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완벽함’, 어른들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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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완벽함’, 어른들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인터뷰] EBS 창사특집 5부작 ‘다큐프라임-퍼펙트 베이비’ 김민태 PD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3.07.0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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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아기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이고, 부모가 이끄는 대로 아이들은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어른에게 아기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의 인식을 뒤집어 놓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지난 6월 24일 방송을 시작한 EBS 창사특집 5부작 <다큐프라임-퍼펙트 베이비>(이하 <퍼펙트 베이비>)는 뱃속 태아부터 시작해 2세 미만의 영아의 모습을 통해 아기란 어른의 생각보다 완전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아기는 뱃속에서부터 자신이 처한 환경을 파악해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데 이것은 출생 이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1부 ‘태아 프로그래밍’ 편). 생후 1년도 채 안 된 아기들은 뜻밖에도 감정조절능력과(2부 ‘감정조절능력’ 편) 사회생활의 기본인 ‘공감’ 능력(3부 ‘공감, 인간관계의 뿌리’ 편)을 갖는가하면, 왕성한 호기심과 내적동기(4부 ‘동기, 배움의 씨앗’ 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 부모는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5부 ‘행복한 아이 프로젝트’ 편) 부모에게 조언한다.

아기들이 가진 능력과 경이로움을 보여준 <퍼펙트 베이비>의 김민태 PD를 지난 6월 28일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만나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퍼펙트 베이비>는 태아기 때 일어났던 일이 태어난 후의 삶에도 이어지며, 영아 시절 형성된 감정조절능력 등이 성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EBS
<퍼펙트 베이비>라는 제목을 달기까지 김 PD의 고민도 많았다. 김 PD는 “직관적으로 ‘퍼펙트’라고 하면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다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러나 아기의 본성, 아기가 가진 능력의 ‘완벽함’을 보여주고 싶어 제목을 그대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2008년 <다큐프라임-아이의 사생활>에서 어른이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김 PD는 이번에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즉 ‘태아’ 시기부터 주목했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아이 때와는 다르게 화도 잘 다스리고 대인 관계도 원만하고 시키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사실 어른이라고 다 그렇지 않아요. 왜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람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등에 대해 생각하다 태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 거죠.”

김 PD가 생각한 아이의 인식 수준은 어른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른보다 다채롭지 못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이 차이를 설명이 아닌 실험으로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김 PD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

“사실 실험참여자인 아기가 아니라 부모의 동의를 받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낯선 상황에서의 실험이 아이들에게는 두렵고 불편하잖아요. 그리고 실험하면서 아이들을 우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미안했어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에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실험의 주체다 보니 예정대로 촬영을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참가 아이들이 대부분 2세 미만의 영아다 보니 아이들의 몸 상태가 나빠지면 촬영도 함께 끝났다. 낯선 상황에 아기가 너무 울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촬영을 다 해놓고 등장하지 않은 아기들도 꽤 된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혹여 나쁘게 비춰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퍼펙트 베이비>의 김민태 PD ⓒEBS
이런 어려움 속에서 제작된 <퍼펙트 베이비>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지내는 280일이 성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해냄으로써 많은 엄마들에게 충격을 전해줬다. 김 PD는 ‘태아 프로그래밍’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아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태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또 달라요. 태교의 중요성을 체화하지 못하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까지 와 닿진 못해서죠. 이걸 느끼는 과정에서 다소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불편한 감정들 속에서 사람들이 임신의 중요성, 뱃속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면 했어요.”

아기는 태아 단계에서 단순히 엄마가 제공하는 환경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상태를 조절해나간다. 밖으로 나온 아기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아기들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법을 배우는 것, 울음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이런 점에서 <퍼펙트 베이비>는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이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2부 ‘감정조절능력’ 편에서 나온 아이들의 ‘울음’이다. 김 PD는 “아기들은 울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무언가를 이루면서 감정조절을 배우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부모가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도움을 주지 못하면 회피나 불안정애착으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방송을 보면 엄마가 자리를 비워도 낯선 공간에서 잘 노는 아이 A는 스트레스 호르몬 측정 결과 실험 참가 아기들 중 가장 높은 스트레스 지수를 보였다. 울음을 통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다른 아이와 달리 A는 울지 않았다. 이는 A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 회피하는 ‘회피애착’을 보이는 것이다.

프로그램에서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지만 A와 A의 엄마가 치료를 통해 회복된 모습을 보여준다. 실험 마지막 A는 울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됐고, 엄마는 A와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게 됐다.

김 PD는 “현장에서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났다. 편집하고 자막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울었다”며 “나도 부모인지라 더 공감하고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쉬운 건 치료 과정까지 촬영한 건 아니라 그 과정이 어땠을 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 <퍼펙트 베이비> 1부 '태아 프로그래밍' 편에서 암스테르담 메디컬센터의 테사 로즈붐 박사는 사람들에게 오래전 일어났던 일도 성인이 된 후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EBS
이처럼 <퍼펙트 베이비>는 지금까지 많은 곳에서 언급됐던 태교와 아기 발달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프로그램과는 달리 부모들에게 아이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실험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거나 몰랐던 사실들에 증명할 뿐이다. 직접 보고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육아방법은 다른 책이나 방송에서도 볼 수 있어요. 내가 아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내가 아기를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해요. 어떤 면에서 아기는 어른보다 완벽해요. 아기들의 표현이 미숙할 뿐 어른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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