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미달 종편 ‘솎아내기’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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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미달 종편 ‘솎아내기’ 불가능
지상파보다 엄격? 허울만 남은 과락제도…심사위 구성이 관건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3.09.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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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승인 심사를 왜 하는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콘텐츠의 질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함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 눈높이가 지상파 방송 콘텐츠 수준에 맞춰져 있다면, 종편의 수준을 그만큼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종편 재승인 심사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 이하 방통위)가 지난 5일 기본계획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양문석 상임위원이 수차례 반복하며 강조한 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 등과 같은 편파와 왜곡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종편의 공정성과 품격의 제고를 위해선 적극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방통위 의뢰로 종편 재승인 심사기준안을 마련했던 연구반의 전문가들 역시 정부가 허가하는 언론 사업인 종편은 여느 산업처럼 사업자들 간의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내적 공정성을 구축할 필요가 있는 만큼 엄격한 심사 기준은 당연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방통위에서 의결한 기본계획은 일련의 주장과 지적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복감점 삭제로 과락 방지= 방통위가 이날 의결한 종편 재승인 기본계획은 일견 지상파 재허가 기준보다 엄격한 듯 보인다.

방통위는 9개 심사항목에 대해 총점 1000점을 부여한 뒤 650점을 넘을 경우 재승인을 하고, 650점 미만이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의결하도록 했다. 총점에서 650점을 획득하더라도 개별 항목에서 배점의 40%를 못 받으면 ‘조건부 재승인’을 할 수 있다.

특히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230점)과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160점) 등을 핵심 심사항목으로 설정하고, 이 두 항목의 평가점수가 배점의 50%에 미달하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가능케 하는 과락제를 도입했다.

이를 두고 김용일 방통위 방송지원정책과장은 “종편의 공적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종편의 대주주인 신문들도 “후발 주자이자 유료방송 사업자인 종편에 지상파 재허가보다도 과도하게 높은 심사 기준을 적용한 것”(9월 6일 <동아일보> 8면)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핵심 심사항목의 50% 과락 기준이 과연 방통위의 설명처럼, 종편의 볼멘소리처럼 엄격한, 혹은 과도한 심사를 부를까.

▲ 지난 8월 21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를 이경재 위원장이 주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언론·시민단체와 방송 전문가들의 답변은 “아니다”에 모아져 있다. 일례로 핵심 심사항목 가운데 하나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 항목에서 종편은 최소 115점(배점의 50%)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해당 항목의 세부 심사항목은 ‘공정책임·공정성·공익성 실현(실적 및 계획)’(140점), ‘시청자 권익보호(실적 및 계획)’(70점), ‘신청법인의 적정성’(20점), ‘관련 법령 위반 사례’(감점) 등이다.

즉,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제재에 대한 감점을 해당 항목에서 하는 것인데, 기본계획은 종편이 본격적으로 제재를 받기 시작한 2012년은 핵심 심사항목이 아닌 ‘방송평가위원회 방송평가’(350점)항목에서 감점을 하도록 했다. 중복감점을 단일감점으로 축소해 과락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려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2013년 7월 31일 기준)까지 종편들이 방심위로부터 받은 제재에 따른 벌점은 TV조선 35점, JTBC 41점, 채널A 52점 등이지만, 2012년을 제외하면 각각 절반 수준에 그친다. 핵심 심사항목의 과락기준에서 그만큼 안전지대를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당초 연구반에서 마련한 안은 ‘관련법령 준수’라는 또 다른 심사항목에서도 방심위 제재를 감점 요인으로 두며 사실상 삼중감점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심사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50% 과락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또 다른 핵심 심사항목인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부 심사항목인 ‘기획·편성의 적절성’(70점)과 ‘수급의 적절성’(50점), ‘제작·협력의 적절성’(40점) 등에 대해 모두 ‘실적과 계획’을 함께 평가하도록 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2010년 12월 당시 방통위는 종편이 서류에 적은 장밋빛 계획을 높이 평가하며 승인을 했지만, 결국 승인조건 이행 실적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지난 8월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밖에도 연구반은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현 가능성 및 시청자 권익보호’ 항목의 세부 심사항목인 ‘신청법인의 적정성’과 관련해 주요주주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조직 및 인력운영의 적정성’ 항목의 세부 심사항목으로 ‘자금 조달 및 운영’과 ‘사업성 분석’ 등의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지만 방통위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편 재승인 기본계획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종편 100% 재승인 티켓”(9월 5일 유승희 민주당 의원), “종편 재승인 맞춤안”(9월 6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의 우려를 쏟아내고 있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종편 심사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됐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9일 “대부분의 심사항목이 비계량으로 설정돼 심사위원의 주관적인 평가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심사위원회가 심사항목, 세부 시사항목과 그 배점평가방법 등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중립적·객관적인 심사를 할 수 있는 심사위원을 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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