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방송 정책, 곳곳이 ‘지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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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투성이 합의문에 벌써부터 잡음…“공정성 특위, 공수표로 끝나선 안 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야 협상 46일 만인 지난 17일 전격 타결됐다. 국회는 곧바로 20일 본회의에서의 법안 처리를 위한 후속 작업에 돌입했지만 합의 사항을 놓고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가 많아 이행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이 예상된다. 특히 방송 정책과 관련해 ‘대기업 독과점’과 ‘방송의 공공성 훼손’ 등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46일 협상의 결과물이라고는 하지만, 합의문을 뜯어보면 곳곳이 구멍투성이다. 우선 여야가  오랜 시간 줄다리기 끝에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 분리한 방송 관련 업무 분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미래부가 SO(종합유선방송)와 IPTV,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관련 사업의 허가·재허가 및 관련 법령 제·개정시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 사항과 관련해선 벌써부터 여야 간 해석이 엇갈린다. 민주통합당은 사전 동의의 대상이 ‘모든 허가와 재허가에 관한 법령’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선 추후 논의를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주최로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부조직법 문제점 긴급 점검 토론회에서 유승희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지상파 방송에 대한 허가 권한 등을 둘러싼 이견도 있다. 19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는 여야 원내대표 합의 사항 가운데 지상파 방송 허가 권한 등 일부 조항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이견을 보였다.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 ‘뉴미디어’의 범위도 모호하다. 현재의 방통위 업무 분장을  따르면 지상파 DMB와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하는 중계유선방송(RO)도 뉴미디어로 분류돼 미래부로 이관하게 된다.

19일 전국언론노조 주최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부조직법 문제점 점검’ 토론회에서 채수현 언론노조 정책위원은 “정부가 추진력을 갖고 밀어붙이면 여야는 합의사항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부딪치게 될 것”이라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느라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용도에 따라 둘로 쪼갠 주파수 정책 등을 비롯해 이분법적인 방송정책 분리는 앞으로 추진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홍보학부)는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미래부와 방통위가 공동으로 방송법을 소관 법령으로 두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불리한 법령을 고치려는 쪽과 이를 막으려는 부처 간에 ‘조직 이기주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문제가 생겨도 어느 부처도 책임질 수 없는 애매한 구조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상파와 비대칭 규제를 받게 되는 유료방송이다. 유료방송 정책이 미래부로 넘어가면서 KT와 CJ 등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이번 조직 개편을 보면 유료방송 시장을 확실히 키우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며 “방송은 민주적인 소통 등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경제적인 부분이 필요한, 비경제성의 경제성을 지닌 영역인데 이를 간과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지상파는 사실상 규제 기능만 있는 방통위에 남게 되면서 위상 하락과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다.

민주통합당의 요구로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담보하는 장치로 마련하기로 한 ‘방송공정성 특별위원회’(이하 공정성 특위)도 구성 전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이 이번 정부조직법 협상에서 가장 큰 성과로 제시하고 있는 공정성 특위는 3월 임시국회를 통해 여야 동수로 구성될 예정이다. 위원장은 민주당에서 맡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방송의 보도· 제작 자율성 보장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그동안 여야의 합의로 신설된 많은 특별위원회가 유야무야됐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2009년 미디어법 논의에 앞서 여론수렴을 위해 꾸려졌다가 별다른 성과없이 활동을 끝낸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전철을 밟지 않겠냐는 것이다.

김서중 교수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를 비롯해 정치논리로 운영된 특별위원회의 경험을 돌아보면 공정성특위가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전망한 뒤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남은 과제는 공정성특위 문제와 더불어 유료방송 시장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거대 방송기업과 대기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이날 토론회에 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조직 개편에 우려를 보내면서 공정성 특위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지난해 6월 여야는 개원에 앞서 ‘언론청문회 개최’와 ‘MBC사태 해결’ 등을 약속해 놓고도 아무것도 한 게 없다”며 “공정성 특위가 공수표가 되지 않기 위해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도 “대통령이 아무리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고 말해도 정부조직법에 따른 방송 정책이 지속되면 앞으로 자본과 권력에 의한 방송 장악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공정성 특위는 방통위원 선임에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을 포함해 ‘MB(이명박) 정부’에서 훼손된 방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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