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세상보기 첫번째 … 문화읽기 2 하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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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문화에서의 스타일과 정체성
이재현<문화비평가>

|contsmark0|하위문화(subculture)에 관해서는 딱딱한 이론적 정의를 통해서 접근하기보다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빠르고 낫다. 예컨대, 영화 ‘나쁜 영화’ ‘트레인 스포팅’ ‘증오’의 공통점은 청소년 하위문화를 다뤘다는 데 있다. 더 나누어서 말하자면, 청소년 하위문화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폭주족’ ‘삐끼족’ ‘또래패션’ ‘가출자’ ‘퇴학자’ 등의 ‘족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하위문화란 세대라는 틀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랑자 문화도 하위문화이고 동성애자들의 문화도 하위문화이다. 파고다 공원의 노인들 문화도 하위문화이고, 유원지나 등산로에서 춤추는 아줌마들 문화도 하위문화이다. 그런가 하면, 기원에서 온종일 바둑을 두는 중장년층 실업자 문화도 하위문화이다. 마찬가지로 고졸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의 문화, 고졸 생산직 남성노동자들의 문화도 하위문화라는 개념적 틀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문화 이론’ 내지 ‘문화 연구’에서 하위문화에 대한 관심은 주로 전후 영국의 노동자계급 출신의 청소년문화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했다. 청소년문화에 대한 관심이 실증사회학에서는 주로 일탈이나 비행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는 달리, 영국에서의 관심은 ‘스타일을 통한 문화적 저항’이었다. 즉, 영국의 문화연구자들에게는 전후 영국의 노동자계급 청소년들이 지배문화(dominanat culture)의 헤게모니에 대해 스타일을 통해 저항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나간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이론적 의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1950년대 영국에서는 도심 재개발 정책과 산업구조 재편과정에서 노동자계급 출신 젊은이들은 누구보다도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한때는 양육과 보호의 터전이었던 가정 안팎의 공간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동시에 젊은이들의 영토였던 동네 공터가 국가와 자본에 의해 더욱 속령화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생계 문제를 포함한 생활 양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 부모 세대의 삶의 양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새로이 주어진 하층 서비스 직종을 포함한 미숙련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길을 걸을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윤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들은 부모 세대의 전통적 청교도주의 문화와 전후 소비대중문화의 새로운 쾌락적 문화 사이의 갈등과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노동자계급 청소년 하위문화는 서로 다른 유별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다양한 하위문화 주체들의 문화들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모드족, 파카족, 스킨헤드족, 크롬비족, 래드족, 테디 보이, 히피족, 펑크족, 보위 컬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연구자들이 보기에 이들 청소년 하위문화 주체들은 부모문화 안에 있는 잠재해 있는 모순을 스타일을 통해 ‘마술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전후 영국 노동자계급의 이 모순적 상황, 즉 매스 미디어의 도래, 노동과 여가의 의미 변화, 가족 구성 변화와 학교 및 작업장에서 조직의 변화 등의 상황에서 바로 그 노동자계급 출신의 청소년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었고 이에 대한 문화적 대응으로서 다양한 ‘족’들의 하위문화가 출현한 것이다.이들 영국 노동자계급 청소년 하위문화는 결국 계급의식과 세대의식이 동시에 모순적으로 표현된 것이며, 아울러 당시 생존 위기의 상황에 대해 스타일을 통해 문화적 도전과 저항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다. 즉 이들 하위문화에서는 가정과 학교, 거리에서 기존의 규범과 윤리적 가치를 거스르는 스타일의 실천과 육체적 저항이 선택된 것이다. 이들은 노골적이고 공공연하게 일탈과 저항의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집단성과 결속력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다른 문화적 주체와 자신들을 스스로 구별짓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 하위문화 주체들은 자신의 문화적 스타일을 구성하는 데 있어 당시에 대중문화를 통해 상업적으로 제공된 상품들을 자신들의 의미와 목적에 맞게 적합하게 바꾸어 내면서 브리꼴라쥐(bricolage)해냈다. 이들 스타일의 주된 구성 요소는 패션과 음악이다. 예컨대, 모드(mod)족은 현란한 색의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하고 다니는 집단으로서 미국의 히피처럼 전통 사회에 반항하는 것이었는데, 문화연구자들은 이들을 “사회적 이동성이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을 상상적인 관계에서 확인하려는 시도이며 이들이 애용하는 은어 및 의식은 부모문화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는 반면에 옷과 음악은 돈 많은 소비자의 향락적 이미지를 취함으로써 신분상승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테디 보이(teddy boy)는 댄디한 에드워드 왕조 풍의 옷차림을 한 집단으로 범죄나 비행을 저지르는 젊은이 집단이었고, 스킨 헤드족은 기본적으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미래를 탐색하는 집단으로서 그들의 복장은 중산층 가치에 오염된 부모문화에 대한 저항과 아울러 노동자계급문화의 핵심적 가치인 청교도정신과 국수주의의 강조라는 식으로 이해되었다. 한편, 70년대 후반 펑크 음악의 유행도 하위문화와 관련해서 논의되었는데, 펑크 락은 펑크 족문화의 일부인 바, 펑크족 문화의 충격적 해프닝과 반도덕적 행위는 단지 펑크족의 무정부주의적인 세계관이나 도덕적 성향으로부터 빚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 당시 사회의 우울한 조건들, 즉 불황, 빈곤, 실업 등의 조건에 대해 펑크족의 문화적 반응으로서 이해되었다. 펑크 락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멤버인 ‘시드 비셔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 ‘시드와 낸시’에서 잘 묘사되고 있는 이들의 펑크 문화는 일자리도 미래도 주지 못하는 기성사회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표현이었고 이를 통해 이들은 자신을 타락한 자로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사회에 대한 공격과 좌절과 염려를 분명하고도 노골적이며 공공연하고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어졌다.그러나 현실은 문화연구자들이 청소년 하위문화에서 저항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려고 이론적으로 노력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즉 하위문화의 여러 일탈적 행위나 현상들이 상품 형식과 이데올로기 형식을 통해 주류 지배문화 안에, 예컨대 펑크족의 문화는 펑크 락과 펑크 스타일의 패션 형식으로 상품화되어 주류 대중문화에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또 이들의 사회적 일탈 행위들은 경찰, 사법권, 미디어 등의 기구에 의해 ‘컴 백 홈’의 구호 아래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병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영국의 하위문화‘론’도 하위문화 자체가 지녔다고 상정했던 ‘저항의 신화’에 대한 기대를 스스로 철회하기에 이른다.그렇다면 한국의 하위문화는 어떠한가. 한국 사회에서 하위문화를 논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배문화의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합력이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정치, 급속한 종속적 산업화 등의 역사적 경험은 한국 특유의 지리학적이고 인구학적인 조건과 결합하여 단 하나의 사회 문화적 목소리만이 사회를 지배하게끔 만들었다. 특히 교육제도와 징병제도의 전국민적 동원력은 유일한 형식의 통과제의만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지배문화의 헤게모니의 존립에 대해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 매스미디어 역시 이러한 정치 문화적 지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한국 사회 특유의 ‘냄비’적 속성을 더욱 강화시켜 왔다. 특정한 대형 사건이 벌어지면 단지 그때에만 호들갑을 떨 뿐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고 마는 바의 ‘냄비’적 행태는 한국 사회 지배문화의 강력한 통합력과는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일정한 사안에 관해 단지 모럴 매카시즘과 모럴 패닉만이 존재할 뿐이지, 그에 대한 다양하고도 다원화된 목소리들 사이의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토론과 대화의 관례는 부재했던 것이다. 그 결과 사회에 실재하는 다양한 하위문화 주체들의 정체성은 억압되기만 했을 뿐 문화적으로 제대로 표출되기란 힘들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국 사회의 지배문화는 한편으로 하위문화의 존재 자체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만큼 더욱더 하위문화의 간격을 더 벌려놓는 역할도 한다. 특히 후자는 현상적으로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로 사회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90년 한국사회의 ‘세대간 분단’은 남북 분단 못지않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입시제도에서 신음하는 일부 아이들은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가 하면, 영화 ‘나쁜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바와 같이 일부 아이들을 나름대로의 일탈적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또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이제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선망하기보다는 잘 노는 애, ‘잘 나가는’ 애, 즉 그들의 용어로는 ‘범생이’보다는 ‘날나리’를 더 존경하며, 일상적으로 가수, 탤런트, 스포츠 스타가 되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위문화란 개념은 그 자체의 문화적 의미는 물론이고 동시에 상대적으로 더 일반적인 주류대중문화의 성격을 밝히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하여 하위문화가 갖는 특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로, 하위문화에 대한 지배문화의 헤게모니가 청소년 세대에게 있어서는 부모세대만큼 그다지 강력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한국 하위문화와 주류대중문화의 관계는 외국의 선례와는 달리, 그 경계선이나 차별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앞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함축적이다. 어쨌거나 한국의 하위문화에 대한 탐구는 더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탐구의 출발점은 헤게모니적 지배문화의 시선이나 목소리를 통해 하위문화에 접근하기보다는 있는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데 있다. 예컨대,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교통규칙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위반하기는 국민 모두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그들을 ‘오토바이족’으로 부를 것이냐 ‘폭주족’으로 부를 것이냐 하는 문제 말이다. 스피드를 통해 자기 삶의 존재 이유를 찾는 소위 폭주족이나 비 때문에 골프치는 것을 포기하고 천만원대 도박판을 벌인 검사나 한국 사회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결국 후자가 전자를, 혹은 어느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쉽사리 단죄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적어도 문화의 차원에서는 말이다.
|contsmark1|지금까지의 연재순서1. 대중문화에서의 저항과 쾌락2. 하위문화에서의 스타일과 정체성|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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