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루하루 몸이 낡아간다는 것? 조금씩 현명해져 간다는 것? 아니면 점점 더 완고하고 지루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므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나이를 먹어간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 만큼은, 그가 생의 어떤 순간을 지나고 있느냐에 따라 저마다에게 다 다른 내용으로 다가온다.

스물일곱 즈음, 나이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느낀 나이 먹음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 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단감을 잔뜩 먹기 시작했다는 것. 어렵고 심각한 영화는 싫어지고 <40살까지 못 해 본 남자> 같이 따뜻하고 웃기는 영화만 보고 싶어진다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의 부고에 대해 썼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으나 몇 년간 연락하지 못했던 분.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나는 영화 잡지를 뒤적이다 알게 되었다. 오병철 감독 별세. 슬픔보다 먼저 찾아온 황망함에, 나는 멍하니 앉아 우습게도 ‘나이를 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언제 한번 연락 해야지’ 하며 차일피일 하는 사이, 그 분은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넉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 깨달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나이 먹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갑자기 콩나물 무침이 좋아졌다. 흔하디흔한 이 반찬에 거의 손을 대 본 적이 없건만, 문득 몹시 먹고 싶어져 급기야 집에서 만들어 먹기에 이르렀다. 두어 번 무쳐보니 제법 맛이 난다. 현미를 넣어 고소하게 밥을 짓고, 된장 국물을 삼삼하게 내어 애호박과 두부, 감자를 듬뿍 넣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곡식과 채소가 달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한 선배가 책을 보내왔다. 한때 직장 선배였던 그는, 내가 살다가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위로와 힘이 되어 준 인생 선배이기도 한데, 나는 두 가지 면에서 그를 존경해왔다. 비정하고 비루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을, 자기 손과 발만 믿고 묵묵히 걸어 갈 수 있는 근력을 키워왔다는 것.

이런 저런 책을 참 많이도 쓴 사람이지만, 이번에 새로 쓴 책은 유난히 좋았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이라는 일종의 서평 모음집인데, 서문부터 끝장나게 짜릿했다. 인생을 하드보일드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김봉석이 하드보일드에 대한 책을 썼으니, 그것은 서평이 아닌 삶에 대한 책이었고, 동시에 가장 김봉석 다운 책이었다.

▲ 김나형 MBC 라디오 PD
늘 ‘책을 써보고 싶다’고 희망했지만 ‘내가 쓴 책을 도대체 누가 읽는담?’ 하는 생각에 의미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번에 생각이 달라졌다. 나도 저런 책을 써보고 싶다. 누가 읽어주는가 아닌가는 상관없다. 마치 마라톤을 하듯, 집중하고 달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나에 대한 무언가를 ‘써내고’ 싶다. 꼭 글이 아니어도 좋다. 운동이든 요리든, 매일 30분이라도 나를 위해 집중하고 싶은 마음. 어영부영 ‘직장과 집’만 반복하기에는,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벌써 서른넷. 아직 서른넷. 인생에서 진정 이루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곱씹게 된 가을. 나는 그렇게 다시, ‘나이를 먹는구나’ 생각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