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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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송윤경 작가의 chat&책]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 송윤경 방송작가
  • 승인 2012.11.05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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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 KBS <즐거운 책읽기> 작가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문학동네

애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과 함께 미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뤘다고 평가 받는 작가 허먼 멜빌. 많은 이들에게 ‘모비딕’으로 알려진 작가다. 나도 물론 어릴 적 ‘모비딕’을 읽었고 또 영화로도 봤던 기억이 있어 왠지 친근한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에 이런 엉뚱하고 기발하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과 끊임없이 ‘왜’를 떠올리게 되는 단편이 있을 줄이야. 제목도 희한한 ‘필경사 바틀비’가 그것이다.

필경사는 그의 직업이고 바틀비는 그의 이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 필경사. 말하자면 글자 한 자 한 자 베껴 쓴 만큼 돈을 받았던 직업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뉴욕의 월가를 중심으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당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필요했던 직업이었다고 한다. 당시 월가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증권거래소가 있기 전이었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상업과 부동산, 금융업이 성행했다. 그 경제의 중심에서 탄생한 인물이 바로 필경사였던 바틀비이다.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문학동네
얼마 전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경제체제가 고도화되면서 언제부턴가 ‘누구나 성공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성과사회,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감을 얻은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지배하는 성과주의는 결국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원어로는 “I would prefer not to...”라는 답변으로 고용주이자 소설의 화자인 변호사를 당혹하게 만드는 필경사 바틀비라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물론 그 당시에도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우리는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고 있다.

하지만 사실 누구나 바틀비처럼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용기도 없고 그 후에 닥치게 될 여러 상황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택하지 말아야 할 경우에도,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경사 바틀비’를 읽는 내내 바틀비의 행동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왜 자꾸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만 하는지 그의 거절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확실히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라니! 소극적인 그의 불분명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도 말했듯이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의 조용한 저항은 소극적인 듯이 보이지만 그 영향력은 절대 나약하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그의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라는 희한한 말투가 어느 새 내게도 전염이 됐다. 최근 들어 딱히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 나도 모르게 ‘~ 을 택하는 게 낫겠다’라는 말을 쓰는 습관이 든 것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 외에는 거의 하지 않는 바틀비. 하지만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한 말은 ‘나는 당신을 알아요.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늘 말했던 바틀비는 모든 것을 알고 자신의 의지대로 저항을 한 것이 아닐까.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을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바틀비가 던지는 대사에는 어쩌면 ‘성찰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삶을 향한 거대한 물음이 담겨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 송윤경 KBS <즐거운 책읽기> 작가
끝으로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 하나 더!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이 꽁꽁 숨어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궁금해진다. 허먼 멜빌이라면 ‘모비딕’만 알고 지낸 나로서는 ‘필경사 바틀비’를 <즐거운 책읽기>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모르고 살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틀비처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이 내게 있을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바틀비처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뭐냐고? ‘필경사 바틀비’처럼 좋은 책을 모르고 살아가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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