풍자를 선보였던 것이다.

재미난 점은 <리베라시옹>의 사주인 로스차일드 가(家)의 에두아르 드 로칠드 남작 역시 이중국적자란 사실이다.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해 1973년 창간된 <리베라시옹>은 2000년대 들어 재정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지난 2001년에는 판매부수가 20%나 급감하는 등 형편이 계속 어려워졌고, 결국 2006년 에두아르 드 로칠드 남작이 <리베라시옹>을 인수하게 되었다. 유태계 자본가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모택동주의에서 출발한 좌익 신문을 경영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에두아르 드 로칠드는 <리베라시옹>의 편집에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아르노 회장 보도로 인해 방송에 출연하면서, 사주가 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신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로칠드 남작은 지난 11일 케이블 방송 카날 플뤼(Canal Plus)에 출연해 문제의 지면에 대해 “별로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리베라시옹>의 도발적인 스타일이자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쿨하게 평가했다. 로칠드 남작은 아르노 회장을 비롯한 부유층에 대한 비판적 논조에 대해서도 “마땅히 써야 하는 기사를 작성했다”고 평가하며 <리베라시옹>을 옹호했다.

▲ 프랑스= 표광민 통신원/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석사
또한 그는 이 방송에서 자신의 이중국적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로칠드 남작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승마선수로 출전하고 싶었으나 프랑스 국가대표로 출전하기에는 기량이 떨어져 이스라엘 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국적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스포츠 때문에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한 만큼, 프랑스에 내야 할 세금은 기꺼이 전부 낼 것이라고 당당히 덧붙였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