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시청자들에게 ‘희로애락’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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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 세계 영화를 안방으로 배달하는 심예원 EBS PD

극장가에 넘쳐나는 할리우드 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에 지쳐 ‘다른’ 영화를 갈구하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영화를 소개하는 EBS의 영화 프로그램들은 그야말로 ‘신세계’다.

EBS는 현재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금요극장>, <세계의 명화>, <일요시네마>, <한국영화특선>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안방극장에 한국영화계의 황금기라 불리는 1960년대 영화는 물론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남미·북유럽 등 세계 곳곳의 영화들을 배달 중이다.

EBS가 소개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칠레 크로아티아 이란 브라질 아이슬란드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등 기존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물론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에서도 보기 힘든 세계 각국의 영화들이 많다.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영화의 폭을 넓히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세계 문화 체험의 기회 또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EBS 영화 프로그램의 구매와 편성을 책임지고 있는 심예원 PD를 지난 11일 서울 도곡동 EBS본사에서 만났다.

▲ 심예원 EBS 글로벌콘텐츠부 PD ⓒPD저널
케이블에선 많은 영화 채널이 등장하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에선 영화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KBS 1TV <명화극장>, <독립영화관>과 함께 EBS의 영화 프로그램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EBS는 지난 2011년부터 <금요극장>을 신설해 시청자들에게 보다 더 다양한 영화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을 심 PD는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희로애락을 주는 일종의 ‘퍼블릭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시청자에게 좋은 영화를 선별해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감동 등 여러 감정을 안겨드리는 거죠. 그래서 너무 매니악하거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되도록 배제하고 있어요. 또 좋은 화질과 음질을 위해 95% 이상이 HD 방송으로 나가요.”

현재 EBS에선 4개의 영화 프로그램이 나가고 있지만 각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는 모두 다르다. <세계의 명화>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영화들을 소개한다면 <일요시네마>는 <세계의 명화>보다 좀 더 고전적인 영화로 시청자들에게 ‘추억’을 제공한다. <한국영화특선>은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있으며, <금요극장>에서는 세계 영화의 트렌드를 섭렵한다.

심 PD는 그 가운데 발리우드로 불리는 인도, 제2의 부흥기를 꿈꾸는 남미, 가깝지만 낯선 아시아 등의 영화를 소개하는 <금요극장>을 만든 주인공이다. 심 PD는 ‘제3세계 영화’라는 용어 대신 문화적 편중성을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양성 영화’는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되는 독립·예술·인디·비주류 영화 등 상업영화와 차별되는 영화다.

“<세계의 명화>나 <일요시네마>는 대중성 있는 영화나 미국 영화가 많아서 <금요극장>은 두 가지 원칙을 정했어요. 우선 미국·영국·프랑스 영화는 제외한다, 그리고 2000년 이후 만들어진 작품을 소개한다는 것인데요. 문화적 편식에서 벗어나 ‘다양성 영화’를 통해 다채로운 문화를 보여주자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금요극장>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시청자들에게 낯선 작품들이 많다. 심지어 50% 가량은 국내에서 개봉조차 하지 않은 영화다. 심 PD는 “관련 책이나 매뉴얼이 없어 해외 마켓에 나가 영화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고 거래를 하면서 어떤 영화들이 있는지 일일이 찾아 나섰다”며 “예술 영화나 다국적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만나며 영화에 대해 공부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심 PD는 자신이 느낀 어려움을 시청자들이 느끼게 하지 않고, 처음 접하는 낯선 영화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화 시작 전 3분 정도 되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영화감상 ‘가이드 라인’이다. 이를 위해 심 PD는 미리 석 달치 방송분의 라인업을 정리해 줄거리와 감상 포인트, 감독 등에 대한 정보를 영화평론가에게 제공한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영화 정보를 심 PD가 영상으로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아트 영화나 다양성 영화의 단점이 대부분 초반에 재미가 없어요. 앞 부분만 보면 손님이 왔다가도 갈 판이죠. 그래서 영화가 평범해보여도 크레센도처럼 점점 커지는 영화라는 걸 알려주고 ‘이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는 예습 격의 영상이 필요하다고 생각어요.”

▲ EBS 4개 영화 프로그램인 <금요극장>, <한국영화특선>, <일요시네마>, <세계의 명화>의 타이틀 화면 ⓒEBS
이처럼 모든 프로그램의 구매부터 편성까지 심 PD가 담당하고 있지만 혼자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심 PD가 배급사로부터 영화 목록을 받아 모두 챙겨본 후 1차적으로 작품을 선택한다. 이렇게 선택한 영화들을 심영섭, 김영진 영화평론가 등 5인의 영화 전문가들로 구성된 영화선정위원회에서 검토해 방송에 내보낼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정하게 된다. <금요극장>의 경우 EBS 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영화평론가인 정민아 평론가와 심 PD가 매달 한 번씩 회의를 진행해 영화를 선정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를 선정해도 모두 구매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판권이 유실된 경우도 있고 영화사에서 원본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국 영화사에서도 중요한 로드 무비 중 ‘삼포로 가는 길’이란 작품이 있어요. 영화사는 없어졌지만 사장이 판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만났죠. 계약서도 만들고 도장만 찍으면 되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금계산서 발행이 안 된다고 해서 구입에 실패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어요.”

다른 이유로 좋은 작품임에도 편성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2008년)는 영화선정위원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도 일부 장면의 노출 수위 때문에 방송을 하지 못했다. 노출 장면 등 영화의 일부분을 삭제할 경우 이는 작품에 대한 훼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이나 과격한 폭력 장면이 있으면 되도록 표 안 나게, 감독의 영상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삭제해요. 얼마 전 <허트 로커>의 경우 죽은 아이의 시체가 나왔지만 필요한 부분이라 모자이크 처리로 넘어갔어요. 이런 부분들이 방송에 내보낼 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죠.”

이런 고민은 결국 영화에 대한 예술성과 시청자가 갖고 있는 EBS 영화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한 심 PD만의 약속이다. 심 PD는 앞으로도 시청자들이 영화를 통해 때로는 옛 추억을 되새기고, 때로는 새로운 세상과 감정을 깨달으며 즐거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편하고 즐겁고 동시에 감동까지 드리려면 좋은 영화를 틀어준다는 신뢰를 드려야겠죠. 앞으로도 좋은 라인업으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영화도 재밌게 봤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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