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제작기 추석특집-[누리야 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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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소재 탈피 가족과 함께 보는 휴머니즘 추구
MBC 추석 특집극 「누리야 누리야 뭐하니」를 연출하고
김정호

|contsmark0|진작부터 양귀자님의 동화 [누리야 누리야 뭐하니]를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 단막극이어도 상관없고 연속물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3년전 쯤인가 그 책이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점에서 그 책을 찾아냈다. 동화이건만 부끄럽게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찔끔거리며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회사에 어린이 연속극으로 제작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주었지만 여러가지 사정때문에 계속 진행되지는 못했다.시간이 꽤 지났고 나는 청소년드라마 [나]를 1년 가까이 계속하고 있었다. 쉴 새없는 작업으로 인한 피로도 피로거니와 아이디어의 소진 때문에 무척이나 버거워하고 있던 내게 회사는 추석특집극 연출을 맡겼다. 내 손으로 처음 진수시켰던 프로그램을 떠나는 아쉬움도 컸지만 새로운 기회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작업을 시작하면서 몇가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6.25에 하는 전쟁전후 이야기, 8.15에 하는 해방전후 이야기 등등 판에 박힌 이야기는 벌써 식상할 때가 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도 마찬가지이리라. 추석에 하는 고향, 조상이야기는 너무 직접적이어서, 그리고 너무 많이 봐와서 이제는 지겨워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소재나 주제를 좀 넓게 잡을 필요가 있었다. 휴머니즘에 입각한 드라마면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을 것이고, 거기에다 가족이 감동적으로 볼 수 있다면 최선일 것이라는 자유로운 결론을 내려버린다.너무도 자연스럽게 묵혀두었던 양귀자님의 동화가 떠올랐다. 어디있는지 모르는 엄마를 찾아서 거친 세상을 헤메는 아홉살 소녀의 이야기가 그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어렵사리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고 작가와 함께 대본 작업에 들어간다. 시작할 때는 이미 상당한 스터디를 했던 이야기인지라 그럴 듯하게 뽑아낼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풀어나가 보니 상당한 장애에 부딛힌다. 절차탁마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본만 한 열번쯤 고쳤을까? 도대체 만족할 줄을 모르는 내가 아마도 작가에게는 악마로 비쳤으리라. 그럼에도 싫은 소리 한번 안하고 묵묵히 따라주었던 작가가 고맙다.그리고 캐스팅. 여러차례 오디션 끝에 주인공인 누리역은 열살먹은 이정윤으로 결정했다. 그를 도와주는 영발과 강자역에는 최재성과 김정난으로 이름을 바꾼 김현아를 캐스팅했다. 참 성실한 연기자들이었다. 특집극이나 단막극을 아르바이트 쯤으로 생각하는 연기자들이 많은 현실에서 그들의 태도는 내게 더할 나위 없는 큰 힘이 되었고 연기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촬영은 시작되었고 항상 그렇듯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촬영을 마치고 테잎들을 시사하노라면 불만과 자책감이 앞선다. 왜 눈에 빤히 보이는 허점들을 현장에서 미리 교정하지 못했는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방송 날짜는 다가오고 이미 제작비도 다 소진한 터라 더이상 보충 촬영도 어렵다. 찍은 것 가지고 어떻게 해결해 보자고 몇날 몇일을 한 평 남짓한 좁은 편집실에서 편집기사와 밤을 샌다. 그럴수록 아쉬움은 더 커진다. 저기에 한 씬만 더 보충이 되면 좋을 텐데, 저 씬은 다시 찍으면 좋겠는데 등등하는 아쉬움.그대로 방송이 나가면 한이 될 것 같아서 끝내 보충촬영을 한 번 나가기로 한다. 제작비가 다 떨어졌으니 4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스탭을 다 끌고 갈 수도 없다. 고민 끝에 결심한다. 스탭들 필요없어. 카메라하고 주인공 한 명만 있으면 돼. 조명없이 촬영하는 거친 느낌이 작품 분위기에 더 맞을 수도 있어. 애써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렇게 옹색하게 한 씬을 추가 촬영하고는 촬영을 전부 마무리 지었다.방송날이 되면 괜히 더 긴장된다. 주조에서 테잎이 분실되는 악몽을 가끔 꾸기도 한다. 수십번 확인했지만 혹시라도 기술적인 실수가 발견되지 않을까 괜히 노심초사한다. 그렇게 방송이 나가면 또 한번 허망하다. 그렇게 끝나버리고 말 것을….추석 연휴가 지나고 신문의 방송면을 유심히 살폈다. 비판이든 칭찬이든 관심있게 지켜봐준 기사가 있을 지도 몰라서. 모든 신문은 방송사의 추석특집프로그램이 재탕삼탕 영화 일색이라고 입을 맞춘 듯 똑같은 기사를 냈다. 명절 전에는 똑같은 영화들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프로그램인 양 신문의 방송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다가 연휴만 끝나면 그렇게 판에 박힌 기사로 처참하게 매도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단 한편의 특집 프로그램이라도 꼼꼼히 지켜 봐주면서 좋은 건 뭐고 나쁜 건 뭔지 애정있게 지적해 주는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있을런지…. 다음 번에도 한번 묵묵히 기다려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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