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우리 방송 해도너무한다 10 … FM 음악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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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채널은 언어의 하수도인가
‘말’의 ‘양’보다 ‘말’의 ‘질’이 문제

|contsmark0|텔레비전의 출현 이후 라디오는 끊임없는 불안과 신경증에 시달려왔다. 강력한 영상매체의 위력 앞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위기감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많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위기’앞에서 라디오종사자들이 결국 선택해야 했던 것은 생존을 위한 ‘변화’였다. 이 변화를 위한 노력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짙은 불안감의 그늘 때문에 자주 혼돈되고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를 보이고 있다.요즘 fm방송이 수시로 도마 위에 올려지고 있다. 이유는 음악보다는 말이 너무 많아 프로그램들이 시끄럽고 내용 없이 어수선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시끄럽다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차치하더라도 과연 fm에서 음악보다 말이 많아서는 안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봄직하다. fm(frequency modulation-주파수변조)은 소리를 전파에 실어보내는 한 방법의 기술적 특성이지 음악채널을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다. 따라서 fm에서 말을 많이 내보냈다고 해서 송구스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fm이 음악채널과 동의어처럼 인식되어진 것은 1966년 우리 나라 최초의 fm방송이었던 서울fm방송을 인수한 동양방송(tbc)에 대해 발행한 당시 체신부 무선국 허가면허장의 “fm방송은 음악과 스포츠에 한한다”라는 단서조항이 족쇄처럼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kbs의 강현국 pd는 그의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90년 이후에 출현한 fm채널들 중 다수(교통, 평화, 불교방송…)는 음악 외에 뉴스와 정보도 일정 비율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fm에서 말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말이 어떻게 많아졌는가 그리고 말과 음악 비율의 역전이 라디오 ‘변화’의 적절한 외양인가가 문제가 된다고 하겠다.지금 fm라디오에서 쏟아지는 ‘말’들은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역설적인 본보기이다. 타자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말을 하고있다면 그것이 곧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밀하고도 꿈꾸는 매체로서의 fm의 미덕과 사색과 상상을 가능케 하던 라디오적 언어의 부드러운 울림은 현란하고 숨거친 텔레비전 스타의 입 아래에 점령된 지 오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이라는fm채널3개(kbs-2, mbc, sbs)진행자의 면면을 한 번 들여다보면 이 들의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 얼마나 ‘신탁통치’ 당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이른바 텔레비전에서 한 번 뜨기 전에는 라디오 dj 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아주 극소수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라디오에 입문하기 위해선 우선 텔레비전을 통해 얼굴을 알려야한다. 영상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 청취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면 그 측은한 의도는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나 그 종국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혹독한 자기계발 없이 편한대로 의존하고 ‘빚’을 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요즘 누구나 절감하고 있지 않은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매체 특성상 준별될 필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 매체의 진행자 성격과 역할 역시 각기 다른 제 자리가 있는 것이다.텔레비전 연기자나 비디오형 댄스가수들, 개그맨들이 절대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을 수 없다는 법은 없다. 단지 그 배후에 있는 라디오 종사자들의 소심함과 용기 없음을 문제삼으려 할 뿐이다. 기본적인 언어훈련도 되어있지 않고 그럴 여유도 없고 그러고 싶어하지도 않는 연예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이크 앞에서 수많은 청취자들과 보다 깊고 사적인 교감을 하겠다고 무게잡고 앉아있는 것 자체부터가 어딘가 모순된 풍경 아닌가. 결국 그들이 진행 밑천으로 삼게 되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구축한 그들 자신의 이미지-인격과 무관한-와 그 의도가 불순한(?)한 유행어들이다. 이것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수다와 시끄러움을 만들어내고 프로듀서는 이것을 프로그램의 활기라고 생각하면서 그야말로 뜬다고 생각하면서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그 소란함 속에서 자신의 매체생존과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잊고있거나 방기하고 있지 않은지.현재 청소년대상 프로그램을 포함 주요fm채널의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적 천민화는 너무도 방대하여 일일이 열거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방송용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잡담, 사담, 인격무시, 말장난, 어법과 관계없는 유행어, 비어, 은어남발 등 방송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고도 참담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속한 언어는 천박한 사고를 낳으며 문화와 정신의 불모화로 이어진다. fm방송의 주 청취자군인 청소년층에게 이러한 효과는 보다 직접적이고 악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방송이 반드시 교훈적이고 학습적일 필요는 없으나 유해한 것이 될 필요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fm채널이 거대한 언어적 하수도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라디오의 또다른 위기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텔레비전의 주변부 매체로서 그 악덕만을 끊임없이 하달 유통시키는 종속적이고 자기비하적인 자세를 벗어나지 못할 때 진실로 감당키 어려운 파국을 만나게 될 것이다.애정을 갖고 볼 때 fm프로그램에서의 ‘많은 말’을 둘러싼 문제는 일종의 변화에 따르는 진통으로 여겨질 수 있다. 라디오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fm프로그램에서 음악보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에는 확실히 환영할만한 부분도 있다. ‘바른말’이 많아진다면. 변화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텔레비전이미지의 손쉬운 오디오적 차용은 잘못 끼워진 첫 단추일 뿐이다. 영상에 대한 강박관념은 버려야 한다. 라디오 방송 특히 fm방송은 언어적 품위를 먼저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나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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