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5년 ‘침묵의 기술’만 키운 지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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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새 정부 출범까지 열흘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여야가 정부조직 개편을 놓고 충돌만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대비되는 두 집단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바로 지상파 방송사들과 종합편성채널들, 정확히 말하면 종편을 소유한 신문들이다.

재밌는 것은 박근혜 새 정부에서 지상파와 종편을 같은 층위에 놓고 운영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지상파와 종편·보도채널에 대한 ‘규제’는 현행과 마찬가지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맡기되, 그 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위성방송과 IPTV 등에 관한 업무는 신설 예정인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창부)로 이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 관련 진흥 정책 역시 모두 미창부 몫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인수위가 정부조직 개편 방향을 처음으로 제시하고 같은 달 30일 여당을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 보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그 어떤 입장도 개진하지 않고 있다.

▲ 지상파방송을 대표하는 KBS, MBC, SBS 방송 3사.

‘생존’ 앞에서 반대 집단의 목소리마저 이용하는 종편 

반면 종편을 소유한 신문사들은 격앙된 분위기다. MBN의 대주주인 <매일경제>는 지난 13일자 신문 39면 사설에서 “요즘에는 한 가지 방송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지상파와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구분 없이 방송될 정도로 방송과 통신은 빠르게 융합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일반 PP는 미래부가 담당하고, 같은 케이블 채널임에도 보도 PP는 방통위가 규제한다면 일관성 있는 정책이 나오기 힘들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JTBC의 대주주인 <중앙일보>도 지난 14일자 신문 34면 사설에서 “방송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공재 성격이 강해 독임제 부처인 미창부보다는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맡는 게 맞다…(중략) 보도·시사교양·예능 같은 고전적인 구분이 무너지고 장르 융합형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게 국내외 방송의 최근 추세인데도 개편안은 같은 방송인데 보도 기능 여부에 따라 정책기관을 쪼개는 잘못을 범했다”고 비판했다.

언론·시민단체와 민주통합당 등 야당이 지상파 방송과 종편·보도채널뿐 아니라 방송과 관련한 모두 ‘진흥’과 ‘규제’ 권한을 현행과 마찬가지로 방통위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기억을 떠올려보자. 언론·시민단체들과 야당은 종편의 탄생 자체를 반대해왔다. 그리고 현재도 여권에서 종편에 ‘선물한’ 갖가지 특혜 정책들에 대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합심이라도 한 듯 하나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변하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종편이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앞두고 ‘독을 독으로 물리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쓰는 것일 뿐이다. 종편이 자신들의 탄생을 반대한 집단들의 입을 빌어 견제하고 있는 집단은 바로 CJ E&M이다.

앞서 언급한 지난 14일자 <중앙일보> 사설을 보자. “새 정부의 구상은 미디어 콘텐츠의 생태계를 무너뜨릴 위험성도 크다. PP·SO는 규제 대상에서 배제하고 지상파·종편·보도채널만 규제한다면 대기업 PP·SO에 특혜가 돌아가 미디어산업은 강자 독식의 정글이 될 것이다. 이미 케이블TV 공급 시장의 최대 강자인 CJ 계열사가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 지원만 받는다면 다수의 콘텐츠 생산자가 플랫폼 업자에 종속될 수 있다.”

채널A 대주주인 <동아일보>도 같은 날 신문 31면 사설에서 “국내 최대의 케이블 복수채널사업자(MPP)인 CJ E&M은 OCN, tvN 등 18개 TV 채널을 통해 전체 PP 매출의 3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CJ가 시장의 3분의 1로 되어 있는 유료방송시장 매출액의 상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여야 합의제 기구인 현재의 방통위가 시청권 보호 차원에서 이를 막았지만, 미창부로 넘어가면 산업 논리에 따라 상한 규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중소 방송사업자들은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들 종편의 주장은 자신들이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규제 속에 묶여있는 동안 CJ E&M만이 독임제 부처인 미창부의 방송 ‘진흥’ 권한에 힘입어 날개를 다는 모습을 볼 순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장관의 생각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는 독임제 부처 관할 아래 들어가기에도 부담이 있으니, 이들 종편은 결국 CJ E&M으로 대표되는 나머지 유료방송 역시 종편과 마찬가지로 합의제 위원회인 방통위의 우산 아래 있길 원하는 것이다.

당장 <매일경제>는 지난 13일자 사설에서 “공공재인 방송은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재단할 수 없다”며 “일부 분야를 이관한다 하더라도 PP와 SO 등은 방통위에 남겨두고 미창부로 넘기는 분야는 순수하게 통신기술 발전과 관련된 영역으로 최소화해야 방송정책에 관한 혼선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현재 종편이 바라는 정부조직 개편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인수위 정부조직 개편안, 지상파엔 ‘쓰나미’ 재앙, 그럼에도 침묵하는 이유는?

반면 지상파는 ‘공식적으로’ 침묵 중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전혀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방송사별로 이해가 다르기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게 지상파 측의 설명이다. 지상파의 한 관계자는 “정부조직 개편 논의와 관련해 입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편처럼) 지상파의 이해가 얽힌 사안을 (보도에서) 요구하기도 어려운 일 아니냐”며 ‘원칙’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 인수위와 여당에서 만든 정부조직 개편안이 지상파에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을 만들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인수위와 여당은 지상파에 대한 ‘허가 추천’을 방통위에 맡긴 만큼 방송 독립성과 공공성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최종 ‘허가’ 권한은 독임제 부처인 미창부 장관 몫이 된다.

인수위와 여당의 안대로라면 재송신 등의 방송정책과 방송광고 정책 역시 모두 미창부에서 관할하게 된다. 지난 1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 설치법 개정 관련 공청회에서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이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예를 들어 KBS에서 정부가 불편해 하는 사안에 대해 보도를 했다 치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미창부 장관이 앞으로 KBS 2TV를 의무재송신 대상에 포함 시키겠다고 결정하면 KBS는 재송신으로 얻는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3년만 가도 KBS는 최소 10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보도를 할 수 있겠나.”

언론·시민단체와 야당, 그리고 방송사 노조들마저 나서 인수위와 여당의 안대로 갈 경우 미창부가 제2의 공보처로 기능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는 배경이다. 다시 지적하지만, 그런데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공식적으로’ 침묵 중이다.

물론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사안에 대주주인 신문의 지면을 활용해 갖가지 요구들을 하는 종편의 태도가 옳은 것은 아니다. 종편 출범 이전부터 언론계 안팎에서 종편의 폐해로 우려한 대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지상파의 침묵이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자사의 이해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건 지양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도 일관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례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KBS는 수신료 인상과 관련한 논의가 필요할 때면 망설임없이 자사의 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고, MBC 역시 지난해 MBC노조의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노조원 해고·징계 등에 대해 항의하는 구성원들의 목소리나 야당의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데 아낌없이 전파를 사용했다.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침묵’을 지켜왔던 문제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지난 5년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키운 ‘침묵의 기술’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여부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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