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맛집’이라도 입소문 듣고 찾아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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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맛집’이라도 입소문 듣고 찾아 오겠죠”
[인터뷰] MBC ‘코미디에 빠지다’ 김명진 PD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3.06.25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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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한때 ‘코미디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다. 1969년 <웃으면 복이 와요>로 시작해 1990년대 ‘별들에게 물어봐’, ‘귀곡산장’, ‘소나기’, ‘허리케인 블루’ 등 인기 코너를 만들어 낸 <오늘은 좋은날>로 MBC는 코미디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1999년 공개 코미디 형식의 KBS <개그콘서트>가 새 강자로 떠오르며 MBC의 정통 코미디는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이후 정통·공개 코미디를 꾸준히 시도했지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 신설된 MBC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에 빠지다>(이하 <코빠>)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 재정비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개편을 단행한 이 프로그램의 김명진 PD는 ‘코미디 왕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새롭게 출격을 마친 <코빠>의 김명진 PD를 지난 21일 일산 MBC드림센터 코미디언실에서 만났다.

▲ MBC <코미디에 빠지다>의 김명진 PD
“지금 시대 이야기가 아니면 의미 없어”

MBC 코미디 프로그램이 오랜 기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다 보니 “내가 해보겠다”며 선뜻 나서는 PD도 예전만큼 많지 않다. 지난해 <코빠>로 코미디를 처음 맡은 김명진 PD에게는 도전이자 기회였다. <일밤>, <놀러와> 등의 조연출을 거쳐 2010년 <위대한 탄생> 시즌 1로 연출을 처음 시작해 시즌 2까지 맡았지만, 코미디는 이번이 처음이다.

“입사할 때부터 코미디를 하고 싶었어요. 그걸 아는 선배들이 지난해 <코빠>로 보내줬죠. 처음 왔을 때는 여건이 좋지 않아 어려웠어요. 하지만 입사 전부터 MBC 코미디 팬이었고, '내가 한 번 일으켜 세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책임감을 갖고 하고 있어요.”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김 PD는 두 달을 고민한 끝에 개편을 진행했다. 이번 개편의 특징에 대해 김 PD는 “지금 시대 이야기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개그맨들에게 중점적으로 요구한 것이 공감대, 즉 동시대 이야기를 하자는 거였어요. 청년 실업, 아이돌 열풍, 고령화 문제 등 지금 아니면 못하는 시대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죠. 그런 문제를 다양한 방식과 볼거리를 통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개편을 했어요.”

실제로 이번 개편에는 김 PD의 노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설된 정치 코미디 ‘이것이 법이다’는 법안 실명제 이후 내실 없이 급조된 법안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법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방송의 신’은 맛집 논란 등 조작방송을 풍자한 코너로 방송에서 방송의 허와 실을 꼬집는 용감한 코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그린 ‘초고령화 사회’는 “할아버지를 위한, 할아버지에 의한, 할아버지의 실버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신인 개그맨 성장을 위한 최고의 장소는 ‘무대’”

이 같은 대대적인 개편은 공채로 일을 시작한 개그맨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가능했다. 그동안 짧은 호흡의 공개 코미디를 이끌어 가기에 인력 부족 등 현실적 여건이 좋지 않았다. 기존 9개 코너에서 11개 코너로 늘리게 된 것도 부족한 인력이지만 그나마 지난해와 올해 새로 뽑은 개그맨들 때문에 인력에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김 PD는 “지난해 프로그램을 처음 맡은 당시 MBC 공채 출신들도 대부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 개그맨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꾸준히 프로그램을 이어오며 매년 공채 개그맨을 뽑아온 KBS와 달리 MBC는 프로그램의 신설·폐지를 반복했고 공채 개그맨도 2009년 이후 한동안 뽑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있던 신인 개그맨들도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부족해 힘들어했다. <코미디 하우스>, <웃는 데이(day)>, <개그야>, <하땅사>, <웃고 또 웃고> 등은 부진을 이유로 평균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폐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프로그램 폐지와 함께 개그맨들이 연기를 갈고 닦을 무대도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개그맨 공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밑거름이 바로 개그맨이다. 김 PD는 개그맨 공채제도 부활에 힘을 쏟았다. 다행히 지난해 <코빠>를 맡으면서 3년 만에 개그맨(공채 19기)을 뽑을 수 있었고,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신인 개그맨이 들어왔다고 바로 투입할 수는 없죠. 기업에서도 신입이 들어오면 우선 교육부터 하잖아요. 예능은 성장한 스타를 데려다 할 수 있지만, 코미디는 자체적으로 키우고 활용해야 해요. 그리고 개그맨들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바로 ‘무대’인 거죠.”

그러나 <코빠>가 처음 생겼을 때도 신설과 폐지의 반복을 직접 경험한 MBC 개그맨들 사이에는 프로그램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다행히 회를 거듭하며 개그맨들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코빠>에 몰두했고 덕분에 빠른 성장을 보이게 됐다.

▲ 지난 16일 MBC <코미디에 빠지다>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신설된 코너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TV스타쇼 그때 그사람', '초고령화 사회', '이것이 법이다', '방송의 신' ⓒ화면캡처

“MBC 코미디에 빠져들게 할 거예요”

그가 코미디를 하는 이유는 명쾌했다. “코미디는 예능의 근간이자,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사회 문제는 물론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룰 때 교양이나 시사 같은 진지한 시각도 당연히 필요해요. 하지만 코미디는 웃음으로 시작해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해요.”

코미디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다. 일요일 밤 11시 50분 방송이라는 시간적 한계는 그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이다. 김 PD는 “일요일 밤에 하다 보니 시청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며 “위치가 좋지 않은 변두리 식당과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변두리에 있어도 소문난 맛집이라면 사람들이 찾아가기 마련이다. 김 PD는 MBC 코미디만이 가진 장점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진짜 맛집은 입소문을 통해 멀리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가서 먹어요. MBC 코미디의 특징은 쇼 적인 것보다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기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요. 보면 볼수록 빠지는 개그죠. <코미디에 빠지다>라는 제목처럼 사람들이 점점 MBC 코미디에 빠져들어 찾아오도록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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