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잘 하고선 불방, 이런 일 비일비재”
상태바
“취재 잘 하고선 불방, 이런 일 비일비재”
[인터뷰]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3.07.31 0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
“15년간의 사측(KT)으로부터 (받은) 노동탄압이 이젠 끝났으면 합니다.” 지난 6월 18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어느 KT 노동자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이다. 이 노동자는 2013년 단체협약 찬반투표 후 검표가 두려워 찬성 도장을 찍고 증거로 남겨놓은 사진 위에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적었다. 한달 뒤, 지난 25일에 또 한 명의 KT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3년에만 벌써 25번째 죽음이다.

2006년 이후 KT 노동자 가운데 사망한 사람만 281명에 달한다. 그중 2008년 12월 이석채 KT회장 체제 이후 사망자는 무려 204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72.5%에 달한다. 여기에 전체 자살자 28명 중 89.2%에 해당하는 25명이 이석채 회장 체제에서 나왔다. 한국 최대 통신업체 KT가 ‘죽음의 기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이유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KT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언론의 외면에 죽음의 기업 KT는 또 하나의 수식어를 달게 됐다. ‘아무도 모르는’ 죽음의 기업 KT. 왜 이렇게 된 걸까.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은 “KT의 살인적인 노무 관리 때문”이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KT 노동자들이 왜 벼랑 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뜸 CP와 민영화에 대해 언급했다.

“민영화 전에는 ‘통신 공공성’이라는 게 있었죠. 이건희 회장의 한 통화랑 시골 노인의 한 통화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는 거죠. 2002년 한국통신이 민영화되고 통신기술 환경도 변화하면서 회사는 점차 노동자들을 비용요소로만 간주하게 됐어요. 경영방식도 변화했죠. 더 이상 이건희의 한 통화와 시골 노인의 한 통화는 동일하지 않게 된 거죠. 그러면서 시골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고 인력 감축도 시작됐습니다.”

KT가 2006년 시작한 이른바 ‘CP비밀퇴출프로그램’(이하 ‘CP프로그램’)의 CP는 경영학 용어로 ‘C-플레이어(Player)’의 약자다. 회사에 기여하는 가치가 노동자에 지급하는 비용보다 더 큰 노동자는 A-플레이어, 같으면 B-플레이어, 가치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면 C-플레이어다. 이런 CP를 AP, BP로 만들자는 것이 경영학이 말하는 핵심이다.

KT는 CP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만, KT 밖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교환원, 나이 많은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있는 노동자 등이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CP가 되면 지사로 원거리 발령, 업무전환배치 등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 KT를 나가도록 종용했다. 그 결과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그리고 자살이었다.

이 위원장도 CP프로그램으로 인해 서울 을지로지사에서 경기도 가평지사로 발령받았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저도 적응을 못 했어요.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 전화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도 안 되고, 그만큼 수리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는 거죠. 한 50대 여자 교환원을 개통팀에 배치해 전신주에 억지로 올라가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한 노동자는 해고 후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복직했지만, 전주에서 포항으로 발령받아 민원응대 업무를 시작했고 지금은 우울증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상태다. 이밖에도 6명의 노동자가 CP프로그램의 후유증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 [표 1] KT재직자와 명퇴자 및 사내계열사 포함 사망자 수 ⓒKT노동인권센터
이 위원장은 “CP가 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은 자연스레 실적 경쟁에 나선다”며 “‘자뻑’이라 해서 내가 쓰지도 않을 전화를 실적을 위해 내 돈 주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자뻑폰’이 쌓이고 쌓여서 ‘장롱폰’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적을 쌓지 못하면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만큼 힘들면 혁명이라도 하지 왜 그러고 있냐고 하는데 자살할 정도라는 건 힘든 것 뿐 아니라 극심한 고립감에 시달린다는 겁니다. 저는 KT가 대한민국의 압축판이라고 생각해요. 죽은 노동자 대부분이 40~50대인데 회사에서 치이고 집에서는 몰라주고, 정신병원에 다니며 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죽은 동지들 대부분이 유서도 없어요. 삶을 놓아버릴 정도로 힘들다는 거죠.”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KT 노동자들이 이처럼 노동·인권 탄압에 시달리며 죽음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린다는 사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특히 지상파 3사에서 KT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사실 언론에 서운한 마음이 있어요. 사태가 이런 데도 왜 언론에 이야기하지 않느냐는 말도 들었죠. 일부 진보 매체에서는 우리 문제를 조금씩 다뤄주고 있기는 해요. 그러나 방송은 2011년 MBC <PD수첩> 이후로 거의 나오지 않고 있어요. 얼마 전 한 방송사 기자가 KT 문제를 다루려다 불방됐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는 KT 문제에 대한 언론 침묵은 광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KT는 100대 광고주 가운데 10위권 안에 든다(닐슨코리아 조사). 전체 KT광고의 80~90%는 TV 광고비로 쓰였다.

이 위원장은 “민영화 이후 설비투자비, 인건비, 연구개발비 모두 줄어든 가운데 늘어난 게 2개 있다. 바로 법무비용과 언론비용, 즉 광고선전비”라며 “결국 한국통신의 민영화 이후 가장 큰 수혜자는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일부 언론이 KT 노동자들의 소식을 간간이 전하고 있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은 찾기 어렵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 노동자들이 인터뷰를 하면 자신의 요구를 굉장히 당당하게 말하고 이것이 보도되는 걸 보면 부럽죠. 우리의 경우 보도된다 해도 대부분 불쌍하다는 이야기예요. 노동자들의 절규 이상을 말하지 않죠. KT 노동자들이 왜 이런 상황에 직면해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