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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이맘 때 북한산 진관사에 단풍이 붉게 물들 무렵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홍콩아가씨’를 부르는 원로 가수 금사향 씨를 처음 만났다.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 긴 속눈썹을 붙이고, 붉은 립스틱, 곱게 화장을 한 모습이 여든네 살이라는 나이가 실감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무릎 수술을 해 지팡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다리를 하고도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단풍을 주우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항상 뭔지 모를 갈증을 느끼고 있었을 때였다. 마침 그때 친한 작가가 좋은 다큐멘터리 소재가 있다면서 금사향 씨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1946년 전국 가수 선발 경연대회 우승하면서 가수로 데뷔,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가수 금사향, 트럼펫을 부는 박호일 씨의 끈질긴 4년의 구애 끝에 스물세 살 되던 크리스마스이브에 해군함정에서 호화로운 결혼을 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님 계신 전선’을 부르며 수많은 위문 공연을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는 전쟁의 침울함을 잊게 해주는 ‘홍콩아가씨’를 불러 대 히트를 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금사향 씨는 요양원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가족이 웃고 있는 사진(보험 광고 팸플릿)이 붙여져 있다. 혼자 있을 때는 하루 2끼 밖에 먹지 못하는데 여기 오니까 3끼를 다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그리고 요양원에는 아픈 할머니들이 많은데 그런 할머니들에게 자신의 노래들 들려준다고 한다. 말을 잊어버린 할머니도 자신이 노래를 부르면 따라 부른다고…. 금사향 씨는 말은 못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할머니를 보면서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며, 아마도 그 할머니는 자신의 노래가 그녀의 잊지 못할 추억이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나는 가수하기를 참 잘 했어. 그래서 행복해’ 그분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 말에 고독이 묻어난다.

KBS <가요무대>에도 가끔 출연을 하지만 아주 작은 무대라도 금사향 씨를 찾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가신다. 잘똑거리는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해서라도…. 요양원에서 버스정류장까지 100미터도 안 되는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 김승희 독립PD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면서 가끔은 나도 몰래 눈물이 난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무대에 혼자 서 있을 수 없을 때에도 후배의 손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fms다. 관객이 10명 남짓일 때도 변함이 없다. 목소리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온몸으로 부르는 금사향 씨의 노래에는 묘한 감동이 있다. 나이가 든다고 열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분은 온몸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150센티미터 남짓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열정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을 수 있는지 나는 지금 그분을 탐구 중이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나도 내 안에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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