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살 깎아 먹는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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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살 깎아 먹는 KBS
  •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 승인 2013.12.26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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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미 여러 차례 공공서비스 강화를 위한 수신료 인상이라면 언제든 동의할 수 있다고 밝혀온 바 있다. 이는 유료방송 주도로 빠르게 상업화되고 있는 매체 환경을 보완해줄 수 있는 공공서비스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진보적 가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의결된 수신료 인상안과, 그 이후 KBS 구성원들의 행보를 보면 과연 그 안에 공공서비스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지난 10여 일 동안의 사태를 보면, 오히려 KBS의 경영진들이 공영방송을 사회적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우선적인 문제는 여당 추천 이사 7인의 단독 의결이다. 이는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여야 합의를 기반으로 마련되었던 2010년 인상안에 비추어볼 때 심각한 정치적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이용해 초강경 노선을 본격화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행보와도 닮아있는 이날의 의결은, 같은 날 방송산업발전종합계획의 발표와 함께 진행되어 KBS이사회의 정치적 독립성에 다시 한 번 흠집을 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꼭 이렇게 했어야 했나! 한 마디로 비용 부담의 주체이자 KBS의 주인인 국민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정권 편의적 일방주의라는 근본적 한계가 이후 추진에 엄청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 길환영 KBS 사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수신료 조정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노컷뉴스
놀라운 것은 수신료 인상안 의결 이후 KBS가 막가파식 조직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까지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KBS와 KBS의 프로그램에 대한 코멘트를 하던 시민단체 여성활동가들의 합법적 기자회견을 폭력적으로 저지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여당추천 이사 단독 의결이 가지는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려 하였을 뿐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이들은 궁극적으로 KBS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입장을 가진 단체들로, 그동안 공공서비스 강화를 위해 적지 않은 활동을 펼쳐왔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구잡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정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KBS는 사과 한 마디 없이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다.

논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뜬금없이 KBS이사회를 거치지도 않는 모바일 기기 수신료 부과 방안이 알려진 것이다. 이는 그동안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무심하였던 국민들까지 들썩거리게 했고, 정치적 이해와 상업적 이해에 따라 온도차를 보이던 언론이 일제히 한 목소리로 KBS를 비난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 판단이 안일했던 KBS는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방송과 기자회견을 거듭 진행해 사회적 비난의 강도를 고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에 이를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공문을 보내는 초라한 행보를 이어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KBS의 수신료 인상안이 거듭 좌절되고 있는 배경에는 정치적 갈등만큼이나 KBS의 자구 노력 부족과 무능력, 무책임이 자리한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수신료 인상이 결정적으로 좌절된 것도 야당의 방해나 시민단체의 외면이 아니라 KBS 구성원들의 도청 의혹(이미 대다수 국민은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안하무인격의 강공 일변도에서, 무능력의 끝을 드러내며 뒷걸음질 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대로라면 공공서비스를 위한 수신료 인상은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현재의 시점에서는 공영방송 KBS의 추락을 안간힘을 다해 막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KBS이사회는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미래를 열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공영방송의 존재의미조차 송두리째 망가뜨릴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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