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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이 만난 사람 2 - 윤길룡
PD의 퍼스낼리티 드러내는 탐사 저널리스트
  • 승인 199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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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이번호에 주철환이 만난 사람은 mbc 교양제작국 「pd수첩」팀의 윤길룡 pd다. 윤길룡 pd는 지난 95년 이래 「pd수첩」에 몸담고 있는 동안 집중적인 취재의 결과물인 「소쩍새 마을의 진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진범은 누구인가」, 「함평 여고생 사건」 등의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편집자>
|contsmark1|농담.일생을 통해 쏟아낸 말들 중 절반은 농담이 아닐까. 프로듀서연합회가 주선한 윤길룡 pd와의 만남은 입사 이후 줄곧 농담 투기(‘따먹기’의 점잖은 말)로만 일관해 온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아연 긴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멍석 위에 앉아 자기최면을 건 후 진지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니 내 명시거리 앞에는 ‘새 사람’이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pd들끼리 툭툭 던지는 말들 속에는 때로 비수가 숨겨져 있다.“그림이 좋던데”주제의 빈약함을 우회적으로 찌른 말일 수 있다.“대담한 편집이었어”섬세하지 못한 연출을 비웃는 경우이다.(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쨌든 특이했어”상대방의 심미안이나 이데올로기에 동의할 수 없을 때 항용 쓰는 완곡어법이다.
|contsmark2|언론인과 직장인과 예술가.공중파tv pd들이 가진 세 얼굴 가운데 「pd수첩」을 연출(출연)하는 윤길룡 pd는 첫째 항에 분류되어야 할 듯하다. 아티스트보다는 저널리스트의 길을 택한 그의 입장이 궁금했다.
|contsmark3|- 지난 번 「함평 여고생 사건」때 보니까 용기가 대단하던데.- 공허한 얘기는 피하려다 보니까…- 드라마나 쇼는 공허하다는 뜻인가.- (웃음) 그게 아니고 내 적성이 이른바 인베스티게이티브(investigative) 저널리즘인 것 같아서.- 몇 살인가.- 만으로 마흔이다.벌써 불혹이라니 그가 다시 보인다.
|contsmark4|- 네 배는 칼로 쑤셔도 안 들어가냐는 말도 들었다던데.- 가끔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을 체감한다.(진지) 한번 사는 건 마찬가진데 이왕이면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그러면서 덧붙인다.- 다이내믹하게 살고 싶다.
|contsmark5|- 소재의 선정성에 대해 말들이 있던데-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울림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야 한다. 소재를 찾을 때 시의성을 최고로 염두에 둔다. 「함평 여고생 사건」이 방송된 후 pc통신에 3백개 이상 의견이 떴지만 선정성 시비는 보지 못했다.- 솔직히 시청률을 의식하진 않았나.- 올해초 정신대 할머니 보상금 문제를 다룬 아이템이 있었는데 최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좀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청자에 대해 일말의 배신감을 느꼈다. 취재 도중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비애가 더욱 컸다.(잠시 숙연) 시청률이 중요하지만 시청률 때문에 「pd수첩」이 그 방향으로만 굴러가진 않는다.
|contsmark6|어떤 pd라도 이 이상의 ‘준비된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입사지원서를 내러 방송사에 왔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한 일을 상기한다. 그때 청원경찰이 던진 우정어린 면박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정신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pd수첩」의 정신은 무엇인가.- 소외 받는 자의 삶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특히 제도나 법령이 지닌 구조적 모순 때문에 비극적 상황에 빠진 이들을 주목한다.- 그런 정신의 구현으로 가장 보람있었던 때는.- 재작년에 샴쌍둥이를 「pd수첩」에서 다루었는데 당시 살아날 확률이 30퍼센트에 불과했다. 방송이 나가자 온정이 쏟아졌고 그들은 지금 건강하게 살아 있다. 죽었다고 절망하던 이들을 방송이 살린 것이다.(감격의 표정) 사람 하나의 생명은 지구의 무게보다 크다고 하지 않는가.- 우울한 적도 많았을 텐데.- 「pd수첩」 잘 보고 있어요 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pd수첩」의 취재 대상이 되는 걸 달가워하는 이는 거의 없다. 본의 아니게 사건 주변의 선량한 가족 혹은 이웃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 가장 마음 아프다. 주부 우울증으로 딸들을 살해한 어머니 사건을 다룬 일이 있는데 그 남편을 아파트 입구에서 마주쳤을 때 어제 아이들을 화장했다고 말하며 쓸쓸하게 카메라를 피해가던 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걸려 있다.- 함평사건 때도 그랬지만 프로그램의 성격상 입장이 다른 두 편 중 어느 한쪽편의 말에 더 신뢰감을 갖고 취재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물론 약자의 편에 서게 되지만 그러다 보니 의심이 가는 가해자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치게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의 초상이다.- 이제까지 부닥친 가장 악질(?)은- (잠시 생각) 세상에 진짜 악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소쩍새마을의 진실」에 만난 일력이나 「위험한 풍수」의 육관도사 같은 사람들에게조차도 지금은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건 「pd수첩」팀의 금과옥조다.- 실패의 기억도 있을 텐데.- kaist의 심리학교수였던 분이 제기한 개구리소년 암매장 의혹 편은 그래서 방송되지 못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취재과정이 담긴 테이프는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지금 시점에서 꼭 실패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월남전 후유증인 고엽제 문제, 개구리 소년 같은 미제 사건들, 위선의 가면을 쓴 두 얼굴의 사회저명인사, 그리고 어린 생명을 노리는 유괴사건들에 관심이 많다.- 「pd수첩」류의 프로그램들 중에서 「pd수첩」의 특화된 점은 무엇인가.- pd의 퍼스낼리티가 드러난다는 점일 것이다. 사건과 배경이 두드러진 여타 프로그램들에 비해 취재자의 휴머니티가 강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pd수첩」하면 왠지 외압도 많을 듯한데.- (웃음의 공백) 「pd수첩」이 방송 파업의 기폭제가 된 일이 세 번이나 있었다. 지금은 아이템 자체가 정치쪽보다는 사회쪽의 성향이다 보니까 외압이 스며들 여지가 적은 것 같다. 원칙에 충실하려고 한다. 일단 방향을 잡고 기획이 시작되면 프로그램은 이미 누구의 손을 떠난 것이다.- 방송사 입시철인데.- pd는 모름지기 흔들림 없는 화두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나의 화두는 ‘사람답게’이다.- 좋아하는 말 하나쯤 남긴다면.- 열정없이 이루어진 위대한 것은 없다.
|contsmark7|진담이 끝나가는 시간이다. 불현듯 멍석을 치우고 싶어진다. 한때 그는 대학 선배인 내게 만날 때마다 ‘철모’라는 황당한 구호로 인사한 적이 있다. 군대 얘기를 하다가 알몸의 어느 부위에 철모를 세우고도 끄떡하지 않았다는(「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에도 나오기 힘든) 괴력을 자랑한 후 철모가 별명처럼 붙여졌기 때문이다.그 철모가 지금은 왕눈이라는 별명의 여섯살짜리 애기아빠가 되어있다.
|contsmark8|- 왕눈이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contsmark9|나는 그의 튼튼한 철모가 총알 - 편견, 욕심이 만든 - 이 빗발치는 이 험난한 싸움터에서도 벗겨지거나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왕눈이 앞에 펼쳐진 세상이 「pd수첩」에 그려진(구겨진) 너저분함과는 상관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농담으로 시작했지만 진담으로 끝낼 수 있어서 가뿐하다. 진담도 때로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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