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교과서는 신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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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역사교과서는 신화인가
[시론] 정운현 언론인
  • 정운현 언론인
  • 승인 2013.09.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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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으로 채워져 온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기록 자체를 날조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는 역사를 ‘팩션(faction)소설’ 정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다름 아닌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 얘기다.

지난해에 이같은 우려가 제기될 때만 해도 설마 싶었다. 명색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인데 그런 엉터리 교과서를 만들까 싶었다. 그런데 최근 이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의 최종검정을 통과했다.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된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교과서의 집필진인 뉴라이트 인사들이 그들의 역사관을 집중 주입했다는 점이다. 뉴라이트 진영의 역사관은 보수-친일-제국주의 미화가 핵심이다. 말하자면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친일파 척결 노력은 최소화하거나 무시하면서 일제 지배를 미화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비중있게 다루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 보수학자들이 쓴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또 일제의 36년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배상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해결됐다고 써 마치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을 대변하듯 했다. 게다가 제주4·3사건은 3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양민들의 피해를 애써 무시했으며, 5·16쿠데타는 쿠데타 본질보다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보선과 육사생도들의 지지행진과 미국의 인정을 더 길게 강조했다. 한 마디로 본말전도다.

최근세사에서도 이와 비슷하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진압군이 투입되면서 시위대와 충돌이 일어났다고 썼다.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명령으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났음에도 발포 사실은 쏙 뺐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과 행정수도 특별법이 위헌판결 받은 사실은 필요이상으로 강조하면서도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 등 실정(失政)은 아예 눈감아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의 아이콘인 ‘이승만·박정희 미화’는 차라리 자연스럽다고나 할까.

일제 때 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어용단체가 있었다. 조선 역사를 폄훼, 왜곡, 말살시켜 식민사관을 뿌리내리는 것이 주임무였는데 주로 고대사 왜곡이 전문이었다. 고조선의 영역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반도사관’과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三國)사관’이 대표적인 식민사관이다.

중국땅에서 엄연히 고조선 유물이 발굴되고 있음에도 ‘반도사관’ 때문에 우리 고대사학계(주로 강단사학계)는 찍소리도 못하고 있다. 되레 중국에 ‘동북공정’의 빌미를 주고 있다. 또 ‘3국사관’ 때문에 가야사는 여태 복원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심각한 역사훼손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그게 그들만의 책임일까.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또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편찬하지 않은 기성세대의 잘못이 더 크지 않을까. 조선인 위안부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서 평화와 여성 인권을 얘기할 순 없듯이 박정희의 5·16쿠데타를 미화하면서 민주주의를 논할 순 없는 노릇이다. 

▲ 정운현 언론인
경남 하동 읍내리 섬진강가에는 소설가 이병주의 문학비가 서 있다. 거기에는 이병주의 소설 <산하> 마지막 장에 실린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 시대의 역사는 태양빛 아래서 사실대로 씌어져야 한다. 반면 영웅호걸들의 신화나 전설은 은은한 달빛 아래서 적절히 각색되고 과장되고 윤색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신화나 전설은 항간에 구전(口傳)되는 얘깃거리에 불과하다. 뉴라이트는 우리 역사를 한낱 신화나 전설로 만들 참인가. 이는 역사 앞에 또 하나의 죄를 짓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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