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씩 만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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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해진 MBC ‘휴먼다큐 사랑’ PD

▲ <휴먼다큐 사랑>을 연출한 유해진 PD. ⓒMBC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마음을 울린 MBC <휴먼다큐 사랑>(이하 <사랑>)이 지난 3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랑>은 2006년 첫 방송 된 이후 8번째를 맞았다.

올해에는 기도(숨관) 없는 소녀의 이야기 ‘해나의 기적’, 청각 장애인의 기적적인 삶 ‘슈퍼 수림’, 고난 끝의 출산을 그린 ‘떴다! 광땡이’, 9명의 아이를 공개 입양한 가족을 담은 ‘붕어빵 가족’ 등의 사연들을 전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중  ‘해나의 기적’과 ‘붕어빵 가족’을 연출한 유해진 PD를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본사 내 편집실에서 만나 <사랑>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해진 PD를 빼면 <사랑>을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정도로 유해진 PD와 사랑과의 인연은 깊다. 1996년 MBC 입사해 <PD수첩> <사과나무> <김혜수의 W> <시추에이션 휴먼다큐 그날> 등을 연출한 유 PD는 입사 11년 차에  <사랑>의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너는 내 운명’(2006) ‘안녕, 아빠’(2007)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2007) ‘풀빵엄마’(2009) 등을 선보이며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아시안TV어워즈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2006), 반프월드TV페스티벌 심사위원특별상(2007)을 받았고, 2010년에는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국제에미상(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다.

2009년 이후로 4년 만에 ‘해나의 기적’과 ‘붕어빵 가족’으로 다시 찾은 유 PD는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그는 “<사랑>을 몇 차례 만들고서 다양한 PD들이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돼 뜻깊다”며 “시청률 면에서 약간 아쉬움은 남지만,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만큼은 뜨거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캐나다인 아빠 대럴 워렌(38)과 한국인 엄마 이영미(37)씨 사이에 태어나 선천성 기도(숨관) 무형성증을 앓는 세 살배기 소녀 해나의 사연을 다룬 ‘해나의 기적’에 대한 시청자의 반향은 컸다. 게시판에는 응원과 희망을 담은 메시지들이 쏟아졌고, 작은 마음을 보탠 후원의 손길과 기도 삽입 수술 이후 해나의 소식을 기다리는 글이 줄을 이었다.

방송 이후 한숨 돌리고 있는 유 PD에게도 해나에 대한 기억은 특별하다. “우연히 신문기사로 접했던 해나를 직접 만나보니 28개월 동안 어려움을 견디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과 수술을 기다리는 상태였죠. 당시 수술을 못할 경우까지 고려해 예비 출연자를 생각해뒀지만, 막상 촬영해보니 해나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죠. 또 해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사랑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 <휴먼다큐 사랑> ‘해나의 기적’편 ⓒMBC
유 PD가 약 반년 가량 촬영하면서 지켜본 해나는 “해나니까”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아이였다. 해나는 2개월 생존 선고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냈다. 해나의 사연을 알게 된 의료진 또한 인공기도 이식 수술을 무료로 해주는 등 든든한 지원군이 되는 것을 마다치 않았다. 그는 “세상 어딘가에서 이렇게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며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면서 자기 삶에 대한 의지를 고취하거나 위로받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해나’처럼 유 PD의 마음을 뒤흔든 ‘우리네 이웃’은 그의 기존 작품들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그간 <사랑> 시리즈로 방영됐던 ‘너는 내 운명’ ‘안녕, 아빠’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풀빵엄마’ 속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사랑’의 진정성을 일깨웠다. 유 PD도 “<사랑>은 연출하는 PD에 따라 저마다 색깔이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으로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람, 반년 이상 함께 하면서 저로서도 행복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섭외해왔다”고 말했다.

유 PD는 섭외부터 촬영까지 연출자와 출연자의 경계를 긋지 않았다. 그는 출연을 재차 거절했던 시한부 영란 씨(‘너는 내 운명’)에게 프리지어 꽃을 사서 병원을 찾아 서로 사는 이야기만 두런두런 나누고 출연 제안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지만, 끝내 마음은 통했다. 섭외가 확정된 이후로는 서로 알아가는 데 방점을 맞췄다.

“‘붕어빵 가족’을 촬영할 땐 출연자인 아이들이랑 배구 놀이를 하며 놀았죠. 서로 감정의 소통 없이 연출자 입장에서만 그들을 마주하면 방송에서도 따뜻한 느낌이 나오지 않아요. 수다 떨고, 함께 놀다가 상황이 생기면 촬영하고, 출연자와 제작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죠.”

유 PD는 연출자와 출연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신뢰를 쌓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출연자와 연출자는 감정적으로 거리를 둬야 한다고 배워서 시행착오를 겪었죠. 각혈하는 영란 씨(‘너는 내 운명’)를 좋은 앵글로 찍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가도 어느새 세숫대야 찾으러 우왕좌왕하고 간호사 부르고 했죠. 결국, 지나고 보니 그러한 과정은 신뢰를 쌓는 과정의 일부인 것 같아요.”

▲ <휴먼다큐 사랑> ‘붕어빵 가족’ 편 ⓒMBC

이처럼 출연자와의 친숙해지다 보니 유 PD는 출연자의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는 “‘죽음’은 훌륭한 테마이지만 스스로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아닌지라 가위도 많이 눌리고 후유증이 컸다”며 “다만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가족애가 더욱 아름답고 숭고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 PD는 지난해 <사랑> 시리즈를 통해 마주한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묶어 <살아줘서 고마워요>(문학동네)를 출간했다. 그는 “방송은 찰나적인데 반해 책은 여운이 오래가는 것 같다”며 “아름다운 삶을 사는 이들을 방송으로 전하는 것과 더불어 이들에 대한 감동을 오랜 시간 동안 붙들고 싶어 PD로서 감회를 담았다”고 말했다.

유 PD는 <사랑>을 편집하느라 정작 ‘가정의 달’에 자신의 가족을 잘 챙기지 못해 아쉬움은 크지만,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사랑한다’는 말의 크기를 알게 됐어요. 가족 간의 스킨십과 표현이 굉장히 중요해요. 가족은 물과 공기 같아 막상 없으면 그때야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힘든 상황이 오기 전에 ‘말’로 표현하세요.”

이어 그는 “ <PD수첩>이 우리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한몫한다면,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만져 우리 사회가 따뜻해지도록 기여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사람의 선성(善性)을 자극하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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