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교과서, 보도가치 제로?
상태바
역사 왜곡 교과서, 보도가치 제로?
[보도비평] 日 비판하던 MBC,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보도 전무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3.09.10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아시아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일본의 역사 왜곡 발언이 나올 때마다 방송·언론들은 반성 없는 일본의 오만을 분통 섞인 목소리로 질타한다. 위안부 등 피해자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인 우경화”(8월 15일 KBS 1TV <뉴스9>)이며 “과거사에 대한 태도의 역주행”(8월 15일 MBC <뉴스데스크>)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8월 2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였던 곳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을 때도 KBS와 MBC는 “일본과 대비되는 모습”이라며 우경화로만 치닫는 일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일과 독재의 역사에 대한 왜곡 앞에서 이들 언론의 준엄한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30일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 주도로 만들어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 최종 검정을 통과하면서 역사학계와 교육 현장, 그리고 시민사회가 들끓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관련 기술의 축소·왜곡뿐 아니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법원에서도 친일을 인정한 기업인들을 ‘민족자본가’로 미화하며, <동아일보> 창간 사주 김성수의 친일 경력을 항일로 둔갑시키는 등의 왜곡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 9월 6일 KBS 1TV <뉴스9> 20번째 리포트 ⓒKBS
또 교학사 교과서는 보수 진영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우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영웅”이라고 표현하고, 헌정체제를 유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2년 유신 개헌 역시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미화하는 등 ‘독재 합리화’에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는 과정에서 위키백과 등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련의 왜곡과 미화, 그리고 표절 논란으로 점철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역사·시민단체와 학자들, 그리고 야당까지 나서 연일 기자회견을 열며 검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난 11일(8월 30일~9월 9일) 동안 MBC <뉴스데스크>는 관련 소식을 단 한 차례도 보도하지 않았다. 반면 해당 기간 동안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끝내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다 의원 등에 대한 소식은 무려 52개나 보도했다.

또 다른 공영방송인 KBS <뉴스9>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해당 기간 동안 이석기 의원 등과 관련해 50개의 리포트를 방송한 <뉴스9>는 교학사 교과서 왜곡 관련 소식을 지난 6일과 9일 두 차례 전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보도 순서도 방송 시작 후 30분을 넘긴 20번째와 23번째에 배치해 주요 뉴스 시간대를 비켜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학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논란을 처음으로 전한 지난 6일자 보도 ‘교학사 교과서, 교사들에 첫 공개…내용은?’에서 KBS는 왜곡과 미화의 지점들을 기자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짚는 대신, 함께 국편의 검정을 통과한 다른 교과서들과의 차이를 비교하는 데 그쳤다.

지난 9일 방송된 ‘교학사 교과서 오류 논란…사관 논쟁 비화?’는 교학사 교과서의 사실관계 오류 지점을 하나하나 지적해 사흘 전 보도와 비교할 때 일부 진전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놓고 진보와 보수 진영의 논쟁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정리, 친일과 독재 역사의 미화와 왜곡에 대한 문제를 사실관계 차원에서 짚기 보단,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이 정도로 결론냈을 뿐이다.

공영방송의 이 같은 보도 현실과 관련해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역사교과서 왜곡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해당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접한 학생들의 가치관·역사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라며 “공영방송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이는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 등) 박근혜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역사적 사실을 공영방송들이 보도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도의 시늉을 내고 있는 상황의 연장선”이라고 비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