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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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사생활] 사진 찍는 이정환 KBS PD

‘ISO감도’, ‘셔터스피드’, ‘조리개’. 사진 찍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귀동냥으로 들어봤음직한 용어들이다. 그러나 막상 초보자들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수동으로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머릿속은 외려 하얘진다. 그러다 쉬운 지름길인 ‘오토(자동)’ 모드로 찍은 사진들을 보자니 성에 차지 않기 마련이다.

결국 큰맘 먹고 비싼 값을 치르며 산 카메라와 온갖 장비들은 ‘장롱 면허’마냥 ‘비싼 장식품’으로 전락하기 쉽다. 여기 ‘사진 찍기’의 고수로 거듭나고 싶다면 “수동 욕심은 버려라. 반(半) 자동부터!”라는 단순명쾌한 비법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 이정환 KBS PD를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 이정환 KBS PD

1997년에 KBS에 입사해 <후토스>, <낭만을 부탁해> 등을 연출한 이정환 PD가 처음으로 사진 찍기에 입문한 건 12년 전이다. “대학시절 PD가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다 치열한 언론고시를 뚫고 막상 언론사에 입사하고 나니 영상매체로 말하는 법을 몰랐죠. ‘사진’은 직업적 연관성도 높고, PD라면 영상으로 표현하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죠.”

아울러 다른 취미에 비해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도 전문가 수준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는 취미가 바로 ‘사진’이라는 게 이 PD의 생각이다. 이 PD는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거의 프로급 수준까지 찍을 수 있게 됐다”며 “무엇보다 현장에서 바로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고쳐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주위를 둘러보면 ‘사진 찍기’는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 스마트폰에는 고해상도의 카메라가 장착돼 있을 뿐 아니라 즉석에서 사진을 보정하고 편집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app)들까지 줄줄이 나와 있다. 카메라의 품종도 싼 가격의 ‘똑딱이’(디지털카메라)부터 색감과 고화질로 승부하는 고해상도(DSLR) 카메라까지 선택의 폭도 넓다.

사진에 입문한 뒤 12년 간 사진가로서의 이 PD의 사생활을 돌아보면 전방위적이다. 1990년대 후반 주로 카메라 장비 위주로 다루는 대형 동호회 사이트들 가운데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사진’을 공부하고 나누는 공간인 동호회 사이트 ‘SLR유저스’를 개설해 운영했다. 당시 회원 수는 3만 명을 웃돌았다. 아울러 현재는 KBS에서 계절마다 출사를 떠나는 사내 동호회 ‘포토당’에서 활동하는가 하면 초보자들을 위한 사진 강의도 한다.

사진의 매력에 대해 묻자 이 PD는 무엇보다 “사진은 남는다”고 정의 내렸다. 이 PD는 “그간 사진들을 보면 12년 전의 내 모습과 궤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창 사진에 재미를 붙였을 때 이 PD는 “가장 좋은 빛을 쫓아다녔다”고 회상했다. 기막힌 일출과 일몰 등 풍경사진 한 장을 건져내기 위해 산과 바다는 물론 경남 청송의 주산지 등 명소들을 훑고 다녔다.

▲ 이정환 PD가 찍은 사진들.ⓒ이정환

그러나 이 PD는 카메라를 든 지 7~8년을 넘어설 때쯤 점점 사진 찍기의 ‘즐거움’보다 ‘어려움’을 맛봤다고 한다. “출사가면 한번에 600~700장 찍던 때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는 고작 서너 장만 찍고 오는 거예요. 그 때 든 생각은 사람들이 똑같이 풍경에서 똑같이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는데 꼭 내가 찍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거였어요. 그 즈음부터 사진에 나를 어떻게 담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셔터를 누르는 것도 무거워졌죠.”(웃음)

이처럼 이 PD는 단순히 객관적 기록에 머무는 누드, 인물 중심의 모델 사진과 정물, 풍경 사진을 넘어서 주관적 기억을 담아내는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한다. “사진은 메이킹(making) 포토와 웨이팅 포토(waiting)로 나뉜다고 봐요. 예컨대 녹차밭을 찍는다고 치면 메이킹 포토는 빛이 ‘쨍’하고 들어오는 차밭의 순간을 잡는 거죠. 그에 반해 웨이팅 포토는 한 노인이 차밭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 메이킹 포토가 ‘눈’이라면 웨이팅 포토는 ‘가슴’이죠.”

이처럼 자기만의 사진 철학을 지닌 이 PD는 사진을 공부할수록 재미가 붙는다고 추천했다. 이 PD는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도록을 모으는가 하면 작가들의 전기를 읽으며 동시대 사진계의 흐름을 짚어본다고 한다. 이 PD는 “작가들의 독특한 사진을 보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PD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는 누굴까. 그는 소소한 일상에 유머를 가미한 사진으로 유명한 프랑스 출신 로베르 두와노(Robert Doisneau)를 꼽는다. 이 PD는 “두와노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할 때 천성이 게으르다 보니 잦은 지각으로 잘렸다. 그러나 일상사진가로서 두와노의 사진들은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진다. 피사체와 찍는 사람 간의 거리감이 없는데다 코믹함도 숨어있다”고 평했다.

▲ 로베르 드와노의 사진(상)과 김아타의 The Sex series, 1 Hour 사진(하) ⓒ출처 구글이미지

또 국내 작가로는 김아타를 꼽는다. 김아타는 국내 사진작가로서 최초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PD는 “(<On Air project> 시리즈 중) 희멀건 구 모양의 사진을 봤을 땐 ‘빅뱅’을 그린 줄 알았다. 그런데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장시간 노출한 사진이었다”며 “유독 기술과 장비에 천착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철학이 빈곤한 부분을 채워준 작가”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 PD는 패션사진계의 거장 헬뮤트 뉴튼(Hemult Newton), 로맨티시즘과 에로티시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체코 출신의 얀 사우덱(Jan Saudek) 등 색다른 사진작가들을 소개했다.

이처럼 이 PD는 인터뷰 내내 ‘사진 한 장의 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사진을 보면 작가들을 보게 된다. 사진 도록을 살 때마다 사진 속에 투영된 작가를 사는 느낌”이라며 “그러한 사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가진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사진작업을 함께 해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이 PD는 초보 사진 입문자들에게도 조언을 건넸다. “우리나라는 유독 장비 마니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진을 좋아하는 건지 사진기를 좋아하는 건지 모를 일이죠.(웃음) 처음 사진을 시작한다면 너무 수동에 목매지 말라는 거예요. 오히려 자신이 사진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웃음) 

▲ 이정환 PD가 찍은 사진들.ⓒ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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