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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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축제
  • 승인 1997.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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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도시에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겠지. 그리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나뭇잎들도 거의 사라지고, 황량한 콘크리트 빌딩 사이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닥치겠지. 사람들이 도리를 다 못하며 살아도 자연은 제 순리를 다하는구나. 그렇다. 이제 겨울이다.언뜻 이런 생각을 하며 내려다보는 비내리는 거리가 더욱 스산해보이는건 결코 계절탓만이 아니다.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한번 더 옷깃을 추스리게 만드는 건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워질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다.OECD까지 가입하며 승승장구하던 1만불 짜리 용은 허리를 꺾였다. TV화면과 신문지면은 연일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과연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추락할 것인지, 언제까지 수렁 속을 헤맬 지 가늠하기 어렵다. 앞으로 이 추운 겨울거리로 얼마나 많은 가장들이 내몰릴 지….오죽하면 조선시대 왕들을 ‘태정태세문단세’로 외우듯, 역대 대통령들을 순서대로 부르면 ‘이윤박최돌물깡’이 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생겼겠는가.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반성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총체적 난국을 자초한 정부정책 담당자와 대책없이 기업확장에만 몰두하다 금융권을 아사 직전으로 만든 기업가들은 당당하기만 하다.그러면서 국민의 사치니 달러푼돈 모으기 같은 선량한 국민들의 대오각성을 요구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저들끼리 축제를 벌여 흥청망청 다 탕진하고서는 잔치빚을 고스란히 국민에게만 전가시켜 놓고, 책임도 해결도 국민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그뿐만이 아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는 대통령과 결별했으니 야당이며 자신들만이 개혁과 경제재건을 할 수 있다고 외친다. 한쪽에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동의도 없이 통치형태를 바꾸겠다며 마음대로 권력분배 약속을 하고, 수없이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 대통령 흉내를 내기도 한다.모두가 당신들의 축제다. 그런 당신들만의 축제를 바라보며 국민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고 넓게 퍼져가고 있는 지는 알기나 하는지.당신들의 축제는 또 있다.이 땅의 방송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워지는 방송회관에 정작 주인이며 운영의 주체여야 할 현업 방송인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방송회관의 목적에는 분명히 방송문화 발전과 방송인의 자질향상이라고 밝혀놓고, 정작 방송인들의 운영참여는 원천봉쇄해버렸다. 당신들끼리 모여 방송단체가 회관 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던 기존 조항도 슬그머니 빼버리고, 돈 있으면 돈 내고 들어오라고 요구한다.언론회관(프레스센터)을 보라. 현업단체가 당연히 운영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어떻게 방송회관에 방송현업인이 빠질 수 있는가. 국경없는 경쟁에서 우리 방송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로그램의 질 아닌가. 프로그램의 질은 방송인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현업방송인들에 대한 투자, 아니 최소한의 배려조차 있었던가. 이제 우리들의 집인 방송회관이 생겼다면, 이제부터라도 현업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할 공간은 당연하고도 시급한 것이 아닌가.그렇게 방송회관, 방송사 사장단, 공보처 등 관계자들을 쫓아다니며 설득하고 호소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당사자들은 총회석상에서 방송현업인들의 절실한 요구에 대해 단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여전히 당신들의 축제고, 주인인 현업방송인들에겐 깊은 불신과 회의만 남겼다. 이제 이성적 판단과 대화, 합리적 대안제시란 방법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축제를 우리들의 축제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그날’ 우리들의 집을 힘으로 차지해 우리들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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