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없는 방송사에 미래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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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없는 방송사에 미래가 있겠나”
[인터뷰] 이훈기 언론노조 OBS지부 신임 위원장
  • 방연주 기자
  • 승인 2013.05.20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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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는 전신인 iTV 전파 중단을 딛고서 지난 2007년 어렵사리 개국했다. 하지만 1400억원의 초기 자본금을 해마다 까먹으면서 OBS는 또다시 생존 그 자체가 위태로운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사관계도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올해 초 언론노조 OBS지부가 첫 파업을 벌인 뒤로 노사 간 앙금은 여전하다.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OBS의 초심을 되찾고자 나선 이가 있다. 지난 13일 신임 OBS 지부장에 취임한 이훈기 지부장이다.

이 지부장은 1998년 iTV에 입사한 이후로 OBS 보도국 사회팀장, 국제팀장 등을 지냈다. 이번에 여섯 번째 노조 지부장을 맡게 된 이 지부장은 지난 2001년과 2004~2007년(임기 1년) OBS희망조합 위원장을 맡으면서 OBS를 출범시키는 데 백방으로 뛰어다닌 인물로 평가된다. 그렇기에 이 지부장에게 OBS는 남다르다. 20일 오전 부천시 오정동 OBS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OBS의 비전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 말해 그 책임감만큼 걱정도 많아 보였다.

- 여섯 번째 지부장을 맡게 됐다고 들었다.

“사실 OBS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2008년 2월 위원장을 끝냈다. 개국 초기에 보도국 현업으로 돌아가 사회팀장, 국제팀장을 지내며 다시 위원장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지난 2월 진행된 파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노조나 회사나 힘든 상황에 부닥쳤다는 생각을 했다. 위기를 느꼈다. OBS 일원으로서 책임을 지자는 생각과 후배들과 시민사회의 요청으로 나서게 됐다.”

▲ 이훈기 언론노조 OBS지부장. ⓒPD저널

- OBS 창사 이래 첫 파업이었다. 득과 실은.

“파업 결행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전임 위원장과 집행부가 큰일 했다고 평가한다. 다만 방송사는 파업의 명분을 잘 갖고 가야 하는데 단체협약 내 국장 임면동의제 문제가 이슈화되지 못했다. OBS 경영상황도 그리 좋지 않은데 법정수당 등 임금 쪽에 치우친 파업처럼 보이면서 역풍을 맞았다고 본다. 노조가 전략과 전술에서 정교하지 못한 면이 있었는데 안타깝다.”

- 파업 참여자에 대한 업무 미배치가 여전하다고 들었다. 제작국의 문제는.

“방송사에서 제작국이 중요한 부서인데 PD 상당수가 파업 이후로 업무에서 미배치되어 일부만 업무를 하고 있다. 사측은 ‘길들이기’, ‘줄 세우기’로 악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내부 PD인력에 프로그램을 맡겨도 되는 상황인데도 외주제작사에 프로그램을 맡기고 있다. PD는 창의성과 자율성이 기반이 될 때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데 오히려 억압으로 일관해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 제작국 문제 해결 방안은.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게 필요하다. 현재로선 PD들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기 어렵고 인력 유출도 잦다. 따라서 PD를 업무 복귀시킬 때 아침 생방송이나 다큐멘터리, 토론·시사 프로그램 등을 신설해 제대로 업무에 배치하는 게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조합은 세부적으로 편성표를 분석해 회사에 문제점을 전달할 생각이다.”

- OBS 신임 집행부의 당면과제는.

“ 이대로라면 OBS는 생존도 미래도 없다.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마냥 기다릴 수 없다. 내주께 집행부 구성이 완료되면 OBS의 비전을 제시하는 TF팀을 꾸릴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OBS의 콘텐츠, 조직인력, 예산, 증자 문제들을 논의해 회사의 경영과 비전을 제시해 주주들에게 평가받고자 한다.”

- 방송사의 특성을 고려해 비전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가령 <한겨레>, <경향신문>은 임금 수준이 모자라도 회사의 비전이 있고, 언론인으로서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OBS는 두 개 모두 없다. OBS의 인력 유출이 심한 것도 결국 비전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구성원에게 비전을 심어주면 스스로 자존심을 찾게 되고, 이는 회사의 경영과 위상에도 영향을 미쳐 선순환 구조로 갈 수 있는 기반이 되리라 본다.”

- OBS는 묵은 문제로 언론사 사주체제의 한계는 없나.

“OBS는 특이하게 노동·자본·시민사회가 결합해 탄생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주주와 최고 경영자인 사장은 책임을 피했다. 사장은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노력도 하지 않았다. 권력만 유지할 뿐 정책결정에서 주주한테 책임을 떠넘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대주주인) 백성학 회장의 관여도가 높아졌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뒤엉켰다. 조합은 사장과 주주의 관계와 책임 소지가 모호해진 점을  비전 제시를 통해 개선할 것이다.”

- 구체적 사례는.

“OBS가 도약할 기회는 세 번 정도 있었다. 2011년 오랜 시간 끝에 역외재송신이 허가됐을 때도 경영진은 아무런 준비를 해놓지 않아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했을 때도 OBS는 충분히 도약할 수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준비나 지원이 부족했다. 미디어렙 지정 당시에도 경영진과 주주는 정책적 대응을 제대로 못 하면서 민영 미디어렙인 미디어크리에이트에 지정됐다. 경영진의 잘못이 크고, 경영인을 감싼 주주의 책임이 크다.”

- 조합원과 사측에 하고 싶은 말은.

“신영복 선생이 OBS 출범 당시 조합에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라는 현판을 써주셨다. 우리 상황이 딱 그렇다. 조합원들은 파업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힘을 모아서 가면 힘이 생길 것 같다. 사측은 회사가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가슴을 열고 열린 자세를 가졌음 좋겠다. 함께 비전을 만들어서 한 단계 도약하는 시기로 마음을 모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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