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칼럼 - 취미론
상태바
PD 칼럼 - 취미론
김래호<대전방송 편성국>
  • 승인 1997.11.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잔물결 하나 없어 거울같은 수면. 짙푸른 산그림자가 함몰된 대칭의 저수지. 웅크린 자세로 저만치의 찌를 응시하는 아버지. 그리고 빨간색 자전거와 그만한 길이의 대나무 낚시대. 빠끔하게 내다보는 텐트 밖의 풍경은 늘 낯익었었다.나의 아버지는 군단위의 우체국장이셨다. 모두들 어렵던 60년대였지만 비교적 풍족한 가정이었고, 더욱이 외아들인 나에게 쏟은 살가운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주말 밤낚시에는 꼭 데리고 다니셨다. 편지와 전보 그리고 소포를 전해주는 빨간색 자전거와 내달리던 오솔길…. 지금도 선연한 수채화로 간직하고 있다.프로그램 취재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으로 다양한 취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굳이 분류한다면 수집형이 으뜸인데 음반·고서·우표·비디오 테이프 등을 광적으로 모으는 형이다. 둘째로 활동형이다. 골프·등산·테니스·수영 등 주로 운동과 관련된 것들이지만 소집단별로 함께하는 ‘운동성’ 모임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정중동형이 있는데 자신만의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취미이다. 서양화든 한국화든 그림 그리기와 사진촬영 또한 글쓰기 등이 이 유형에 속할 것이다. 최근 가족끼리 문화유산을 주제별로 답사하는 모습도 보았는데 글쎄 취미로 볼 수 있을는지….작년 4월 백제문화 취재로 일본 큐슈지역에서 20여일 동안 머물렀다. 인터뷰를 요청한 한 향토사학자가 여담으로 일본의 시민운동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자신은 역사라는 무관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10여년 전에 시작한 작은 모임에서 ‘역사’를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미야자끼를 사랑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한국은 물론 중국까지 돌아보고 연구하는 동안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에는 시민운동 차원의 쓰레기 처리 문제모임·배 등 해운연구·가족생각 협의체 등 여러분야의 그룹활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통의 관심사나 문제를 여럿이 함께 생각하고 연구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기록성과 전문성이 뛰어난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였다.흔히들 프로듀서는 기록에 약하다는 말을 듣는다. 매체의 특성상 딱히 남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소홀히 지내는 면도 적지않다. 출연자나 섭외단체 연락처 정도나 수첩에 남을 뿐 프로그램 제작과정조차 밤새운 날들처럼 잊혀지는 것이다. 나아가 한 방송사의 초기 편성표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불멸의 작품으로 방송사에 오르내리는 프로그램의 대본도 구하기 힘든 형편이다. 물론 최근에는 방송전문 잡지나 회보가 다수 발행되고 있지만 개별성은 그만그만인 듯하다. 이런 면에서 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드라마연구 모임이나 통일·환경세미나 등은 공시성과 통시성을 충족시키는 중요한 작업이다.아무튼 취미는 십인십색이다. 때문에 문화에 상위의 문화가 없는 것처럼 취미에 고급이나 저급한 취미는 없다. 그저 그 공간에 있으면 흡족한 것이 취미일 것이다. 대개 프로듀서들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취미가 많은 것 같다. 가까운 친지 결혼식에 차리고 나설 양복 한 벌 변변치 않듯이…. 때로는 일하는 것이 취미라는 소리를 듣는다. 좀더 나은 ‘꺼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애태우고, 귀동냥에 나서 종당에는 연출대에 앉으면 행복한 그것이 취미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들의 취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시청자들의 취미를 바꾸게 할 수도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한 고리로 취미를 묶어버릴 수도 있는 프로듀서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낚시를 즐겨하시던 아버지. 당시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엿보았던 아침세상을 사랑했고 즐겼다. 그토록 확연하고 명확하게 기억에 남도록 프로듀서의 일취미를 가꿀 수는 없을까?
|contsmark1||contsmark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