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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윤동혁(SBS 교양국)

|contsmark0|지금은 저명한 드라마 작가이지만 한 때 그 성공을 별로 보장받지 못했던 어느 다큐멘터리 작가의 말을 나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사람들에게 거울을 보여주면 대개 화를 내거나 얼굴을 돌려버린다”언론은 사회의 목탁이다… 거울이다….(방송)언론에 종사하는 우리는 거울인가. 시사고발프로그램을 하니까, 장애인 돕기 모금방송도 하니까, [달러를 모읍시다]도 하니까 대충 반쪽 거울 노릇은 하고 있는 것일까.우리는 언제 우리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북소리 높이 울릴 때였나. pd연합회 시상식장에서였는가. 봄 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였나…. 거울 앞에 조용히 앉아 화장을 다 지운 얼굴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면 외면하고 싶은 우리의 두 얼굴이 거울 속에 있다.얼마전 장애인복지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한잔 걸치는 자리에서 누군가 “방송에서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지키지 않는 재벌그룹들을 되게 조지던데 그거 참 잘 하더라”고 말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1989년 12월 국회 의결)에 의하면 상시근로자 3백 명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임직원 수의 2% 이상 장애인을 고용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니 삼성 같은 ‘재벌그룹’이 그것을 안 지키고 (치사하게) 0.5%나 0.6% 수준밖에 고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무슨 기준으로 흥분했을까. 그때 그는 거울을 돋보기처럼 사용하여 남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거울에 자신과 자신이 속한 회사도 비춰봤어야만 했다. 2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방송사라면 장애를 가진 40명 이상의 사원이 근무하고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우리가 지키지 않는 룰을 남에게만 강요하고 있으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환경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자리에 일회용 종이컵이 즐비하다. 1백퍼센트 수입펄프에 의존하는 종이컵은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 외화 없애고 쓰레기통 넘치게 만드는 그 종이컵을 방송사에서는 매일 얼마나 내버리고 있나.(참고 - sbs 교양국 1일 평균 5백20개 소비) 자기 책상이 있는 사람은 자기 컵을 사용해야 되지 않겠나.명함, 화장지… 어떤 재활용품은 일반 상품보다 가격이 더 비싸고 유통구조도 복잡하다. 그러나 멀리 내다보고 그것을 감수할 때 방송은 사람들의 맨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북한의 굶주리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할 때 산더미처럼 쌓이는 방송사 구내식당의 잔밥은 어처구니없다. 배가 덜 고프면 밥을 조금만 달라고 해서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 많이 남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특히 여자사원들) 풍조는 부끄럽고 나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만강 얼음장을 깨고 국경을 넘으며 오로지 쌀밥 한 그릇에 목숨을 건 우리 동포가 있지 않은가. 이 부분에 이르러 우리는 과연 통일을 갈망하고 있는가 자성하게 되며 책장에 꽂혀있는, pd연합회가 발간한 ‘통일·북한 핸드북’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나는 4년 전부터 [세계 구두쇠열전]을 한번 해보자고 기회 있을 때마다 기획안을 제출했었다. 이제 1달러가 1천4백원을 육박하는 시점에서 “한 번 해보라”는 말을 들으니 좀 김이 샌다. 그리고 밤낮없이 떠드는 절약이나 긴축 소리에는 화가 나기도 한다. 이 넌더리나는 냄비현상을 또 애국심이라고 분장시켜서 남도 속이고 나도 속아넘어가야 할 것인가.1년 내내 막노동까지 하며 푼돈을 모아 겨울방학에 배낭여행을 떠나려다 엉거주춤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때가 어느 땐데….”“떠나 버려!”입이 있는 자는 너도나도 달러를 물고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이제는 ‘해외’ 소리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럴 때 이 눈물겹고 배타적인 나라를 멀리서 한 번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우리는 “떠나 버려!”라고 말하면 결코 안되는 것일까.거울 앞에 앉아서 생각 좀 해야겠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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