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의, 지상파에서 케이블까지…예능의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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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의, 지상파에서 케이블까지…예능의 시대를 열다
[홍경수 교수의 PD학개론 ②] 송창의 tvN 부대표
  •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13.08.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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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홍경수 교수(왼쪽)와 송창의 부대표 ⓒ강의정

‘PD와의 대화’ 첫 번째 기사(주철환 PD편)가 <PD저널> 온라인 판에 실린 지난 7월 23일 <모래시계>의 김종학 PD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온라인에 함께 실렸다. 한국 드라마에 한 획을 그은 작가로 이름을 떨친 그는 이미 역사가 되어 버렸다.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더라도 심신이 지친 그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섭외 전화를 통해서라도 한국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삼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번 인터뷰를 재촉했다.

두 번째 인터뷰 대상으로 1980년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기초를 놓았고, 1990년대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일구었으며, 2000년 이후 한 케이블 PP를 ‘겁나 재밌는 왕국’으로 우뚝 서게 한 송창의 PD를 선택했다. ‘왜 송창의냐?’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보았다. 우선 그는 현재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형식을 처음으로 기획한 PD이다. 또한 지금은 올드한 뉴미디어인 케이블 PP에 투신해 지상파를 위협할 만큼 케이블TV의 위상을 높였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과 케이블 TV의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손색이 없다. 송창의 PD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기사는 송창의 PD의 본질을 함축한다. <연합뉴스> 고현실 기자가 쓴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김영희, 김태호, 나영석 이전에 그가 있었다.’(연합뉴스, 2012년 3월 4일자)

1953년 서울 출생으로 올해 나이 61세인 송창의 PD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MBC에 입사했다. 그는 32년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의 기초를 놓았으며,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몰래 카메라’를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또 콩트를 버리고 토크 코미디 프로그램의 시대를 열었다. 최초의 시트콤인 <남자 셋 여자 셋>과 성인시트콤인 <세친구>를 만들었고, <특종 TV연예>를 통해 서태지를 발굴하고 집단 MC체제를 도입했다.

tvN에서는 일부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 케이블 TV에 걸맞은 형식의 오락 프로그램들인 <롤러코스터>, <TAXI>, <막돼먹은 영애씨>, <SNL 코리아> 등을 성공시킴으로써 대중문화의 한 흐름을 만들었다. 게다가 지상파에서 이적한 PD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응답하라 1997>, <코미디 빅리그>, <꽃보다 할배> 등은 송창의 PD의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37년째 예능 PD로 활약하고 있는 tvN 송창의 부대표를 지난 8월 13일 오후 상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송창의 tvN 부대표 ⓒ강의정
“의도적으로 공식을 깨려고 합니다”

홍: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웃음) 최초의 프로그램들을 굉장히 많이 만드셨는데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나요?

송: <뽀뽀뽀> 같은 경우 제가 처음 만든 건 아니고 선배인 이재휘 PD께서 처음 6개월 하고 제가 바로 맡아서 한 3년 반 정도 했어요. 어쨌든 그것도 뭐 선배가 만들긴 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유아 프로그램였어요. 그 다음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만들었고, 그 다음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처음 시트콤을 했고, 그리고 성인 시트콤 <세친구> 을 연출했어요. 그 다음에 이제 제가 직접 연출한건 아니지만 tvN 와서  <막돼먹은 영애씨> <TAXI> <롤러코스터> 등을 기획했습니다.

홍: 제가 어릴 때 실은 많이 본 프로그램들입니다. 요즘 한국 예능프로그램의 씨앗이었다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네요.

송: 그 전에 선배들이 한 것들도 많아요. 이제 이상하게 제가 무슨(웃음) 예능 프로그램의 그런 거처럼 돼 있는데 사실 제 선배들이나 또 MBC가 아니더라도 KBS쪽에서도 좋은 예능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제가 좀 거품이 많은 거 같아요.(웃음)

홍: 제가 보기엔 거품이 좀 적은 거 같은데요.(웃음) 본인의 연출 스타일은 어떻습니까?

송: 제 연출 스타일을 사실 잘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정의를 해주면 그런가보다 하는데 내가 무슨 어떤 스타일을 말하기가 어렵네요. 어떤 의지를 갖고 한다기보다 그냥 그렇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 스타일이라는 건 의도적으로 어떤 매뉴얼에 의해서 하는 것도 아니예요. 제가 맡았던 프로그램 예를 들면 코미디면 코미디 그럼 그때 그 상황에 맞게 하고, 쇼면 그 상황에 맞게 했어요. 특별히 제 스타일을 정의하기가 되게 애매모호한 것 같아요. 그야말로 옛날에 컬투가 얘기했듯이 “그때그때 달라요” 같은데요. (웃음)

2007년 말 홍대에서 우연히 만나 그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을 기억을 못 하니 초면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너무 딱딱한 질문으로 시작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그의 겸손한 태도도 인터뷰를 팍팍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좀 더 기다리니 그는 말을 이었다.

송: 그런데 얘기를 하자면 남이 안 하던 것,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애를 써요. 그러니깐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제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처음 만들 때 경험한 게 있어요. 그 경험을 계기로 그 다음부터는 ‘아 이렇게 해야지’ 하는 제 나름대로의 각오 이런 거는 있었어요. 한 마디로 얘기하면 ‘공식 깨기’라고 할까요. 기존에 있던 공식을 좀 의도적으로 깨는 시도를 했어요. 그런 것들이 차후 나한테는 많은 도움을 줬고 프로그램을 작게나마 성공시키는데 바탕이 된 거 같아요. 그게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일거 같네요.

홍: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만든 계기가 있었나요?

송: 네. 그전에 제가 했던 프로그램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전신인 <일요일 밤의 대행진> 이었어요. 그때 선배가 그 프로그램을 연출해서 공전의 히트를 했는데, 저한테 그 프로그램을 물려주고 승진해서 부장이 되었어요. 승승장구 하던 프로그램을 맡아 별 탈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당시 MC 김병조 씨가 정치적인 발언을 잘못하는 바람에 물러나면서 그 프로그램이 굉장히 급전직하를 했어요. 제가 그 시점에서 연출을 했던 것이죠.

처음엔 잘 나가는 프로그램을 맡았으니깐 별 걱정이 없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MC 문제 때문에 시청률이 떨어지다보니 결국 그 부담을 제가 안게 되더군요. 일 년 이상을 고전했는데 나름대로 일으키려고 별짓을 다하고 발버둥을 쳤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돌파구가 안 보여 포기상태에 이르렀어요. 시청률 대박이 난 MBC 간판 프로그램을 꼴찌로 만들어버린 부담감은 엄청 컸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본부장 방에 가서 프로그램 회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 방 칠판에 쓰여 있던 문구를 보고 대오각성을 했죠. ‘90년대 코미디 90년대 쇼 90년대 드라마’ 세 글자를 보고 ‘아! 저분은 앞으로 10년을 걱정하는데 나는 그 동안 일주일 단위로 살았구나’ 그 생각을 하다보니깐 굉장히 깨우치는 게 많았어요.

▲ 송창의 부대표의 책 <격을 파하라>
PD로서 가장 힘든 순간이 바로 회사의 중요 시간대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잘 되지 않아 전사적인 압력을 받을 때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시 민용기 본부장의 방안 화이트보드에 쓰인 ‘90년대 코미디...’ 라는 글이었고, 10년을 앞서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한다는 각성을 얻었다. 그 후 코미디언들이 콩트를 하던 포맷을 버리고 주병진, 이경규와 함께 토크 코미디를 하면서 몰래카메라 같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코미디를 시도하고 큰 성공을 거뒀다. 

홍: 그래서 그때 그 원리를 바탕으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했나요.

송: 그렇죠.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쓴 에세이에서도 나랑 참 생각이 비슷한 것을 봤어요.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니깐 이 세상은 너무 고정관념으로 사로잡혀 있어서 그 고정관념을 들춰내는 것만으로도 새로움을 취할 수가 있다’ 그러니깐 새로운 걸 만드려하지않아도 우리 눈 앞에 있는 거를 휘장만 이렇게 들춰도 그 새로운 별천지가 있다는 거죠. 그런 각성? 그런 게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굉장히 쉽게 깰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동료나 선배나 후배들이 만드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은연 중에 공식이 다 존재해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이렇게 하고, 쇼는 이렇게 하고, 공식이 있거든요. 나도 과연 그 공식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가. 그래서 이렇게 차분히 모니터링을 하면 분명히 공식들이 존재하거든요. 그런 공식 중에 몇 개만 깨도 시청자가 볼 때는 되게 새롭다고 느낀다는 거죠. 근데 이제 그 공식, 이게 공식인지 아닌지를 아예 모르면 답이 안 나오는 거고. 그게 말은 쉬운데 과연 공식이냐 아니냐 그런 거를 보는 그 안목도 사실은 그 사람의 역량이고 뭐 경험이죠.

그는 2011년 자신의 연출 인생을 정리한 책 ‘격을 파하라’에서 자신의 연출론을 드러낸 바 있다. TBWA 박웅현 ECD가 만들어 주었다는 카피 ‘격을 파하라’는 파격을 풀어쓴 말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물론 PD들의 화두 중 한 가지가 바로 ‘파격’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격’이 보일 리는 없다. 문제는 ‘격’이 무엇인지를 읽어낼 수 있는 독해력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몰두하거나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충전하지 않으면 격을 읽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송: 우리가 흔히 창의성을 얘기할 때 이게 공짜로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창의성이라는 게 결국 새로운 걸 만드는 건데, 새로움을 만들거나 발견하는 작업의 새로움이라는 건 결국 기존의 것을 깨는 거잖아요. 이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게 그냥은 안 되잖아요. 역량을 키워야 되요. 그런데 이 역량이라는 것이 거저는 없잖아요.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이거를 키우는 역량의 바탕이 저는 인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문이 그냥 단순히 책보고 음악 듣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곧 남과는 다른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공식이 뭔지 저게 공식인지 아닌지를 보는 역량도 창의성이거든요.

▲ 그는 인터뷰 도중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창의성을 건축에 비유하여 명료하게 설명했다.ⓒ강의정
그는 인터뷰 도중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창의성을 건축에 비유하여 명료하게 설명했다.

송: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여기서 저기 건물을 보면 저건 MBC이고 이건 YTN이고 저건 동아일보인데 건물이 다 다르잖아요. 어떤 건축가가 다 자기 건물에 맞게끔 설계를 하고 미적인 감각을 동원해서 외부 설계를 하고 결국엔 또 안에 들어가 보면 인테리어도 다 달라요. 제가 이렇게 쭉 몇 달을 지켜보면 지금은 건물이 올라가서 다 각기 다른 건물이지만 한 몇 달 전만 해도 그냥 평지,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아무것도 없는 그 시점에 저게 그 아무 것도 안 한 게 아니라 사실은 열심히들 땅을 판 거예요요. 그냥 기초공사.

그런데 건물이 아무리 서로 미학적으로 다르더라도 땅 파는 건 똑같거든요. 땅 파는 건 똑같은데 이게 제가 볼 때는 인문이고, 인문에 투자하는 시절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이 시절이 없으면 그 위에 건물들이 올라갈 수 없잖아요. 그리고 올라갈 수도 없을뿐더러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도 없는 거죠. 저는 어쨌든 이렇게 많이 보고 많이 듣고 하는 게 결국 우리가 창의성을 키우는 데 가장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움은 반 발짝의 앞섬에서 시작한다”

그는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 한다’라는 책에 소개될 만큼 다독가로 꼽힌다. 게다가 주철환 PD도 함께 근무할 당시 열심히 책을 읽었던 송창의 PD를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그의 창의력의 근저에는 독서가 자리한 것이다. 그의 독서법은 어떤 것일까?

송 : 특별히 없어요. 오래된 버릇이라 회사 일하고 저녁 때 술 약속도 많은데 책은 언제 보냐고 묻는데, 자기 전에 꼭 봐요. 한 페이지라도 봐야 잠이 들어요. 그리고 회사에도 (책을) 놓고 물론 잠자리에도 놓고 화장실에도 놓고 그래서 그냥 아무데나 가도 볼 수 있게 따로 놓고 그래요.

홍: ‘창의적인 것이 용기다’라는 책에서도 얘기를 하셨는데, 그러다보면 약간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어요. 그다지 큰 저항 혹은 역풍 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비결이 있나요?

송 : 우리가 종사하는 분야가 TV미디어라고 한다면 대중문화거든요. 대중문화는 미술이나 다른 순수예술하고 좀 달라서 대중들하고 일단 접점이 있어요.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순수예술은 100년 후에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제가 하는 일이 100년 후에 인정받아서는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반발자국 앞섬이에요. 한발자국을 앞서는 것은 대중과의 괴리를 전제로 하죠. 그러니깐 순수예술의 새로움 이거는 훗날의 새로움이기 때문에 지금 제가 하는 일과는 굉장한 괴리가 있는 거라 항상 반발자국 앞섬으로 기존 공식을 깨는 그 정도의 새로움 그게  저희들이 추구해야 되는 새로움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이게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아예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가는 거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요. 그런데 반 발자국의 새로움이라는 거는 대중들에 근거하면서 그 레퍼런스(reference)위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은 쉽지만 이게 더 어렵다고 봐요. 그냥 제가 어디 골방에 갇혀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그리고, 50년 후에 인정을 받든 100년 후에 인정을 받든 그냥 하면 되는데, 대중문화라는 거는 지금 당장 대중들에게 새로움을 던져주어야 되기 때문에 반 발자국의 앞섬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 인식 그 통찰 하에서 작업을 하면 별 저항 없이 ‘아 새롭다’라는 느낌으로 그냥 다가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과하게 간다거나 너무 욕심이 과하다보면 역풍을 맞기가 쉽죠.

PD들이 입사하면서부터 선배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반 발짝론’을 내세웠다. 다소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그가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이 ‘반 발짝론’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진부한 진실의 힘이 새삼스럽다.

홍: PD들은 본인이 직접 모든 걸 할 수 없기 때문에 스태프들을 통해서 창의력을 구현하게 되는데 그 비결은?

송: 그 얘기를 여쭤보시는 거 같은데 PD라는 직업에 대해 제가 나름 정의를 내린 게 PD는 전문가를 묶는 전문가다 이런 정의를 내렸거든요. 그러니깐 PD 그러면 흔히들 어떤 작업에 중심에 서서 자기가 다 핸들링을 하고 물론 그런 부분도 많죠. 근데 사실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거든요. 연기자는 연기의 전문가이고 미술 스태프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제가 기술 스태프보다 기술을 더 알겠어요? 그러니깐 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사실은 이 전문가들로 하여금 어떻게 성취감을 이끌어내고 모티베이션(motivation)을 끌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PD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이 6, 7 이라면 이 사람들만 잘 활용을 해도 그냥 10을 만들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깐 이 관계에 대한 통찰만 좀 있어도 사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작하는 데 창의성 못지않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내 창의성만 문제가 아니라 내 주위 프로그램을 위해서 모인 스태프들의 창의성까지  시너지를 일으키는 게 내 창의성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 관계를 통한 창의성의 결합, 집합 이것도 중요하다는 예기죠.

“창의력의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그는 ‘격을 파하라’는 책에서 창의성과 관계에 대한 통찰보다 더 근원적인 요소를 열정으로 꼽았다. “창의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 탁월한 출발은 없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과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이 바로 열정이다. 창의가 좋은 출발을 이끄는 시작점이라면 프로젝트를 마무리 단계까지 끌고 가는 힘은 열정에서 나온다. 열정은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최강의 무기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물건을 만들어내겠다는 마음가짐, 이미 보편적인 공식으로 자리 잡은 행태는 따르지 않겠다는 전문가적 자존심, 주어진 일들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끈기와 책임감 이 모든 것이 열정의 다른 이름이다.”(송창의, 2011)

홍: 지금 창의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요

송: 저해?

홍: 예를 들면 시간이라든지 시간적인 제한이라든지 아님 뭐 금전적인 문제라든지 아니면 사회적인 여론 이런…….

송: 음, 외부적인 건 없어요. 내부적으로는 제 게으름. 창의력의 적은 본인의 게으름에 달린 거지 절대 외부 탓을 해선 안 될 거 같아요. 창의력은 설렘과 꼭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깐 창의력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가 그 사람 내부에서 설렘이 동반됩니다. 그런데 이 설렘이 일어나려면 결국 본인의 투자 없이는 절대 안 일어나거든요. 이건 외부에서 줄 수가 없어요. 설렘을 외부에서 백날 ‘야 너 설레라 뭐 돈 줄까 뭐줄까?’ 안 되는 거거든요.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본인의 투자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설렘이거든요. 알아먹지도 못하는 아이디어를 누군가가 준다고 해도 설렘이 생기질 않아요. 그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공짜는 없어요. 그러니깐 내가 투자해서 얻어내는 방법 밖에 없어요. 창의성의 적은 결국 나한테 있죠. 나한테 하는 투자, 나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설렘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지 밖에다가 핑계 대는 것은 좀 억지라고 생각해요.

홍: 물론 그 말씀도 맞지만 반대로 예를 들면 예산이 적거나 또 시간적으로 촉박한 시간에 해야 되거나 인력이 부족하거나 이럴 경우에 아무래도 영향을 받지 않나요?

송: 아니요, 그거는 아닙니다. 내가 창의력은 있는데 그걸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지 내가 이만한 창의력이 있는데 돈 때문에 이게 다운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10의 창의력이 있는데 돈이 없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10개를 8개 밖에 못 한다 7개 밖에 못한다는 것은 구현을 할 때의 문제죠. 창의력은 머릿속에 있는데 내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건데 그거는 뭐 관계가 없죠. 막말로 이중섭이 제주 바닷가에서 은박지에다가 그림을 그려도 자기가 그리고 싶으면 땅바닥에다가 그릴 수도 있고 다 그런 거죠. 그건 뭐 물질적인 거나 시간 타령해서 내 창의력하고는 관계가 없는 거죠.

그는 창의력의 고안과 창의력의 구현을 구분해서 창의력의 고안에는 외부적인 요소가 영향을 줄 수 없는 개인 내부적인 요소라고 답했다. 하지만 PD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창의력의 고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PD로 근무하는 동안 외부환경에 의해 수많은 PD들의 ‘가슴 설렘’과 ‘열정’이 식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이런 의문과는 달리, 설렘이 프로그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은 더 들어볼 만하다. 그는 삶에 대한 설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을 시작할 때 일이 즐거웠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대할 때면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에만 매달려 온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뜻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안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당신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것만큼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일은 없다. 성과가 저하되기 시작할 무렵 당신은 삶 속에서 에너지와 원동력을 찾았어야 했지만, 오히려 일 속에서 그것들을 찾아내려 했다. 일과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성공시키는 비밀은 ‘설렘’이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설렘을 가진다면 그건 성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고, 설렘이 없다면 성공하기 힘든 프로그램이다.”(송창의, 2011)

홍: 제가 책을 두 번(웃음) 숙독을 했습니다. 처음에 책 나왔을 때 읽고, 이번에 인터뷰하면서 읽었는데 두 번째 읽으면서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송: 아휴…….

홍: 정말요. 아! 이게 결국 삶하고 일하고 뗄 수 없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깐 어떻게 보면 이제 저도 외람되지만 나이가 좀 들어서 되돌아보면 사실 제가 얘기하는 PD의 세 가지 덕목인 창의성, 열정, 관계라는 것이 결국 다른 일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해요. 예전에 어떤 공군 장교들한테도 얘기를 했더니 하물며 군인들도 이게 뭐 자기네들하고도 관계가 있다고 하더군요. 꼭 PD의 얘기가 아니라는 얘길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어떻게 보면 이게 굉장히 원론적인 얘기잖아요. 그래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유효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철학은 삶에 닿아있다. 그는 신비롭게도 삶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답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단순한 장면과 현상에 그치지 않고 메시지와 콘텐츠가 역동적으로 너울거리는 아이디어의 보고가 된다. 먼저 삶을 사랑하라. 내 삶을 이루고 있는 사소한 것들에 눈길을 주라. 그러면 창의와 열정은 저절로 찾아온다. 자기 분야에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을 사랑해야 한다. 스스로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창의성과 열정을 발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송창의, 2011)

그가 순탄한 길만을 걸은 것은 아니다. 2000년 5월 순수하게 프로그램 연출만을 하고 싶어서 MBC 예능국 부국장직을 그만두고, 조이엔터테인먼트 프로덕션 공동대표로 <세친구>를 계속 연출했다. 말이 공동대표지 그는 회사운영이나 이런 거 아무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쓰고 연출에 몰두했다. 경영을 맡은 또 다른 공동 대표가 영화제작을 했다가 잘 안 되어 회사 문을 닫고 1년을 쉬었다고 한다. 지상파에 있다가 나온 PD들 특히, 회사를 운영하는 PD들이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그는 MBC를 나왔을까?

▲ 홍경수 교수 ⓒ강의정
송: 부국장 다음에 국장이잖아요. 국장이면 관리직으로 올라가는 거라 그땐 철이 없어서 관리직을 맡기 전에 빨리 그만두자고 생각했죠. (웃음)  나가서 연출PD를 더 해보자 사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나왔어요. 그래서 프로덕션을 한 4년 정도 하다가 CJ에서 tvN 개국한다고 그때 제안이 와서 온 거죠.

홍: 국장을 하더라도 계속 프로듀싱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송: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사실은 제가 tvN 와서 한 역할도 국장 역할을 한 거였거든요. 그때 그 하기 싫었던 역할을 여기 와서 한 건데, 당시에는 그런 게 하기 싫더라고요. 내가 직접 현장에서 연출하고 싶은 욕심에 나온 거죠.

홍: 그럼 그 시기에 좀 힘드셨겠네요. (웃음)

송: 그렇죠. 힘들었죠. (웃음) 온실에서 자라던 놈이 험한 세상에 나와서 고생 좀 했죠.

홍: 지상파 PD들이 tvN 쪽으로 많이 왔잖아요. 참 섭외가 쉽지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송: 제가 직접 섭외한 건 아니고요. 여기 인사팀과 헤드헌터 쪽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그 다음에 저희들이 만나보고 그랬어요. 사실은 그 친구들도 오기 싫으면 안 오는 거죠. 본인들의 욕구가 더 많았던 것이고 우리가 오라고 해서 오고 그러지는 않죠. 본인들이 다 저울질을 한거죠.

“tvN 초기 선정성으로 존재감 부각, 바보 같은 생각”

2010년 이후 한국 방송계의 큰 변화 중 한 가지는 신진 PD들이 지상파를 떠나 종합편성채널이나 케이블 PP로 옮긴 사건이다. tvN에는 <1박 2일>의 이명한, 나영석 PD,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 PD가 이적해 와 <꽃보다 할배>, <코미디 빅리그>, <응답하라 1997> 등으로 크게 선전하고 있다. tvN의 부대표로서 tvN의 콘텐츠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송: 사실 초창기에는 굉장히 논란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이 거치고 케이블 초기이기 때문에 뭐 선정성 논란이라든지 이런 게 많았어요. 그런데 한 2년 정도 학습을 거쳤어요. 이게 아무리 케이블이라지만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지상파나 케이블이나 다 같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2005년 2006년 이때만 하더라도 사실 케이블은 존재감도 없었고 그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면 오로지 선정성 뭐 이런 거 밖에 없었어요.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그게 그래서 한 2년 정도 학습을 거쳐서 그 다음부터는…….

그전에는 tvN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19세 미만 관람불가(이하 19금) 였어요. 그런데 이제 한 2년 정도 지나서 그 학습을 거친 다음에는 19금을 안 했죠. 최근에는 SNL코리아를 제외하곤 모두 15세로 정리했는데 지금은 크게 장단점을 평하기보단 시청자조사를 하면 ‘새롭다’ ‘흥미롭다’ ‘젊다’ 이런 얘기를 듣죠. 그런데 시청자들 공히, 좀 반대편의 얘기로는 공감에 대한 불만 이런 게 좀 있어요. (이제는) 쉽게 얘기해서 <꽃보다 할배> 와 같이 새롭기도 하지만 공감도 주는 프로그램 이런 이미지로 포지셔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려고 애를 쓰죠.

▲ 송창의 부대표 ⓒ강의정
그의 말대로 tvN은 2006년 개국 초창기에 후발 PP로서 노이즈마케팅의 일환으로 <리얼 스토리 묘>, <스캔들> 등의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선정성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논란이 된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2008년 이후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족채널을 지향하며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도 편성했다. <백지연의 끝장토론>이나, <대학생 토론배틀>, <여의도 텔레토비> 등 정치풍자 코미디까지 시도했다. 뉴스만 없는 종합편성채널 분위기를 띠었다. 최근 tvN은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를 폐지하는 등 ‘시사교양 옷을 벗고 예능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발표했다(일간스포츠, 2013년 8월 13일자). 종합편성채널의 시청률이 점점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tvN의 채널 포지셔닝에 대해 물었다.

송 : CJ E&M에 있는 채널들은 이미 그런 고민을 오래 전부터 했죠. 그게 케이블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전략이기도 하고요. 지상파는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같이 보는 채널이라면 tvN은 ‘2049’ 타깃이죠. 그래서 시청률조사를 할 때 19세 이하는 보지도 않고 50세 이상은 아예 보지도 않아요. 그러니깐 2049에 맞는 프로그램으로만 간다든가, 올리브 아니면 온스타일 이러면 ‘여자’, ‘2029’ 하여튼 그렇게 딱딱 나눠서 포커싱을 해서 채널 전략을 짭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왔어요. 사실 종편들은 고민이 많을 거예요. 처음에는 제 2의 지상파를 선언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젊은 층엔 잘 들어가지도 않고 그러다보니깐 자꾸 이제 50대 이상에 포커싱을 한 프로그램만 양산을 하고, 그러다보니 광고가 안 붙죠. 그럼 돈 나올 구석이 없잖아요. 광고주와 자기네들이 포커싱을 하고 있는 타깃 오디언스와의 괴리가 문제가 될 거예요. 어쨌든 저희는 이미 오래전부터 채널에 대한 타깃 전략을 세웠기 때문에 큰 고민은 없어요.

홍: MBC에서 일하실 때와 지금, PD로서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으신가요?

송 : 그런데 어떤 PD도 프로그램을 하면서 내가 이걸 가지고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 거예요.(웃음) 그냥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러다 보면 그게 이제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 역할도 하고 그러지 뭐 정치하듯이 내가 이걸 해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한다고 생각은 안 할 거예요. 근데 나이가 좀 들어서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그러다보면 ‘내가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 자랐다’는 둥 보통 많은 후배들 중엔 ‘나한테 정말 영향을 받아서 PD가 됐다’는 둥 이런 친구들이 막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그런 얘기를 듣고 이렇게 하면은 좀 아차 싶죠. 내가 그냥 쉽게 생각하고 했던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어쨌든 간에 그걸 보고 자란 세대들한테는 이렇게 영향을 끼쳤구나. 이 생각을 하면 PD가 프로그램을 하는 게 정말 막 해선 안 되겠다. 그러니깐 나중에 철이 들어가지고 후배들한테 이런 얘기를 해줘요. 너희도 시청률 물론 중요하지만 일말의 책임감은 꼭 갖고 해라 그런 얘기는 제가 지금도 해요. (웃음)

▲ 송창의 부대표 ⓒ강의정
분명한 것은 그가 MBC PD로서 느꼈었을 사회적 책임감과 tvN의 후배들이 느끼게 될 일말의 책임감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수용자의 크기에 따른 차이는 아닐 것이다. 제작체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인 조직문화가 그 차이를 만든다.

홍: 보시기에 tvN 제작진들의 조직문화의 특성이 있나요?

송: 아직은 그게 조금 부족한 부분이죠. 어떤 조직 문화라는 게 한두 해에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 동안에 PD들이 어떻게 보면 여기저기서 모인 친구들이기 때문에 어떤 문화라고 설명하기엔 좀 아직도 이르죠. 아직도 이른데 지금 계속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고 지상파나 이쪽하고는 다르긴 달라요. 그러니까 물론 PD니까 프로그램 열심히 하지만 프로그램 외에도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나의 산업, 산업의 일원 미디어 산업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좀..... 지상파 PD들, 저도 거기 있어봤지만 사실은 굉장히 오랫동안 갑으로 살아서(웃음) 그리고 거긴 브랜드가 재산이니깐 그런 마케팅 개념이라든지 글로벌 개념이라든지 사실 그런 게 없거든요. 근데 여기는 기업이고 하다보니깐 어떤 마케팅 홍보 개념 글로벌개념 또 우리가 만드는 ‘360도’ 라고 해서 콘텐츠를 갖고 어떻게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360도 멀티유즈’ 그런 개념, 그런 것들이 타 방송사와 이쪽 PD들이 갖고 있는 마인드의 차이죠.

홍: 그럼 혹시 기획 할 때 홍보, 마케팅 등에서도 참여하는지

송: 그럼요, 여기는 그런 게 철저해요. 그러니깐 지상파는 기획할 때 그냥 PD들끼리만 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PD가 기획을 하되, 출발점에서 공유를 하죠. 마케팅, 돈 관리하는 예산 부서에서 말이죠. 아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갈 것이고 이걸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스타트 라인에서부터 같이 뛰죠. PD가 기획을 하고 어느 정도 셋팅이 되면 공유를 다 시켜서 그때부터 같이 출발합니다.

홍: (마케팅, 홍보 등) 그런 분들의 의견도 반영된다는 거죠?

송: 그럼요. 그러면 이제 예를 들어서 이런 아이디어가 있다 그러면 영업 쪽에서 아이디어는 좋은데 광고주한테 엄청난 컴플레인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게 오면 좀 그런 부분을 다듬기도 하고 그렇죠.

홍: 그리고 이제 해외수출이라든지 이런 부분도 얘기해둬서 뭐 예를 들면 어느 나라에 가자 이런 것도 다 그렇겠네요

송: 그렇죠.

홍: 이게 좀 크게 다를 거 같아요.

송: 네 다르죠. 지상파는 지금은 모르지만 광고만 팔아도 1년에 수익이 몇 백억 씩 나는 데니깐 근데 여기는 광고 단가가 지상파의 7분의 1, 8분의 1 밖에 안 되니깐 광고만 보고 있다가는 안 되니깐 이런 마케팅이라든지 또 다른 수익구조를 만들어내야 되겠죠.

홍: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직원 한 분이 CJ 올 때마다 계속 사람들이 많이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리더십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서 되게 놀라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오신지 이제 7년 정도 되셔서 지금까지 계속 본부장 또는 부대표까지 하고 계신데, 좀 뻔하긴 한데. 리더십을 유지한 비결은?

송: (웃음) 리더가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리더에 관해서 책도 많은데, 리더가 할 일이 한두 가지겠어요. 뭐 100개도 넘죠. 그 중에 가장 제가 생각하기에 중요한건 ‘PD는 전문가를 묶는 전문가다’라는거예요. PD로만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일에서의 리더를 하더라도 저는 이 개념은 꼭 갖고 가고 싶은 건데 후배들에게 항상 ‘기공사가 돼야 한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기를 공급하는 사람, 그러니깐 그 친구들이 젊다는 것은 열정은 충만하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항상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고 잘못 할 수도 있고 실수 할 수도 있고 사실은 그때마다 항상 좋은 기를 불어 넣어 주어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성취감을 갖게 하고, 쉽게 얘기해서 신바람을 불러일으켜 줘야 해요. 특히나 콘텐츠업계는 결국 신바람으로 하는 데거든요. 무슨 힘을 써서 노동으로 하는 데도 아니고 10억원을 주면 시청률이 뭐 100%가 되고 이런 데도 아니잖아요. 돈 100만원을 가지고도 10억원의 수익을 내는 것보다 시청률이 더 잘나올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결국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그 바탕을 제공하는 게 이쪽 리더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항상 그랬지만 이쪽에 다른 리더들이 PD들한테 뭘 해줘야 되겠느냐? 뭘 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건 출근할 때 즐거운 직장 그것만 만들어줘도 된다. 뭐 돈을 보너스를 주고 월급을 더 주고 그게 아니라 그냥 회사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막말로 ‘너 퇴근해라’ 그래도 ‘아 나 조금만 더 있을래요’ 이런 게 중요한 거지 뭘 다른 거 가지고 괜히 엄한데 돈을 쓸 필요가 없고 그냥 이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어쨌든 여기와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런 생각으로 우리 애들하고 후배들하고 일을 해오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홍: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여의도 텔레토비나 최일구 앵커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그런 것들은 어떻게 봐야 될까요?

송: (웃음) 그거는 뭐 노코멘트로 하죠. 그건 뭐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 거니깐......(웃음)

홍: 어떤 그때 무슨 마찰 같은 건 없으셨어요?

송: 네?

홍: 마찰 예를 들면 그걸 대표님의 결정으로 하신건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 촬영 중인 송창의 부대표(왼쪽)와 홍경수 교수. ⓒ강의정

더 이상 묻기 곤란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쳤다.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였고, 그는 성실하게 자신의 PD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속한 CJ의 오너인 이재현 회장이 비자금 조성, 조세포탈,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되고, tvN 채널에서 정치풍자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또한 ‘CJ는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 라는 캠페인 광고를 한동안 방송했다. 이 광고로 인한 광고수입 손실액이 100억원을 넘는다는 추정도 나왔다. 이러한 현상들은 정치적인 영향일까? 아니면 자본의 영향일까? 이러한 사회적 환경들이 콘텐츠에 영향을 미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설렘’에 영향을 줄 것 같은 불안함이 일었다.

송창의 PD가 인터뷰 내내 주장한 설렘이 바탕이 되고 창의와 열정 관계로 이어지는 연출론이 온전히 순수하게 지켜지리라 희망하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가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하수상한 시절’과 자본의 ‘급변하는 리더십’이라는 환경에 딱 맞는 만큼의 모양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7년 간 만만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견지해 온 그이기에 그가 만든 콘텐츠를 기대하는 것은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미디어에 걸맞은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뽀뽀뽀>의 스튜디오가 넓어지자 프로그램을 확 뜯어 출연자들의 동선을 소풍가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나, <토요일 토요일 밤에> ‘사랑과 평화’ 편에서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를 마지막 무대에 세운 것, <김대중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에 쇼 조명을 하고 드라마적 영상을 만든 것, 6㎜ 카메라로 드라마를 찍은 것이나, 스튜디오 대신 택시 속에서 대화하는 토크쇼 등 그는 천부적으로 미디어의 속성을 최대한 활용한 매클루언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전남 강진의 칠량옹기마을에 들렀다. 조선시대 전국에 옹기를 만들어 공급했던 큰 마을은 플라스틱이 도입되며 점점 줄어들어 결국 한 집만 빼놓고는 아무도 옹기를 빚지 않게 되었다. 평생 옹기를 빚어온 정윤석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옹기장으로 제자인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이제 그 마을에는 옹기를 빚는 집이 늘어나고 공장도 생겨났다. 송창의 PD를 인터뷰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이 옹기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동안 저질 논란으로 지탄을 받아온 예능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대중을 위로해 온 것도 사실이다.  

대중의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송창의 PD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옹기를 40여년 가까이 빚어왔다면(그것도 성공적으로), 그를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하지 않을 법도 없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대중문화의 현장에서 제작한다는 것은 순수예술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앞뒤를 살피고 공을 들여야 하는 까닭이다. 그가 예능 프로그램 만들기를 그만두더라도 예능 프로그램의 명맥이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롭고 참신하며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지금까지처럼 빈도 높게 만들어질지는 의문이다. 탁월한 PD로서의 그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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