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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이 만난 사람 3 - 윤호진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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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이번호에 주철환이 만난 사람은 연극연출가 윤호진 씨다.윤호진 씨(극단 에이콤 대표·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뮤지컬의 본고장이라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윤호진 씨는 연극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아가씨와 건달들’, ‘신의 아그네스’, ‘스타가 될꺼야’ 등 소위 히트치는 연극을 연출한 흥행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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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뮤지컬 프로듀서 윤호진을 만났다.올여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의 ‘명성황후’ 연출로 신문의 문화면에 그 이름이 꽤 여러 차례 올랐던 바로 그 사람이다. 연극 혹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편인 나에게도 국내에서의 ‘명성황후’ 공연과 그의 이전의 출세작인 ‘신의 아그네스’ 등을 관람한 기억이 뚜렷이 남아 있다. 그 문화적 욕구의 한곁에는 동갑내기 친구인 배우 윤석화와의 우정 을 확인하기 위해 눈도장 찍어야 한다는 동기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의례적인 외교언사 후에 대뜸 그 질문부터 했다.- 윤석화가 대단히 상처받은 느낌인데.-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다시피 그녀의 연기력은 나무랄 데가 없다. 노래도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기에는 그녀의 음역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것이다.
|contsmark3|그러면서 뉴욕공연이 끝난 후 윤석화가 축하전화를 걸어 주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 달의 세계연극제 ‘리어왕’ 공연까지 취소하고 홍콩으로 날아가버린 그녀가 평정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contsmark4|프로듀서는 생산자다. 작품이건 상품이건, 걸작이건 졸작이건, 방향성을 가졌건 가지지 않았건 그는 생산해 낸다. 교과과정에서 배운 생산의 3요소는 토지, 노동 그리고 자본이다. 프로듀서의 토지는 시간과 재능이다. 아무리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대도 재능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힘들다. 또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변변한 작품을 기대하기 어렵다. ‘명성황후’가 성공했다면 그 요인은 프로듀서, 배우, 스탭의 탁월한 재능, 긴 준비기간, 각고면려의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될 것이다.내가 보기에 프로듀서가 지닌, 혹은 지녀야 할 재능의 절반은 안목과 의욕이다. 안목이 없는 의욕과잉은 관객에게 고통을 준다. 의욕 없는 심미안은 냉소주의적 세계관을 강요할 위험이 다분하다.
|contsmark5|- 어느 잡지(‘신동아’ 97년 10월호)에 연출가라기보다 흥행사라는 평가가 있던데.- 흥행이란 사람을 모으는 힘이다. 주변에 사람(관객)이 없으면 못 견뎌했다. 그들을 때론 긴장시켰다가 다시 느슨하게 하고 풀었다가 다시 죄어 주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다.
|contsmark6|하기야 관객 없는 연극은 리허설일 뿐이다. 시청자 없는 tv는 또 얼마나 허전한가.
|contsmark7|- 야구로 말하면 뛰어난 선구안을 지닌 타자인데.- 나름대로 타고난 ‘후각’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흥행의 관건은 동시대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코드를 어떻게 읽어내느냐 하는 데 있다.- ‘명성황후’의 코드는 무엇인가.- 역사에 묻혀 곤히 잠자고 있던 것을 흔들어 깨워 한번 뒤집어보는 재미다. 그것에는 단지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만 읽히지 않는 우주적 보편성이 숨어 있다.- 창작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입성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한편에선 oecd 가입 운운하면서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우리 문화의 환경여건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발 닿는 곳마다 꽉 막혀 있었다. 이번에 못하면 앞으로 10년간 못하리라는 심정으로 몰아쳤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고진감래인가.-12회 공연 전회 기립박수를 받았다. 뉴욕타임즈의 평가도 만족스러웠다. 뉴욕이나 런던의 기존 뮤지컬과 일대 일로 비교해 보아도 중상 정도는 되지 않았나 스스로 평가해 본다. 미비점을 꾸준히 보완한다면 충분히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contsmark8|‘신동아’에 실린 뉴욕타임즈의 평을 일부만 옮겨 보자.“1896년의 한국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어느 누구의 기준으로 봐서도 인상적이다(impressive). 음악은 오페라와 뮤지컬을 섞어놓은 듯하다. 특이하고 종종 위트가 넘치는 안무는 영어자막의 도움을 받아 매력적으로 대사를 대신한다. 조명(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금빛줄기), 무대(궁궐과 전형적인 미국식 범선), 의상(화려한 소재와 풍부한 색상)은 진정 장려한 것(real splender)이 얼마나 관객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연출 스타일은.- 양면성이 있다. 카리스마는 분명 있지만 배우들에게 면박이나 질책보다는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쪽이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배우의 예술이다. 인형처럼 만들어 주는 연출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자연스러움이 표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뉴욕 공연시 노 개런티설이 있던데.- 사실이다. 처음에 두 가지 경우를 고지했다. 스폰서가 확실하면 유급, 그렇지 않을 경우는 무급이다. 그랬더니 두 사람이 빠지겠다고 의사를 표명했다. 가족생계가 막연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가 위로해 주었다. 나머지는 돈이 없어도 행복한 케이스였다. 우리는 주머니가 빈 만큼 자부심으로 가득찼다. 명분이 실리를 이겼다고나 할까.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재복은 없어도 인복은 있는 편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뉴욕공연이 그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영상매체에도 관심이 있나.- 브로드웨이에서도 일주일에 영화 하나 연극 하나씩 꼭 보았다. 지금도 tv의 주말의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어릴 때 버트 랭카스터가 나왔던 ‘엘머 갠트리’(elmer gantry)는 기차까지 놓쳐 가면서 보았을 정도이다.- 이윤택은 영화감독까지 한다는데.- 에너지가 많으니까. (웃음) 그러나 조금 걱정이 된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위험한 순간이 닥칠 수 있다. 잘 되길 바란다. 나 역시 다음 준비할 최인호 원작의 ‘몽유도원도’를 영화로도 한번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충동을 가끔 느끼곤 한다. 수평선에 한 척의 배가 떠있고 그 위로 해가 떨어지는 마지막 낙조 장면은 연극으로나 영화로나 다 감동적일 것 같지 않은가.- 텔레비전 pd들에게도 한 마디.- 그들에게 시간을 주어라. 재능은 불꽃같은데 쉽게 타버리는 게 안타깝다.- 대학(단국대 연극영화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자들을 뽑을 때 반드시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진실하게 이야기하도록 유도한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는 진지한 고백을 토해내기 어렵기 때문에(연출가답게) 분위기 있는 조명- 때로는 촛불 하나로 - 등 섬세한 배려를 한다. ‘진실성’이 없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최근들어 연극배우들의 tv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데.- 무대배우만 배우인 것은 아니다. 다만 무대에서 출발한 이가 너무 오래 무대를 떠나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황폐해질 가능성은 있다. 연극은 커트의 예술이 아니다. 집중하기가 어려운 만큼 긴 호흡에서 가질 수 있는 쾌감도 크다. 연극은 일종의 규범이다. 그 규범 안에서 훈련 받은 사람은 개인주의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추석때 고향을 찾듯이 가끔 마음의 고향인 무대로 돌아와 스스로를 추스릴 수 있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빚에 대하여.- 나의 기본은 낙천이다. 뉴욕공연 때문에 8억의 빚이 생겼지만 앙코르공연으로 삼분의 이는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삼분의 일은 인생의 레일처럼 늘 깔아놓고 살 것이다.
|contsmark9|인터뷰는 끝났다.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제목은 정해졌다. ‘인생은 연출이다’. 그는 무대 안에서건 밖에서건 ‘연출’한다. 그 연출의 방향을 흐릿하게나마 가늠하게 해주는 단서가 있다. 그의 프로덕션은 단순히 뮤지컬 컴퍼니가 아니라 뮤지컬 릴리전(종교)이라는 사실이다.‘명성황후’ 뉴욕공연을 전후하여 그는 걱정해주는 아내에게 이런 말로 위로했다고 한다."독립운동하는데 사사롭게 굴지 마시오.”|contsmar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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