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엔 ‘통큰’ 선물, 국민에겐 수신료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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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정부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

정부가 종합적인 방송 정책을 내놓은 지는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 보고서 이후 14년 만이다. 방송개혁위원회 보고서가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은 규제 완화를 통한 방송 산업 성장에 무게를 실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수익 감소가 지속되고 있고, 유료방송 가입자의 포화 상태에서 대대적으로 방송 규제를 풀어 방송시장의 규모를 키우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국민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는 수신료 인상도 결국 방송 광고 시장을 늘리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에 반해 규제 완화와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 시청자 복지와 방송의 공익성에 대한 보장 대책은 ‘구색 맞추기’ 수준이다. 정부가 ‘방송산업의 성장전략’에 중점을 뒀다고 공언했더라도 불균형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조성한 경쟁 구도에서 더욱 심해진 사업자간 갈등을 조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지난달 공개된 종합계획 초안 가운데 지상파와 유료방송업계에서 거세게 반발한 과제들이 최종안에서 일부 수정됐다는 점도 이 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0일 향후 5년간 방송정책 추진 계획이 담긴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8VSB, “종편에 고화질 특혜”

지상파 방송사와 언론시민단체에서 종합계획 초안을 두고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특혜’라고 규정한 이유는 8VSB(8레벨 잔류 측파대)를 유료방송에 허용하겠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정부가 이번에 확정한 종합계획에도 8VSB를 허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종편 특혜 논란은 불가피해졌다.

지상파 디지털 전송 방식인 8VSB을 확대하면 디지털TV를 보유한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도 고화질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유료방송업계의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인 셈이다. 8VSB 확대로 인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퇴출 우려에 대해서도 유료방송업계와 정부는 방송 구역단위로 8VSB를 도입하면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한 지상파 관계자는 “종편과 유료방송 쪽에서 국민을 편익을 내세우고 있지만 8VSB 도입은 위성방송과 IPTV 쪽으로 이용자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저가 구조를 이어가려는 속셈”이라고 꼬집었다. 저가로 디지털 전환 효과를 보는 동시에 화질까지 높이는 일거양득의 특혜라는 지적이다.

또 8VSB는 VOD 등의 쌍방향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어 장기적으로 봤을 땐 미래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케이블TV 가입자 중 현재까지(2013년 6월말 기준) 62% 정도가 디지털 전환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아날로그 가입자로 남아있다.

눈치 보는 ‘지상파 중간광고’ ‘MMS’

정부는 유료방송업계에서 반대했던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여부와 지상파 다채널 방송(MMS)의 도입 범위 등에 대해선 정책 결정을 뒤로 미뤄 놨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사들 모두 광고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는 정책들로 앞으로 추진과정에서 사업자간 분란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종기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국장은 지난 10일 “시청자 복지 증진 및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무료로 서비스되는 MMS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 MMS 대상과 광고 허용에 대해선 확답을 피했다. 최근 이경재 방통위원장의 “KBS 1TV와 EBS에 한해 광고 없는 MMS를 허용하겠다”는 발언과 거리를 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1개 주파수 대역에 HD와 SD, 오디오를 나눠 제공하는 MMS는 광고 허용 여부에 따라 사업자간의 입장이 크게 갈린다.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MBC와 SBS는 ‘광고 없는’ MMS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는 상태다. 제한적으로 MMS를 허용할 경우엔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한 케이블방송 관계자는 “광고 없이 MMS를 도입하게 되면 지상파 계열PP의 콘텐츠를 끌어다 쓸게 될 가능성이 높다”이라며 “희소가치가 큰 주파수를 이렇게 사용하면 주파수 효율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허용은 TV 수신료 인상 문제와 엮여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방송시장 재원 안정화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는 방송광고 제도개선은 수신료 현실화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며 지상파 중간광고를 수신료 인상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종합계획안에 담긴 지상파 의무재송신 제도 개선은 지상파와 유료방송사간의 해묵은 갈등을 되살릴 공산이 크다. 방통위는 재송신 분쟁으로 인한 방송 중단 사태에서 시청자를 보호하기 위해 의무재송신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방송법·IPTV법 개정안은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를 현행 KBS 1TV와 EBS에서 KBS 2TV, MBC까지 확대하는 내용으로 지상파의 저작권 침해와 유료방송 특혜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시청자 복지, ‘찬밥’ 취급

사업자간에 이해가 얽히고설킨 규제는 큰 폭으로 풀어준 반면 경쟁이 심해지면서 더욱 요구되는 시청자 권익과 방송의 공익성은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 해소와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등에 대한 정책 추진은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 그쳤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보편적 서비스임을 강조하는 UHD 방송에 대해서는 매체별 상용화 시기를 콘텐츠 제작과 수급, 기술 R&D 표준화 현황, 비즈니스 모델 창출 등을 감안해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유료방송만 상용화 시기를 못 박은 초안과 비교하면 지상파 방송사의 반발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상파 방송사가 700㎒ 대역에서 방송용 주파수를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지상파를 통해 UHD 방송은 낙관하기 어렵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방송 규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면 공공서비스 안정화에 대한 대책이 당연히 나와야 하는데 미온적인 수준”이라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공공영역을 보호하는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인총연합회와 언론노조 등은 10일 성명을 내고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에 대해 “방송을 공공의 영역에서 이해하지 않고 산업적 낙수효과에 의지해 대책 없이 장밋빛 전망만 남발하고 있다”며 “정부가 직접 나서 가장 중요한 보편적 미디어 플랫폼을 부정하고 일부 사업자의 혜택만 보장하려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정책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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