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나 ②] PD란 이름 잃어버린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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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외치다 징계를 받은 언론인들만 500여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언론인들이 분노와 좌절 속에 지난 5년을 견뎠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시간도 지나가고 있다. 18대 대통령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언론인들이 지난 5년 동안의 대통령과의 질기고 독한 인연을 되돌아본다. 두번째 순서로 이명박 정부 초기 KBS의 공정방송을 위해 구성된 KBS 사원행동 공동대표를 맡은 바 있는 양승동 KBS PD다.  <편집자주>

PD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언젠가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20여 년이 지나면서 연륜도 좀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5년 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MB 정권’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언론 역사에 제2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지난 5년 동안 해직 언론인만 19명. 정직, 감봉 등까지 포함한 징계자는 총 450명이다. 징계자 말고 보복인사를 통해 쫓겨나 엉뚱한 곳에 가 있는 PD나 기자, 아나운서 등도 부지기수다. 나도 피해갈수 없었다. 지난 2008년 MB정권의 무도한 KBS 장악에 저항하다가 파면을 받기도 했다.

당시 KBS 노동조합의 행보가 모호하다고 판단한 KBS 사원들 수백 명과 함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을 만들어 강하게 저항했다는 이유였다. 2주 만에 징계수위가 정직 4개월로 낮아졌지만 그 후 2년간 심의실로 쫓겨나 있어야 했다.

▲ 2009년 1월 29일 KBS로부터 '파면' 징계를 받은 양승동 PD(가운데)와 김현석 기자(왼쪽) '해임' 징계를 받은 성재호 기자(오른쪽)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PD저널

작년부터 프로그램 제작부서로 복귀한 상태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열정에 넘치는 PD의 모습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갈등이 그대로 옮겨온 듯 심각한 내부 분열과 갈등. 그러다 보니 신명 나게 일할 분위기도 아니다. 이런 불의한 시대에는 정의롭지 못하거나 은폐 위장된 사건과 이슈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프로그램에 큰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폐지됐거나 일부 남아 있어도 나 같은 징계 경력자는 ‘위험 인물’로 분류돼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PD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자율성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할 수 없다면 무슨 창의력과 열정이 솟아나겠는가.

물론 시대를 직접 다루지 않고 한 발 떨어져 있으면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지금 시기에 그런 프로그램 제작에는 몰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해직 언론인들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나를 가로막은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이 그들의 고통을 한순간도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방송인들이 자신의 장르와 전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가. 나도 개인적으로 PD로서 황금기가 돼야 했을 시기를 잃은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제작에 몰입할 수 있었다면 참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것 같다. 이제 쉰이 넘어 버렸으니….

물론 모든 사안에는 양면이 있듯 ‘MB정권’ 5년은 한편으론 반면교사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언론자유와 독립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래서 사원행동 이후에는 언론노조 KBS본부를 만들어 방송독립과 제작자율성 쟁취 투쟁을 계속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 <뉴스타파>를 통해 갈증을 해소하면서 언론과 방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됐다.

▲ 양승동 KBS PD.
무엇보다도 지난 5년 언론자유를 지키는 투쟁에서 안팎의 여러 동지를 만나고 재발견 할 수 있었다는 건 큰 소득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도 계속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YTN, MBC, 부산일보 등의 해직자들과 징계자들은 이제 더는 단순한 경쟁사의 직원이 아니라 연대해서 언론자유를 지켜내면서 언론의 정도를 함께 걸어갈 동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MB정권의 무도했던 5년의 막이 내리고 좀 더 정의롭고 이성적인 시대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된다는 것이 민심인 것 같다. 그래서 즉시 해직 언론인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나도 PD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프로그램 제작에 몰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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