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합의…방송 공공성 파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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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합의…방송 공공성 파탄 ‘우려’
野, ‘헛발질’로 협상력 약화…“해묵은 방송장악 구호, 철학은 어디에?”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3.03.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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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21일 만에 국회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방향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SO(종합유선방송) 업무만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남겨둬야 한다던 민주통합당은 SO와 IPTV,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관련 업무 모두를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로 이관하는 데 동의했다.

다만 뉴미디어 인·허가 및 관련 법령의 제·개정시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의 논의를 위해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는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를 여야 동수로 구성하기로 했다.

일련의 합의에 대해 민주당은 “물론 아쉽지만, SO 이관에 따른 방송 공정성 담보를 위해 다양한 차원에서 공정성 확보 장치를 두는 것으로 성과를 거뒀다”(3월 17일, 윤관석 대변인)고 자평하고 있지만, 방송계 안팎의 대체적 평가는 그와 다르다.

■ 계속된 헛발질, 스스로 입지 좁혀= 사실 민주당이 지난 17일 여당과 합의한 안은 그간의 협상 과정을 돌아볼 때 민주당 스스로 내세웠던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내용이다.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이전인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 발표 당시부터 SO 관련 업무의 미래부 이관은 절대 안 될 일이라며 반대해 왔다.

그 결과 여야는 지난 5일 IPTV 관련 업무를 미래부로 넘기되 SO 업무는 방통위에 남겨두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반대로 여당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그렇기에 협상 주도권은 민주당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전혀 달랐다. 다음날인 6일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가 김재철 MBC 사장 사퇴 등 3대 조건을 내세우며 SO 업무의 미래부 이관 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협상력이 급속히 약화된 것이다.

박 원내대표 제안 이후 여당은 야당에서 SO 업무의 미래부 이관이 방송 공공성 등과 관련 없는 사안임을 인정했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그리고 지상파 방송 3사를 포함한 다수의 언론들은 ‘가이드라인’ 통치를 하는 청와대나 이에 휘둘리는 여당에 대한 책임을 묻는 대신 ‘식물정부’에 대한 우려만 쏟아내는데 바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은 SO 관련 업무의 미래부 이관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이런 상황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은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고, 청와대는 물러설 수 없다며 버티고,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하며 “관련 법령 제·개정 시 방통위 사전 동의권을 신설한 부분 등은 성과”라고 말했다.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도 18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소(SO) 잃기 전 외양간을 먼저 튼튼하게 한 것”이라며 현재의 합의안이 도출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 같은 항변에 대한 방송계 안팎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답답한 쪽은 청와대와 여당임에도 민주당은 자신들이 여당인 양 협상 원칙을 저버리며 양보를 했다”고 비판했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도 “져서 깨질 바엔 (적당히) 합의를 하자는 게 민주당의 방식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 정부조직법 개정안 관련 17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원내지도부가 4인 회동을 가지고 종합유선방송(SO)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고 국회에 방송공정성 특위 등을 설치하는 개정안에 합의하고 손을 맞잡고 있다. ⓒ노컷뉴스
■말로만 중요한 방송 공공성? = 민주당이 방송 공공성 등을 앞세우며 SO 정책 이관 문제를 핵심에 놓고 여당과 줄다리기를 했지만, 정작 얻고자 했던 건 4대강과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 국정조사 등이 아니었냐는 의문도 나온다. 정부조직 개편이 향후 20~30년 간 방송·통신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했다면 플랫폼 관련 정책을 미래부로 이관할 순 없었다는 문제제기다.

정부조직 개편 협상 과정 내내 언론·시민단체와 학계에선 SO, IPTV 등의 플랫폼이 지상파 방송은 물론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공익채널 등 다양한 채널을 편성하고 있기 때문에, 독임제 부처에서 이를 관할하게 할 경우 직·간접적인 방송 통제가 가능하다고 지적해왔다.

민주당은 SO, IPTV 등 뉴미디어 인·허가 및 관련 법률 제·개정 시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단서 조건을 붙였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야 3대 2 구조로 운영되는 방통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단서 조건이 실효성 있는 조치인지 의문이다.

당장 언론연대는 18일 논평을 내 “대부분의 정책은 독임제 부처(미래부)와 방통위 여당 상임위원들 간의 은밀한 소통을 통해 결정하고 전체회의에 올리면 그만”이라며 “결국 미래부가 방송 정책을 결정하고 방통위는 거수기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이번 합의로 플랫폼과 매체의 충돌을 조정하기 어려워진 상황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IPTV 등의 뉴미디어를 ‘진흥’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만큼, 미래부는 이들에 대한 규제 완화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 뉴미디어와 방통위 관할의 지상파 방송, 종편·보도채널 등이 하나의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결국 미래부가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추진할 경우 방통위 역시 그 바람에 휩쓸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상파 방송이 방통위 규제에 묶여 하나의 PP로 전락할 가능성도 나온다. 언론노조는 18일 발표한 성명에서 “미래부가 유료방송 플랫폼 업무를 맡게 되면, 산업 진흥이란 미명 아래 CJ가 요구해온 SO와 PP(채널) 점유율 규제가 풀리고, KT의 숙원사업인 인터넷망을 통한 위성방송(DCS)이 허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을 소유한 대기업 중심으로 방송시장이 재편되면서 방송이 재벌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언론노조는 “이명박 정부가 정치권력과 낙하산 사장으로 방송을 장악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방송을 시장 논리에 맡겨 자연스레 장악을 시도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방송의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송 플랫폼만은 지키겠다’는 협상 초기 민주당의 대국민 약속은 결국 정치적 협상을 위한 수사에 그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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